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형! 여자의 몸을 열려면 마음을 먼저 열라는 말도 있잖아요. 형수가 섹스를 거부하는 건 형에 대해 서운한 마음이 계속 남아있어서는 아닐까?” 라고 남편이 말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남편 선배와의 술자리에서였다.
어쭈?
평소 별것 아닌 일로도 티격태격 싸움을 자주하는 우리 부부. 그럴때마다 남편은 절대 먼저 사과하는 일이 없다. 반면에 나는 말하지 않고 꽁해 있는 시간이 너무 괴로워 빈말로라도 먼저 사과하고 빨리 풀어버리자는 주의다. 그걸 너무 잘 아는 그는 내가 먼저 말을 걸 때까지 침묵으로 일관하며 담배만 뻐끔뻐끔 피워댄다.
주변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사는 게 비슷하다. 부부싸움을 하고 나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휑하니 밖으로 나가버리고 여자들은 그 뒷모습을 보며 복장을 친다. 그리고는 머리 속으로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당신이 잘못 생각한 게 뭔지!" 구구절절 퍼부어 댈 말을 연습하며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돌아온 남편은 여전히 대화할 용의가 없어 보인다. 그냥 담배 몇 개피를 태우는 사이 아까의 분노가 조금 누그러졌을 뿐이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TV 화면만 보고 있는 남편에게 아까 일을 또 끄집어내자니 생뚱맞다. 살면 살수록 전형적인 ‘바가지 긁는 마누라’가 되는 것 같아 자존심도 상한다. 하지만 할 말이 많다. 남편이 내 입장을 알아줬으면 좋겠고, 그 생각을 조금이라도 설명하고 싶다. 그렇게 심한 말을 하게 된 배경과 과정을 무시하는 남편에게 한마디 꼭 해 주고 싶다. 망설이다가 드디어 한마디 건넸다.
"우리 얘기 좀 해!"
그런데 남편은 아직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안 됐나보다. 나중에 하잔다.
그 상태로 밤이 되었다. 답답한 내 마음은 터질 지경이었다. 여자로서 사랑받던 시절은 이제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눈물이 났다. 내가 울어도 남편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서러운 마음에 한없이 연약해졌다. 만약 남편이 아무 말 없이 꼭 껴안아만 준다면, 그냥 모든 걸 덮어두고 품에 안겨 엉엉 울리라.
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내게 남편이 처음으로 내 뱉은 말.
"자?"
아직 화는 풀리지 않았다. 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로, 작게 콧방귀를 뀌었다.
"흥."
남편이 몸을 바짝 붙였다. 그리고는 애교 섞인 신음을 내며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화해하고 '한판' 하자는 신호였다.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너무 화가 났다. 잔뜩 준비해 놓은 말들이 또 한 번 물거품이 되는구나.
"됐어. 왜 이래?"
손으로 살짝 밀쳤지만 크게 화를 내지는 못 했다. 지 나름대로 자존심을 버리고 용기를 냈을텐데. 진짜로 뿌리쳤다간 싸움이 커질 것만 같았다. 대화가 단절된 답답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마지못해 몸을 열어줬다.
남편은 자신의 너그러움(?)과 승리에 기뻐하며 '역시 여자는 한번 안아주면 그만이야.'라고 뿌듯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냥 안아만 주기를 원했다. 섹스하고 싶어서 화해한 게 아니라, 화해하고 나니 섹스하고 싶었기를 바란 것이다.
그런 남편이 선배에게 저런 조언을 하다니... 참, 별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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