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캠퍼스 S 커플>
모 잡지사 기자와의 인터뷰 중 ‘혼전이라도 사랑한다면 섹스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미혼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한 변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모텔 마일리지 카드를 몇 장씩 지갑에 꼽고 다니는 여대생이 부지기수인 판국에 뭐 그런 촌스러운 질문을 하나 싶었다. 하기야 같은 조선시대에도 어우동과 신사임당이 공존했는데 2010년대을 살고 있는 여성들이라고 해서 다 똑같으리라는 법이 있겠는가?
게다가 섹스를 하는 것과 "나 섹스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장르의 일이다. 우리는 바이브레이터가 마음껏 등장하는 미국 드라마, 섹스앤더시티를 보며 연애와 사랑을 배운 세대지만 아직도 자위행위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는 힘들고, 사랑과 섹스를 결부 시키지 않고 "난 그냥 섹스가 좋아"라고 쿨하게 말하지는 못한다.
사랑한다면 섹스 할 수 있다라는 신념에서 사랑의 역할은 결혼도 하기 전에 섹스나 하고 돌아다니는 발랑 까진 년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위한 일종의 빠져나갈 구멍에 불과한 것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나와 내 친구들의 20대를 돌이켜 보면 우리는 섹스하기 전 상대에게 부담을 가지게 할 위한 방법으로, 또는 나를 우습게 보지 못 하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가끔 사랑이란 단어를 들먹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꼭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섹스를 했던 건 아니다.
MT의 마지막 날 밤, 만취한 상태에서 평소에 별로라고 생각했던 과 선배와 일을 치르기도 했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 한 후 홧김에, 또는 외로움에, 오다가다 만난 사람과 섹스를 하기도 했다. 남자친구의 비위를 맞추느라 정작 자신은 별로 즐기지도 못하면서 모텔을 전전하고, 내 몸을 탐하는 그 남자의 숨소리가 곧 나를 사랑하는 애정의 척도라고 착각하다가 지나고 나니 그건 사랑도 뭐도 아니었더라 깨달은 후 후회의 한숨을 쉬기도 했다.
사는 게 그렇더라 우리가 꼭 필수영양소로만 꽉 찬 친환경 웰빙 음식만 먹고 사는 건 아니듯, 달달하지만 영양가 없는 섹스도 있고, 바람직하지 못한 섹스도 있다. 한때 사랑이라고 느꼈지만 지나고 나니 ‘과연 사랑이었을까?’ 싶은 사람과 섹스를 했다면, 나의 섹스는 ‘사랑’을 전제로 했기에 떳떳한 것일까? 애매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여자들이 사랑과 섹스를 좀 더 명확히 나눠서 생각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환상적인 섹스는 우리 모두의 희망사항이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섹스를 하게 됐더라도 절망하거나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사랑에 눈이 멀어 제대로 피임도 못 하고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 해도 "당신과 함께라면 난 아무래도 괜찮아" 같은 소리나 주절거릴 거라면, 낯선 상대와 조심스럽고 이기적인 섹스를 즐기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인 이야기 하나만 하자. 돌이켜보면 나의 산부인과적 질환 중 대부분은 한 사람과 오랜 기간 관계를 가지던 시기에 발생했다. 오다가다 만난 사람과는 반드시 콘돔을 착용했기에 오히려 안전하고 건강했다. 여러 명의 섹스 파트너를 갖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고정적인 파트너라고 해서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순정을 바친다’는 말이 있다. 아름답고 로맨틱한 말이지만, 현실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상당히 위험한 뉘앙스의 말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순정을 바치는 여자는 절대 남자에게 먼저 콘돔을 들이밀거나 오르가즘을 느끼기 위해 섹스 중 자신의 클리토리스에 손을 대면 안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사랑한다면 섹스 할 수 있다’는 말은 ‘사랑한다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려 심히 거슬린다.
분명히 하자. 사랑하지 않아도 섹스할 수 있다. 다만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만 잃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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