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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 있는 남자 페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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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클로저>
 
'여자는 사랑 없는 섹스를 하지 않는다' 따위의 유언비어를 퍼뜨린 사람이 대체 누구야? '남자는 사랑 없이도 섹스할 수 있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다'는 세간의 소문(?)은 '여자는 조금만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과 함께 나의 20대를 압박하며 많은 시간 스스로의 정체성에 의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라면 끓이면 꼭 밥을 말아 먹어야 직성이 풀리고, 바이브레이터를 종류별로 모으며, 사랑에 빠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앞 건물 경비아저씨와 섹스하는 상상을 해 대는 나는... 뭔가? 정상이 아닌 건가?
 
말이 나온 김에, 나의 비정상적인(?) 섹스 판타지에 대해 이야기 해 보도록하자.
 
가슴이 푹 파인 옷을 입은 여자를 힐끔거리며, 그녀의 가슴을 핥고 빠는 상상을 해대는 그를 욕할 것도 없다. 나도 길 가던 남정네의 빵빵한 엉덩이를 보면, 힘이 빡 들어가 근육이 불끈 솟은 (허리에서 힙으로 이어지는 그 죽이는) 정열의 라인을 거의 자연반사적으로 상상하니까 말이다.
 
뭐 개인적으로 신체의 일부를 보고 흥분하는 일이 많은 건 아니지만, 굳이 하나를 짚자면 그렇다는 거다.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의 꼴림 포인트, 즉 페티시를 가지고 있다. 마광수 교수는 길고 화려한 손톱에 흥분하고, 동창 A모군은 빨지 않은 여자 속옷에 흥분하며, 우리 남편은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쭉 내민 엉덩이에 무쟈게 흥분한다. 또, 내 친구 M양은 남자의 가슴 털에 환장하고, 찜질방에서 만난 어떤 아줌마는 조형기처럼 진한 눈썹을 가진 남자만 보면 암 생각없이 그냥 폭 안기고 싶단다.
 
그리고 나는... 임자 있는 남자를 보면 하고 싶어진다. 어떻게 남의 남자를 넘보냐며, 의리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배라먹을 년이라고 욕하실 여성 독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렇지만, 상상이 뭔 죈가.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내 자신의 취향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남의 남편을 탐하지 말라. 마음으로 탐하는 것도 간음이다... 어쩌구하는 성경 구절도 있지 않은가. 할인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모델 뺨 치게 생긴 총각을 제쳐두고, 부인과 다정하게 카트를 밀고 있는 유부남에게 시선이 꽂혀, ‘저 남자는 부인과 어떤 식으로 섹스할까?’ 상상할 때. 삽겹살 집 옆자리에서 부인과 마주 앉아 말 없이 고기만 집어먹는 중년의 배불뚝이 아저씨를 보며, 저 아저씨는 사정할 때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해 질 때. 나는 나 자신이 무안하다. 그치만, 뭐, (한번 더 우기겠다.) 진짜 하겠다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글을 쓰는 동안, 나의 이 위험하기 짝이없는 ‘임자있는 남자 페티시’는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흔히 하는 말로, 남의 사과가 더 커 보이기 때문일까? 아님 섹스를 많이 할 수록 실력(?)이 좋을 거라는 무의식 적인 기대가 작용한걸까? 내가 가진 사과가 가장 크고 맛있다는 사실에 한치의 의심도 없는 나이기에 (우리 그이 보라고 아부하는 건 절대 아니다.) 첫 번째 이유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난 오히려 멋지고 잘 생긴 커플을 보면 감탄하고 질투하느라 야한 상상을 할 겨를이 없다. 그럼 나에게, 유부남이나 정기적인 파트너가 있는 남성이 섹스하는 데 더 능숙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던 건가? 흠흠. 절대 그건 아니다. 결혼을 안 해 본 것도 아니고....

그럼 뭔가? 왜 나는 도저히 어렵거나 가능성 없는 남자와 섹스하는 상상을 하며 때로는 얼굴도 모르는 여인들을 향해 사죄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걸까.
 
그러고 보니, 예전에 어느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우리 뇌에는 성적 흥분을 주로 관장하는 부위가 있고, 죄책감, 불안함, 두려움을 느끼는 부위가 있는데 그 두 신경의 위치가 굉장히 가깝게 붙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집 놔 두고 주차장이나 아파트 계단 같은 불편한 장소에서 섹스를 하며 성적 쾌감에 스릴을 얹어 즐긴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맥락으로 볼 때, 나의 불량한 페티쉬는 결국 내 탓이 아니라 뇌 탓이다. 복잡다단한 나의 뇌가 금기에 도전하도록 나를 종용하여 더 극대화된 쾌감을 유도하고 있는 것 뿐이다.
 
다행히도, 우리들의 뇌에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 그러니, 나와 당신 남편의 눈이 살짝 마주쳤다고 해서 너무 불안해 하지는 마시라. 정 화가 나신다면, 당신을 믿고 우리 남편의 시선도 한 번쯤 빌려드릴테니까.
팍시러브
대한여성오르가즘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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