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는 이름의 그와 그녀의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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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라는 이름의 그와 그녀의 이야기 1▶ http://goo.gl/NB5dKs?
영화 <건축학개론> 잠시 남자가 어떻게 살았는지 살펴보자. 대학 졸업 후, 그는 꽤 규모가 큰 연예매니지먼트에 취직했다. 몇 명의 여자와 연애를 했고 그러다 한 여자와는 꽤 깊은 사이까지 진행됐다. 하지만 그가 사랑한 그녀는 소위 리버럴한 부류였으며 그 과정에서 그녀의 바람기에 상처를 받게 됐다. 그녀에게 지쳐가는 동안, 남자는 사랑에 회의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마침내 그녀와의 그 파괴적이었던 관계에 종지부를 찍으면서는, 평범한 연애에 대한 환멸과 갈망이 가슴 한켠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후 아물긴 했지만 그런 종류의 흉터는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그가 하는 일은 여자와 돈과 술이 늘 넘쳐나는 생활을 좋든 싫든 계속하게 했다. 특히 섹스 기회는 보통의 직장인들에 비교한다면 무제한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처음 보는 여자와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섹스를 나누기 시작했고, 온갖 매춘 장르를 경험했으며 유부녀와의 섹스 또한 더는 낯선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대가 변하면서 그는 쓰리섬, 그룹섹스에 발을 들였다. 이런 그의 모습은 그들 사이에선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그녀는 무엇을 했을까? 그녀는 중간에 회사는 두 번 바꿨고, 남자는 한 번 바꿨다. 지금은 5년을 사귄 애인이 있고, 가끔 부부 같은 느낌으로 익숙한 섹스를 나눈다. 주말이면 애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을 도왔으며 오는 가을엔 결혼식을 올리게 되어 있었다. 그와 그녀는 각자 연애에 몰두하던 상황에서도 1년에 두세 번은 만나는 사이였다. 여전히 둘은 서로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그러나 술자리 한번에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그날 술이 오른 남자는 여느 때와 달리 다른 여자들에게 하는 것처럼 여자를 유혹했다. 갑자기 그런 태도를 보이는 그가 낯설고 두려웠다. 남자는 그녀의 그런 고지식함을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싸운 것도 아닌데, 그날 이후 그들의 사이는 어색해져 버렸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 서른을 넘기면서 남자의 불규칙한 생활이 건강을 망가뜨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건강 문제로 회사도 잠시 떠나 있으며 요양 아닌 요양을 하던 중, 그는 문득 여자를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는 걸 떠올렸다. 갑자기 남자는 그녀가 무척이나 그리웠다. 근 5년 만에 전화를 걸었다. 여자 역시 갑작스러운 그의 전화에 놀라면서도 무척 반가워했다. 그들은 만날 약속을 잡았다. 다행히도 그들의 해후에는 예전에 스쳤던 갈등의 그늘은 끼어들지 않았다. 그들은 오랜만에 옛 추억에 잠겼고, 서로에 대한 친밀감을 마음껏 나누었다. 서로의 차이에 대해 날을 세우지 않게 된 것은 그들이 더는 젊지 않기 때문일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늦게까지 술을 마시던 그와 그녀는 답답한 술집을 빠져나와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것은 10년 전 제주도에서 온종일 걸어 다니던 그 여행을 그들에게 떠올리게 해주었고, 그들은 다시 한 번 애틋한 추억에 젖어들었다. 밤길을 걸으며 잠시 화제가 여자의 애인 얘기로 옮겨갔다. 아무 문제 없느냐는 그의 질문에 그녀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5년을 사귀며 아무 감흥 없는, '일상'이 돼 버린 연애에 대한 한탄이 잠시 이어졌다. 잠시 뭔가를 망설이던 그녀는 최근에 딴 남자를 만나 바람피운 적이 있다고 그에게 고백했다. 그는 너도 역시 평범한 사람이었구나 하는 쾌감과 함께, 그래도 세상에 너 하나만큼은 그렇게 계속 살아주어도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함께 느꼈다. 하지만 그런 심경을 감춘 채 그는 자신의 부정을 지나치게 괴로워하는 그녀를 다독거려주었다. 그러나 얘기가 길어지면서 그는 여자의 이야기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곧이어 그 어색함의 이유를 깨달았다. 그는 '바람 피우다' 의 의미를 (너무나 당연하게도) 섹스했다, 로 받아들였는데 그녀는 그것을 '데이트했다'로 사용한 것이다. "그럼 안 잔 거야?' 그가 묻자 여자는 난감해 했다. 남자와 여자는 애써 잊은 척하던 서로의 차이를 또 한 번 실감했다. 다른 남자와 고작 두세 번 데이트한 것만으로, 여자는 애인에게 이렇게 거대한 죄책감을 느끼게 된 것이었다. 그런 모습은 그에겐 절대 이해될 수 없는 태도였다. 같은 말을 다르게 이해하는 것, 그 이상의 어떤 메울 수 없는 간극을 느낀 그들은 잠시 침묵했다. 그녀의 동네 어귀에 들어설 때까지 그 정적은 이어졌다. 동네 입구에서 그와 그녀는 어색한 웃음으로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왠지 모를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문득, 10년 전 제주에서의 밤에 대해 떠올렸다. 여행 사흘째 되던 날 그들은 제주 시내에 들어섰다. 짐을 풀고 그녀가 씻는 동안 그는 먹을거리와 상비약 몇 개를 사기 위해 모텔을 나섰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길을 잃어버린 그는 거의 한 시간을 넘겨서야 간신히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가 방문을 열었을 때 발견한 것은 침대 구석에서 공포에 질린 채 쪼그려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그가 들어서자 그녀는 울음을 터트리며 그의 품에 매달렸다. 그는 그제야 낯선 도시의 모텔에 혼자 남겨진 어린 여자의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미안하다며 다독거리는 그의 마음 한켠에는 누군가가 자신을 절실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도 있었다. 그들은 처음으로 키스를 나누었다. 그리고 서로를 꼭 안은 채 잠이 들었다. - 이제 여자는 몇 달 뒤면 결혼할 것이고, 남편에게 충실한 아내가 되기 위해, 다시는 외간 남자와 저녁 먹는 일 따윈 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여자는 바람대로 곧 아이를 낳을 것이고 모범적인 가정을 꾸리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갈 것이다. 남자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종류의 욕망들이었다. 그는 순간 이 좁은 땅에서 사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의 차이를 다 합치면 한반도 스무 배의 크기가 나올 것이라는 친구의 말을 떠올렸다. 어릴 때 그들은 비슷한 생각을 하며 서로의 손을 꼭 껴안고 잠들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미 커버린 어른이 다시 아이로 돌아갈 수 없듯, 그 시절의 그들은 이제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그는 새삼 절감했다. 그렇게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과거의 자신이 남긴 흔적을 찾았던 남자. 그는 그것 모두를 떠나보내는 심정으로 그녀에게 소리 없는 작별인사를 했다. 여자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 뒤에도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던 남자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가 간 반대방향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옮기며 자신이 대체 얼마나 멀리 온 걸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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