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물기행] '남근석' '여근석' - 국립민속박물관 장승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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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소개한 서울 안산의 남근바위, 진관사 계곡의 여근석 홍류동은 일부러는 아닐 테지만 어째 성물이 자리한 곳이 그리 높은 산이 아니라도 봉우리나 언덕, 그리고 계곡이었다. 그래서 가는 길이 편하지 않아 산을 좋아하지 않는 이상 일부러 찾아가기엔 접근성이 대략 좋지 않다. 본인 역시 등산을 즐겨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그런지 매번 발바닥에 물집이 몇 개 생기기는 했다. 그리하여 이번엔 이 몸도 편하게 다녀보고 혹여 관심 있는 독자들이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곳에 있는 성물을 찾아보았다. 덕분에 발바닥에 물집은 생기지 않았다.
경복궁(景福宮) 흥례문(興禮門)에서의 수문장 교대의식 국립민속박물관은 이름으로 보면 마치 서울 근교 어디나 아니면 아예 좀 멀찌감치 있는 시도에 있을 법하게 느껴지지만, 실은 서울 시민에게만 보자면 생각 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그게 어디냐면 바로 우리나라 최대의 궁궐인 경복궁 내에 있는데, 경복궁의 아이콘 중 하나인 경회루를 지나 우측으로 궁의 한쪽 편에 하얀 석조 건물에 높다란 목조 건축물이 서있는 것을 본 기억이 있는가? 나도 예전에 경복궁을 다니다보면 언제나 올라가지는 못하고 궁궐보다 높아서 저것은 뭐에 쓰는 건물일까? 하고 궁금해 하던 것이었다. 근데 그게 바로 국립민속박물관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좀 허무하다. 뭘까 뭘까 궁금해 하다가 알게 된 것이 결국 현대 건축물이었다니... 국립민속박물관 예전엔 경복궁과 구분이 없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따로 경계를 만들어 두고 있어 국립민속박물관만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게 해두었다. 참고로 경복궁의 입장료는 3,000원이다. 그러므로 만일 국립민속박물관만을 찾아간다면 경복궁을 통하지 않고 동심자각이 자리한 교차로에서 삼청동 방향으로 가는 도로 쪽에 있는 박물관의 정문을 통하면 되겠다. 경복궁을 가는 길은 뭐 광화문 가는 버스나 지하철 3호선을 타면 되므로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줄로 안다. 박물관을 찾아간다면 안국역에서 내린다고 해도 그리 차이는 나지 않을 듯하다. 국립민속박물관에는 무엇이 있는가는 직접 찾아가보시면 될 테고(무료라니깐...) 여기서는 우리의 테마대로 성물에 대해서만 얘기하련다. 박물관은 내부 전시실과 외부 전시장으로 구분되는데 우리가 찾는 성물은 외부 전시장에 자리하고 있다. 외부 전시장에 있는 물건들은 본래부터도 바깥에 있던 것들, 즉 돌하루방이나 장승 같은 것들이다. 장승동산의 장승과 돌탑
박물관 건물을 등지고 중앙으로 난 길을 걸으면 좌측으로 장승들이 모여 있는 장소가 있는데 여기를 ‘장승동산’이라 한다. 이 장승동산엔 우리가 흔하게 보았던 나무로 만든 ‘천하대장군’이나 ‘지하여장군’이 있고 기타 돌이나 나무로 만든 장승인 ‘벅수’라는 것도 있다. 장승 동산의 조금은 깊은 구석으로 들어가면 몇 개의 석장승과 함께 두 기의 남근석과 한 기의 여근석이 둥글게 자리 잡고 서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이 세 기의 남여근석은 모두 복제품으로, 평안북도 태천군 학봉리에 있는 남근석 1기와 전라북도 순창군 창덕리에 있는 남근석 1기, 그리고 경기도 안양시 삼막사에 있는 여근석 1기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에 여근석이 보이고, 좌우측 양 끝에 보이는 석상이 남근석 본인이 취재자료로 삼고 있는 것 중 [한국의 성신앙]란 책을 보면 저자인 김종대씨는 이곳에 북한의 남근석과 남한의 남근석을 같이 둔 이유를 남북의 화합과 통일을 기원하는 의미에서였다고 한다. 근데 그가 그랬거나 말거나 여근석의 굳이 하나만 둔 이유는 무엇인가? 천하대장군도 지하여장군이란 짝이 있을진대, 두려면 짝을 맞춰 두는 것이 보기에도 좋고 떡 하니 서있는 두 남근석에게도 흐뭇한 일 아닐까? 자리도 구 남근석 사이에 여근석이 있으니 상상하자면 여자 하날 두고 남자 둘이 다투고 있는 삼각관계의 구도가 그려진다. 꼭은 짝을 맞춰야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마치 벌거벗은 세 남녀가 한 자리에 있는 것도 같은 그림도 상상하게 되는 것은 나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평안북도 태천군 학봉리 남근석 먼저 북한에 있다는 남근석(선돌)을 보면 아주 매끈하게 생겼다. 어찌 보면 엄지나 검지를 쭈욱 하늘을 향해 뻗어 ‘내가 최고!’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중앙은 약간 배가 부른 듯 두툼하게 살이 올라 귀엽게 보이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힘차게 솟구쳐 오른 모양을 지녀 힘의 근원이나 생산에 대한 기원을 담아낸 성물 본연의 의미에 충실한 것 같아 보인다. 귀두 부분은 누군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고 만져 대서 그런지 하얗게 닳아있는 흔적을 볼 수 있다. 뭔가 아는 사람이라면 적당한 소원을 빌었을라나? 전라북도 순창군 창덕리 남근석
이와 대비되는 남한의 남근석은 대충 보면 좌우 대칭 형의 대포알 형 석상이다. 키는 북한의 것과 비교해서 작아 보이나 굵기가 더하고 고른 형태를 가졌다. 그런데 표면에는 두툼한 부조가 새겨져 있어 뭔가 또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을 것만 같은 모습이다. 이 부조는 남근석 전체에 휘감겨 새겨져 있는데 어찌 보면 힘줄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상상 속의 짐승을 새겨 넣은 것 같기도 한데, 포경된 귀두부를 확연하게 구분해 놓은 것이 주목할 만하다. 북한의 것은 직접 찾아볼 기회가 생전에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은 전북 순창에 있다고 하니 언젠가 직접 찾아 더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볼 요량이다. 경기도 안양시 삼막사 여근석
안양 삼막사에 있다는 여근석은 둥글고 넓적하며 중간이 갈라진 바위 덩어리다. 한쪽이 마저 잘 떨어졌으면 영락없는 하트 모양이다. 틈이 묘하게 갈라져 여자의 음부를 떠오르게 하는데, 어쩌면 초현실주의 작가 달리의 조각품을 보고 있는 것도 같다. 실제 삼막사에는 이 여근석의 짝인 남근석이 따로 존재한다고 한다. 근데 이렇게 그 클론을 만들어 엄한 곳에서 두 남근석을 달래주고 있는 형국이니 오리지널인 삼막사의 여근석이 어찌 생각하고 있을지 또한 그 짝인 남근석의 기분은 어떨지가 궁금하다. 역시 이 여근석 또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하니 그 실물과 또한 그 짝을 찾아볼 만하겠다. 비록 장승동산의 외진 곳에 자리하고 있지만 이처럼 공개된 장소에 남녀의 성기를 표현한 물건들을 전시해놓고 있으니 어찌 보면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성기 숭배 의식은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 유래와 예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인류 공통의 본능적인 민속 종교 행위일 것이다. 게다가 우리에게 남근석이란 남아선호 의식으로 인해 남모르게 찾아가 기원을 드리던 기자(祈子)신앙의 대표적 물증이 아닌가. 그리고 여근석은 생산을 상징하며 풍요를 기원하는 모티브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몰라도 대대로 우리 기층 민중들이 믿고 따랐던 것은 유교가 아니라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긴 하지만 주위에서 함께 숨 쉬고 있는 돌과 바위였던 것이다. 그게 바로 민속(民俗)일 테고, 그것들을 정리하고 모아놓은 박물관에 남과 북을 대표하는 남녀근석을 자리해 놓았으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고, 그렇게 하나의 민속자료로서도 반드시 두어야 할 이유도 있는 것이다.
잘 찾아보시기 바란다 이제 날도 선선하니 나다니기 좋은 계절이 올 것이다. 마침 박물관은 무료이고, 행여 푸른 가을 하늘 아래 경복궁으로 마실이라도 나갈 요량이라면 잠깐 들러 그 모양을 직접 확인해 보는 일도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행여 민망하게만은 생각하지 말고 연인이든 부부이든 배경삼아 옆에 두고 사진이라도 찍어 둘 사이의 화목과 풍요를 빌어보는 것은 어떨지 슬그머니 권해본다.
* 경복궁을 나오며... 열상진원(洌上眞源)과 향원지(香遠池) 그리고 향원정(香遠亭) 경회루(慶會樓) 수정전(修政殿)의 추녀와 추녀마루 위 잡상(雜像, 어처구니) 근정전(勤政殿) 근정문에서 바라 본 근정전 영제교(永齊橋)의 석상, 그리고 근정문 글쓴이ㅣ원미동 http://wonmidong.tistor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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