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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물기행] '족두리봉 알터' - 북한산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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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알터’란 말을 알아보자.
알터란 바위에 패여 있는 동그란 구멍이나 그보다 더 넓은 자리로 자식을 얻기 위한 기원, 즉 기자(祈子)나 기복(祈福)을 염원하던 곳을 말한다. 이른바 ‘성혈(性穴)’이다. 이 알터는 여성의 성기를 뜻하기도 혹은 여성의 자궁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앞서 공개한 성물기행 두 번째 편인 안산의 남근바위(까진바위) 앞의 작은 바위 상단에 있던 알터를 보았고, 다섯 번째 편인 중계동 여근바위 부용의 우측 상단에 있는 알터를 보았다. 이 두 알터는 규모가 작아 여성성기에 가까운 느낌이다. 서울 안산 남근 바위의 알터
독박골 미륵암의 알터
북한산의 많은 봉우리 중 작지만 나름 특징 있는 곳인 족두리봉에 제법 커다란 알터가 존재하고 있다 해서 직접 확인을 하러 나섰다. 지난 편인 천녀바위와는 꽤 가깝지만 산행을 자주 하지 않는 필자로선 해발 370미터의 낮은 봉 하나 오르기도 무척 힘들었다. ‘족두리봉’은 이름이 여러 개다. 불광동에 근접하니 불광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또는 수리봉, 시루봉, 독바위, 유두봉이라 불리기도 한다니 이게 다 보이는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란다. 즉 어디서 보면 족두리로, 떡시루로, 뒤집어놓은 장독으로, 여자의 유방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걸 다 확인 하려면 북한산을 종주하는 만큼 힘이 드는지라 그저 본연의 임무인 알터만 찾아보기로 했다. 독바위역, 우측에 일행을 기다리는 등산객들이 보인다.
지하철 6호선 독바위 역은 참 우스운 전철역이다. 1방향으로 지나는 전철인데다가 출입구도 달랑 하나다. 역 앞엔 그저 왕복 2차선은 좁은 차로가 지날 뿐 주택가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아마도 모종의 정치적 행사가 있었을 것 같은 이 역 앞엔 평인인데도 산행을 하려는 등산객들이 두세 명씩 끊임없이 내리고 동행인을 만나는 풍경이 그려진다. 독바위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마치 그저 하나의 고독한 바위 하나같은 인상의 전철역이다.
독바위역에 있는 등산안내도 역에서 나와 주택가로 들어 앞서가는 등산객을 따르니 골목을 꺾고 꺾어 어느 덧 산길로 들어선다. 한 아름은 족히 되는 바위로 계단을 만들어놓기도 하여 오르기에 그다지 불편함은 없었으나 애초에 둔하고 허약한 이내몸이 문제인지라 헉헉대다가는 중간에 몇 번을 쉬었는지 모르겠다. 늘상 산행을 할 때면 느끼지만 운동 좀 평소에 해두어야겠다.
오르는 길에 내려다 본 은평구 정상무렵 평일이지만 그래도 북한산의 봉우리라고 오르는 등산객이 꽤 된다. 필자처럼 홀로 가는 이도 있고 두세 명에서 십여 명까지 그 모습도 다양하다. 북한산이 워낙에 큰 산인지라 그 길만해도 수천 갈래는 될 듯하다. 비록 작은 족두리봉일지라도 십수 아니 수십 갈래의 길이 있는지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튀어 나온다. 간간히 등산안내도도 있고 표지판도 있어 헤매지 않고 족두리봉 정상을 찾을 수 있었다. 첫 편의 여성봉마냥 산정에 있으니 찾기가 얼마나 수월한지 모르겠다. 지난 천녀바위가 최악이었고 안산의 남근석이나 진관사 부근의 여근바위 홍류동이나 중계동 부용이나 정확한 위치를 알지는 못한 채 우연히 지나다가 발견을 한 셈이었다. 다만 산정상에 있는 것은 꼭대기까지 오르느라 그것이 힘든 것이고 역시 풀린다리로 하산하는 일도 수월치는 않다. 족두리봉 정상, 알터는 어디에 있을까? 빠른 걸음으로 간다면 산길에 들어서 30분이면 족두리봉 정상에 당도할 듯싶다. 하지만 그것은 이력이 난 등산객이나 가능할 듯 항상 초행길 같은 필자로선 족히 한 시간은 걸린 것 같다. 아무튼지 도착한 정상엔 이미 사람들이 꽤나 있다. 벌써 막걸리를 한 잔씩 하고 있는가 하면 싸가지고 온 삶은 계란이나 사과 등 도시락을 꺼내먹고 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족두리봉 정상의 알터 알터 안에 떨어진 음식 찌끄러기를 쪼는 비둘기 이놈은 산꼭대기까지 와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알터는 거의 꼭대기에 한 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타원형의 알터엔 등산객이 남기고 간 계란 껍데기 부스러기가 남아 있었고 그걸 쪼아 먹는 비둘기 몇 마리가 왔다갔다 했다. 사람들은 좀 아래 아슬아슬하게 자리하고 있는 해골바위 혹은 족두리바위라고 각기 제 맘대로 부르는 기이한 바위와 정상 아래로 펼쳐지는 은평구의 도심과 멀리 보이는 북한산의 명봉들에만 신경이 가 있을 뿐, 알터의 존재란 관심 밖이며 그 누구도 인식을 하지 않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한 사람이라도 이 둥그런 모양의 패여 있는 자리에 의아심을 가질 것 같았지만 필자가 그곳에 있는 동안은 아무도 그 알터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 겨우 족두리봉의 정상임을 알리는 표지만 아래위로 두 개 있을 뿐 아무런 표지가 없으니 사실 보통의 등산객들은 알바가 아니었다. 알터 아래로 기이한 모양의 바위가 보인다. 해골바위라 부르는 이도 있고, 족두리바위라 부르는 이도 있고... 여기에도 글자가 새겨져 있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어떻게 생겨난 바위인지는 모르지만, 사람이 올라가도 전혀 미동이 없다.
치마바위 쪽에서 바라본 정상.
난 이름하여 트랜스포머바위라 부르련다.
(영화포스터와 비슷하지 않은가?) 불광역 부근의 도심을 배경으로 한 알터. 맞은 편의 산은 천녀바위가 있는 독박골.
북한산의 봉우리들을 배경으로 한 알터. 알터의 중앙 부근엔 열십자로 패여 있는 흔적이 있다. 이는 애초부터의 것인지 어느 누군가의 장난인지는 모르지만 그닥 흉해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알터 주위로 산재한 음각의 낙서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겠다. 이는 20년 전의 사진자료에도 있으니 참으로 오래된 것이이 도대체 이름의 주인공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가 궁금하다. 지난 천녀바위에서도 느낀 바이지만, 그 오래전엔 숱한 사람들의 기원을 담아내던 바위가 이처럼 지나는 이중 아무도 존재를 모르고 있다는 현실이 참으로 무상함을 느끼게 해준다. 바라건대 족두리봉 표지에 덧붙여 정상에 이러저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던 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러주기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계란 껍데기를 버리거나 그저 밟고 서서 산 아래를 감상하는 곳으로만 사용하고 있지는 않을 듯하다. 하지만 이 알터의 존재조차 아는 이가 거의 없으니 누가 이 귀찮은 일을 할 것인가. 알터 반대 방향의 정상에서 본 은평구. 우측으로 뉴타운 현장이 보인다.
하산은 구기터널 방향으로 잡았다. 시간을 있으나 체력이 뒷받침을 해주지 못하니 향로봉이나 비봉을 향한다는 것은 애초에 무리다. 내리는 길에 다시 족두리봉 정상을 바라보니 ‘치마바위’라 불리는 경사진 거대한 바위가 정상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다. 표지판을 출이을 금지하고 있지만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스릴을 즐기려는지 그 거친 경사면의 오르고 있었다. 그들의 용기에 혀를 차며 짐짓 놀랐지만, 산행이 익숙해지면 남모르게 도전해보고 싶은 맘도 생길 듯하다.
불가능은 없다... 부근 모 기도암에 여근석을 모시고 있다는 자료가 있어 하산길에 혹시나 만날까 기대를 했으나 방향을 잘못 잡은 탓이거나 아니면 이미 스님이 떠나 자취를 감추었는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인연이 아니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이렇게 회를 거듭하며 이러한 성물을 찾아다니면서 느껴지는 것이 생겼다. 그것은 여성봉이나 홍류동, 부용 같은 단순히 성기와 유사하다는 이유만 담긴 것들에서 느낄 수 없는 기운 같은 것들이 여기 알터나 천녀바위, 안산의 까진바위 등에서는 느껴진다는 것이다. 비록 아무 것도 올리지 않고 합장하며 기원하는 일은 없지만서도 뭔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마음에 조금은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상 조금 아래에 있는 낙타바위? 막상 가서 보니 남근석 같다... 그리고
그 아래 이런 여근암이 있다. 절묘하지 않은가?
제단인지도 모를 것이 산길에 있었다.
이 축대 위로는 성황당을 연상케 하는 고목이 있다. 과거 이 산에서는 굿과 기도가 많았다고 한다.
단풍이 제대로 찾아오면 인수봉이나 갈까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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