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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화가 최경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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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쇼?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03 음란화가 최경태, 여고생과 포르노 하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들은 최경태라는 사람이 여고생과 포르노를, 그러니깐 섹스를 했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본 기자 또한 이렇게 말해서 어떤, 불로소득을 얻고자 하는 바램, 사실 크다. 그러나 ‘포르노 하다’라는 말은 엄연히 따지고 보면 섹스를 했다라는 말은 아니다. 이 부분에서 독자들과 최경태 씨의 오해가 없길 바란다. 그럼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여기서 말한 ‘포르노’란, 섹스행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인간 사고의 표현행위로서의 ‘포르노’이다. 흠흠, 넘 어렵나.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유로운 사고 표현으로서의 포르노적 형식을 빌어왔다고해야 할까? 도대체 최경태라는 사람은 여고생과 무슨 포르노를 어떻게 했을까?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최경태 화가를 홍대 근처에 있는 쌈지 스페이스라는 갤러리에서 만났다. 그의 첫 인상은 시인 이상과 오스트리아의 에곤쉴레라는 화가의 모습을 믹스시킨 몰골이었다. 또 어렵게 말했는데, 이것 또한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난민 같았다”라고 할 수 있다. 절대 인식 공격을 하기 위해 한 말이 아니니 서로의 감정을 추스르며 이 기사를 읽기 바란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화가가 뚱뚱한 체구에 얼굴에 개기름이 좔좔 흐른다고 생각해 보라. 일찍이 시인이란, 화가란 빼짝 마른 체구에 눈에 광채가 살아 있어야 하지 않은가. 자학적인 예술세계에 빠져서 하이 코미디로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그래서 에곤쉴레와, 이상과 흡사하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들은 지독하게도 자화상이란 주제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얻어낸 결론은 자기 학대와 경멸이었으며, 이러한 표현의 결과는 세상에 대한 멸시와 비아냥거림이 된다. 최경태는 이들과 다소 다른 모습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그도 역시 세상에 대한 비아냥거림은 이들과 같다. 단지, 에곤쉴레는 자화상을 통해 경멸의 시선을 가졌으며, 최경태는 포르노를 통해 세상을 욕하고 있다. 그리고 그 포르노의 대상은 지금 우리 시대에서 가장 금기시 하고 있는 ‘여고생’이다. 금기도 공론화 된 도덕이 아니라, 공격력에 의해 ‘도덕’이라고 규정한 금기이다. 과거 최경태 화가가 민중미술 운동을 하며 정권의 억압과 폭력을 폭로하는데 붓을 놀렸다면, 지금은 위선적 ‘도덕’을 폭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붓이 그려낸 것이 포르노가 될 때에는, 그리고 그 대상이 여고생이 될 때에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와도 같다. 아직 우리 사회는 포르노를 “광장”에서 보고자 하지 않는다. 아직 포르노는 어두컴컴한 골방에서 아랫도리를 주섬주섬 훔치며 수음하는 “음란물”이다. 그래서 이 줄타기는 우물 위를 건너는 것과도 같다. 무사히 평지에 발을 드려놓느냐, 아니면, 우물 속에 갇히느냐!! 우린 그를 평지에서 보고자 한다.
최경태 화가의 주제는 위선적 사회의 폭로에 있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포르노다. 잠시 다른 얘기를 하자면, 포르노의 전통적인 주제의식은, 포르노는 도덕적 개념이고, 위선과 고상한 체하는 감정의 내면을 폭로한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최경태 화가가 포르노를 선택한 것은 무난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일반화된 포르노를 보여 줬다면 지금과 같은 주목은 받지 못했을 것이고, 음란물 제작 혐의로 재판을 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최경태 화가가 표현하고자 한 그 대상이 ‘여고생’ 이라는 것에 있다. 단지 포르노가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성인물에서도 여고생이 등장하면 불법을 벗어날 수 없다. 그가 이런 점을 몰랐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그 대상이 여고생이 아니더라도 포르노제작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그가 ‘여고생’이라는 금기를 깨고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금기를 이용한 사회적 주목과 관심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말처럼, 정치적 발언이었을까? 본 기자의 개인적 소망은 단지 꼴려주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었다고 하면 좋을텐데. <버블껌 프린세스> 97×145.5cm_2003
최경태 그에게는 더 강력한 무기가 필요했던 것이고, 그 무기는 여고생이었다. 그가 여고생을 선택한 이유는 금기의 대상이라는 것과 개인적 취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처음 여고생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기 앞서 제시했던 본 기자의 세 가지 가설 중에서 사회적 주목과 관심을 뺀 나머지 것들이었다. 그 중에서 본 기자가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역시나 “꼴림”에 대한 것이다. 혹, 아직도 우리들은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그의 그림을 보고 순간, 자신이 꼴리게 되는 것에 당혹스러워 할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 대한 불결하다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아마도 이런 이유들 때문에 그의 작품이 “음란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꼴리는 것은 음란물이 되는 나라에서 그의 그림이 어떻게 단속의 그늘을 피해갈 수 있을지, 그의 입장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빨간 앵두_캔버스에 유채_91×116.7cm_2003 여고생이든, 아니든, 그는 여자를 그리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우리가 이점을 탓하거나 뭐라할 것은 아니다. 그냥 그의 표현의 방식이고, 대상일 뿐이다. 우린 그의 그림을 보고 어떤 메시지를 얻을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지금은 그의 발언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 강한 색체가 다음의 그 자신이 그릴 그림을 위해 하는 하나의 과정이고, 또 다른 누가 그릴 그림에 대한 자유를 얻어내고자 하는 행위라고 보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판가름해야 하는 사회에서는, 음란이냐, 아니냐를 선택해야 하는 이 놈의 사회에서는 그의 작품들이, 한 인간의 순수한 표현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그가 처음부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과 싸우기 위해 ‘여고생’과 ‘여 성기’를 그려왔다고는 볼 수 없다. 자신도 말했듯이 그는 여체에 대한 ‘탐닉’이 그 자신의 주제라고 하지 않았나. 물론, 지금 말한 것은 본 기자의 추측이다. 이런 추측을 가능하게 한 것은 그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을 아무런 계산 없이 표현하는 것이 그림이다” 아마도 이 말 속에 그가 그림을 그리는 가장 순수한 동기가 숨어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 자신의 표현행위가 무엇인가에 의해 가로막힌다면 그 누구라도 덤벼들지 않을까? 그 점에 있어서는 본 기자도 “뚜껑”날리고 덤벼들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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