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트북>
키스에 대해서 내가 까탈스런 취향을 가진 건 분명 아니다. 로맨틱한 환상이나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단지, 성기 다음으로 은밀하고 농염한 인체의 부위가 맞닿는 일이니만큼 어느 정도의 궁합은 필요하다 생각할 뿐이다.
스무 살 무렵 만난 S군은 로맨틱 가이의 전형이었다. 나보다 길고 하얀 손가락을 가진 것도 모자라서 몸에서는 항상 달콤한 여자 향수 냄새가 났다. 훗날 그가 누나 향수를 훔쳐 뿌리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남자용 폴로 향수를 선물했는데, 그 후로 그에게서 나는 향기는 좀 더 세련되게 바뀌었지만 사실 그는 누나 향수와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순정만화의 남자 주인공을 닮은 그와의 키스는 무척 부드러웠다. 문제는 그 부드러운 느낌이 ‘보들보들’보다는 ‘후룩후룩’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혹시 일부러 뱉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키스할 때 그가 쏟아내는 침의 양은 엄청났다.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남자였기에 키스쯤이야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보려 나름대로 애를 썼지만, 매번 키스할 때마다 연상되는 차가운 우뭇가사리의 이미지는 도저히 떨쳐버리기가 힘들었다. 결국 나는 다른 핑계를 들어 그와 헤어졌다.
지나치게 터프 했던 첫 키스가 두려워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어디서 그런 걸 배웠는지 그는 시종일관 입을 크게 벌리고 내 얼굴 전체를 먹어버릴 것처럼 달려들었다. 이빨에 긁힌 입 언저리를 보호하기 위해 맞수라도 놓듯이 나도 입을 크게 벌렸다가 그의 입술에 혀를 잡혀 뽑힐 뻔하기도 했다. 여자 경험이 많지 않았던 그는 역시 여자 경험이 많지 않은 작가가 쓴 소설 (또는 야설) 속 광란 키스 신을 모방했을 것이 분명하다. 섹스와 마찬가지로 키스 또한 상대방을 지적하거나 구체적으로 방법을 알려주기가 참 뭐하다. 게다가, 그를 하나하나 가르쳐가며 내 남자로 만드는 수고를 할 만큼 남자가 궁한 상황도 아니었기에 나는 그냥 연락을 끊어버리는 쉬운 길을 택했다.
키스가 맘에 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ㅡ더 솔직히 말하면 짜증이 치밀었음에도 불구하고ㅡ헤어지지 않은 남자는 남편이 유일하다. 13년 전의 첫 키스 때부터, 결혼한지 6년 7개월 차에 접어든 지난 주 까지만 해도 나는 남편과의 키스를 썩 즐기지 않았었다. 남편은 늘 입을 너무 작게 벌렸고, 그 사이로 혀를 쏙 내미는 식으로 키스를 했다. 게다가 내가 일부러 머리를 잡고 돌리지 않으면 늘 목을 꼿꼿하게 세운 부동자세였다. 도대체 왜 고개를 살짝 틀지 못 하는 거지? 입을 좀 더 자신감 있게 벌리지 못 하는 거지? 의아했다. 황홀함이나 흥분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위에 등장한 두 명의 남자들만큼 도저히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그냥 그 부분은 포기하고 살아왔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며칠 전 우리 부부의 키스생활에 극적인 변화를 준 사건이 발생했다. 감자탕을 먹고 차를 운전하던 남편이 이를 쑤시다가 문득 이런 질문을 한 것이다. “평소에 내 입에서 냄새 많이 나지?” 내 앞에서 방귀나 트림도 주저 않는 남편이 살짝 부끄러운 기색까지 드러내며 묻지도 않은 고민을 털어놨다. 아주 어려서부터 비뚤게 난 사랑니와 고르지 못 한 치열 때문에 이를 열심히 닦아도 찌꺼기가 남아 악취가 난다는 것. 늘 치아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어서 누군가와 가까이서 얘기하거나 키스할 때 무척 신경 쓰인다는 거다. 아하! 그랬군. 정작 난 아무 냄새도 못 맡았는데 남편은 그게 부끄러웠구나.
“나 비염 있는 거 알지? 자기 입에서 냄새 난다는 생각 한 번도 안 해봤어.” “연희는 정말 코가 안 좋은가 봐”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남편의 옆모습에 기분 좋은 웃음이 번진다.
그날 이후, 자신감을 얻은 남편과의 키스는 믿을 수 없는 지경으로 발전했다. 마치 다른 남자랑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떨릴 정도다. 결혼 생활은 이렇듯 한걸음씩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의 끝없는 연속이다. 그 과정이 전반적으로 지루하고 때론 고통스럽지만, 포기하지 않음으로 얻게 되는 뜻밖의 선물이 있어 나는 오늘도 남편의 팔짱을 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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