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관능의 법칙>
자위가 뜸한 틈을 타 속옷을 적시는 끈적한 그것, 몽정이 십대 남자 아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시는가?
오래 굶었거나, 성적 불만이 쌓였거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여자'라는 것에 회의가 느낄 때, 내 친구 Y는 어김없이 몽정을 한다.
꿈 속에 들어간 그녀는 더 이상 남편에게 엉덩이를 밟히는 펑퍼짐한 아줌마가 아니다. 살 떨리게 섹시한 여자로 변신한다. 매끈하고 볼륨감 넘치는 몸으로 남자를 살살 애태울 줄도 알고, 뱀처럼 휘감아 쾌락의 극치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꿈 속에선 누구하고든 섹스를 할 수 있어서 좋아."
온몸에 탄력이 넘치는 흑인과도, 배가 불룩 나온 대머리 아저씨와도 섹스할 수 있다. 드라마에서 본 연예인는 물론, 까마득한 기억 저편의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이 난데없이 나타나 가슴을 더듬을 때도 있다.
그들이 평소 흠모 대상이었을 리는 없다. 다만 그들과 잠깐 즐겨도 죄책감을 느끼거나 불쾌해 할 필요가 없다. 그녀는 그게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난 천하에 둘도 없는 악녀야. 남자에 환장한 년이야. 섹스머신이야. 이 세상 모든 남자들이 나와 섹스 하려고 안달이야.‘ 라고 중얼거리며. 그녀는 마음 한 구석이 후련해 지는 걸 느낀다. 꿈을 꾸면서 그게 꿈이라는 걸 안다. 그녀는 그 기분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거다.
그녀의 몽정이 남자의 그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정액 대신 '눈물'을 쏟는다는 것이다. 꿈 속에서 섹스를 하다 깬 날이면 딱히 슬프거나 노여울 일이 없는데도 눈물이 난다. 남편이 옆에서 여느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잠들어 있다. 안도과 허탈이 동시에 엄습한다. 남편을 살짝 껴안아 본다. 여전히 코를 골고 있는 그를 보면 배신감 비슷한 게 느껴져 곧 제자리로 돌아온다. 꾸던 꿈을 마저 꾸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물론 언제나 실패다.
어느 날 Y는 대성통곡을 했다. 꿈 속에서 말로만 듣던 멀티오르가즘을 느낀 것이다. 황홀했던 순간은 삽시간에 사라졌지만 그 여운이 오래도록 남아 그녀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꿈 속에는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등장했다. 여자는 Y가 평소에 천적으로 생각하던 K다. K는 이 세상 모든 남자가 자기를 사랑한다고 믿는 도끼병 환자다. Y는 일전에 그녀에게 ‘남자들의 사랑과 한번 자 보고 싶은 호기심을 착각하지 말라’고 진심 어린(?) 충고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콧방귀를 뀌고는 Y의 남편에게까지 유혹의 손길을 뻗치기 시작했다. 정말로 화가 나는 건 남편이 Y의 충고를 귀담아 듣기는커녕 "예쁘니까 괜히 질투하는 거 아냐?"라고 핀잔을 줬다는 것이다.
꿈에 등장한 K는 여전히 섹시했다. 정체불명의 남성과 함께 있는 그녀의 눈에선 교태가 좌르르 흘렀다. 그런데 남자는 Y에게 사랑을 느꼈다. 유혹의 몸짓을 하며 알짱거리는 K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Y에게 다가와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온갖 감미로운 동작으로 그녀를 매료시켰다.
그의 애무는 섹스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머리를 쓰다듬고, 얼굴을 양손으로 감싼 뒤 조용히 입을 맞췄다. 그리고 Y를 오래, 아주 오래 껴안아줬다. 그리고 K는 그 모든 장면을 지켜봐야만 했다. 질투에 이글거리는 K의 시선을 느끼며 Y는 강한 오르가즘을 느꼈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꿈 같지 않았다. 몸이 붕 떠오르는 느낌 때문에 ‘아, 꿈은 아니구나’하고 안도하기까지 했다.
그때 갑자기 무거운 덩어리가 허리를 짓눌러왔다. Y와 남편 틈에서 자던 아들이 벌떡 일어나 아침 점프를 시작한 것이다. 그런 아들이 대견한지 남편은 껄껄 웃었다.
Y는 눈물이 났다. 남편이 왜 우냐고 물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더 펑펑 울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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