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나도 섹시한 여자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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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James bond’s ‘Spectre’] 1 솔직히 말해서 나는 누군가에게 섹시하다는 얘기를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얼굴도 섹시와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우선 몸이 가장 큰 문제이다. 겨우 44kg이 나가는 몸은 살집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거기다 남들이 다 하는 브레이지어를 착용하기까지 3년이 걸렸고 그때의 사이즈를 아직까지도 유지하고 있으니 말 다 한 것이다. 한때 내 별명은 젓가락이었으며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목욕탕에 가면 아줌마들이 '학생 우리 등이나 서로 밀어줄까?' 하며 접근했었다. 누가 봐도 학생 같은 몸매. 정말로 착하디착한 몸매. 그게 바로 내 몸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섹스를 할 때 너무 걱정이 됐다. 갈비뼈 근처를 만질 때면 빨래판처럼 느끼면 어쩌나, 그들의 손이 골반 뼈를 스치면 '이거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냐?' 싶은 생각을 가질까봐 조마조마 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가슴 쪽으로 가면 정말이지 절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아직까지도 주니어 브라를 하면 딱 맞고, 성인용은 75A컵마저도 헐렁거리는 나이기에 그들이 혹시나 '유두만 있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까 노심초사 했었다. 그리하야 나는 환한 곳에서는 죽어도 섹스를 하지 않았다. 완벽한 어둠 속에서만 옷을 벗었고 혹시라도 그들이 내 몸을 눈으로 확인하는 일 만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섹스 할 때 만지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그건 포기한다 치더라도 말이다. 친구들끼리 TV를 보다가 근육질의 남자(이를테면 가수 ‘비’ 같은) 가 나오면 탄성을 질러대도 나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내 몸에 대해서 내가 자신이 없으니 남자의 몸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아주 뚱뚱해서, 그래서 내 위에 올라갔을 때 내가 숨 막혀 죽을 것 같지만 않으면 아무 상관이 없었다. 감히 근육질의 섹시한 남자 같은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은 것이었다. 오히려 저렇게 몸이 좋은 남자가 나를 안는다면 속으로 심하게 비웃을 거란 생각만 들었었다. 내가 사귀거나 만난 남자들 중에서 남들이 말하는 소위 몸짱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말랐거나 아니면 작고 통통한 타입이었다. 내 몸에 대해 내가 포기를 한 만큼 나도 남자의 몸에 대해 어느 정도 포기를 했다. 그게 공평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2 얼마 전 나는 늦은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여름 내내 일 때문에 도시를 떠나 움직일 생각을 못했었는데 지난 토요일 알고 지내던 남자와 술을 마시다가 충동적으로 바다를 가자고 말한 것이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그가 그런 말을 했었다. 내 다리와 허리 라인이 섹시하다고. 나는 '이게 장난하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다리에 대한 얘기는 언젠가 함께 근무하던 언니에게 한 번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모델들처럼 근육이라곤 조금도 없는 쭉 뻗은 다리를 좋아하는데 내 다리는 좀 마르긴 했지만 엄연히 허벅지에는 살이 있었고 종아리에도 근육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생전 치마라고는 입지 않고 다녔었다. 그런데 그날은 중요한 회의 브리핑이 있어서 할 수 없이 정장 치마를 입고 갔었고 그때 그 언니가 '너 다리가 정말 예쁘구나'하고 말해주었었다. 내가 말랐기 때문에 당연히 젓가락 같은 다리를 상상했었던 언니는 의외로 살집과 굴곡이 있는 다리를 보더니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그에게 섹시하다는 말을 듣고 나니 나는 갑자기 그를 유혹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도 적당히 들어갔겠다 아무도 없는 캄캄한 고속도로겠다, 나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옆에 운전을 하는 그의 목덜미와 귓불에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정말 이상하게도 그렇게 키스를 하면서 나는 내가 무척 섹시한 여자처럼 느껴졌다. 이 순간, 내가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이 남자를 유혹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강렬한 느낌이 몰려왔다. 이건 내가 평생을 살면서 처음 느끼는 그런 기분이었다. 내가 애무를 시작하자 그는 굵은 목소리로 신음 소리를 냈고 그 소리를 듣는 나는 오히려 애무를 받는 그 보다 더 흥분되었었다. 그날 우리는 섹스까지는 못했지만 키스도 하고 애무도 했다. 그리고 나는 내 자신에게 어쩌면 너도 섹시한 여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하나를 열어주었다. 3 얼마 후. 나는 그 남자와 섹스를 할 기회가 생겼다. 여느 때 같았으면 캄캄해서 상대방의 얼굴도 보이지 않아야 섹스를 할 수 있었겠지만 그날 나는 은근한 조명 아래에서 섹스를 했다. 내 몸을 보여준다는 것이 그에게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고 느껴졌다. 왜냐면 나는 적어도 그 앞에서는 섹시한 여자니까 말이다. 섹스를 즐긴 지 10년이나 되는 나이지만 나는 그날 벗은 남자의 몸과 역시 벗은 내 몸이 함께 엉켜있는 모습을 처음으로 자세하게 보게 되었다. 흔히 남자들은 시각적 자극에 약한 동물이라고 하지만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만지는 그의 크고 강한 손. 내 가슴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는 그의 얼굴을 보자 나는 금방이라도 허리가 꺾여버릴 듯한 강한 흥분감을 맛보았다. 섹스를 하는 내내 그는 내 몸이 얼마나 섹시한지에 대해 얘기했고, 나는 설사 그게 거짓말이라고 하더라도 이 순간만큼은 온전하게 즐기고 싶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섹시함이란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거나 큰 가슴만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건 어쩌면 작은 행동이나 몸짓 하나에 있을지도 모르고 더 깊게는 마음 안에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양귀비도 부럽지 않았고 클레오파트라도 울고 가리란 생각을 했다. 스스로 몹시 섹시한 여자라는 느낌이 드는 그 순간,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색다른 흥분감을 맛보게 된 것이다. 4 이제 나는 더 이상 불을 켜자는 남자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을 것이며 섹스를 하면서 거울을 보라고 말하는 남자를 변태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오직 서로의 몸을 느끼고 집중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나는 환한 불빛 아래서 그가 나를 만지고 내가 그를 만지며 마침내 하나가 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아니 오히려 더 자극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으니까 말이다. 글쓴이ㅣ남로당 칼럼니스트 블루버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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