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관능의 법칙>
장어구이나 삼계탕 등의 보양식 집에서 식사 모임을 하게 되면 꼭 한마디씩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자자, 남편들 좀 챙기라고~. 장어는 꼬리가 진짜야. 와이프들은 눈치 보지 말고 하나씩 챙겨가서 먹이세요!” 이 상황에서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이 이는 안 먹어도 돼요. 안 그래도 힘들어!”하며 손사래를 치는 부류와, “많이 먹어, 자기”하며 넙죽 집어서 남편 입에 넣어주는 부류.
전자의 경우 '오올'하는 사람들의 노골적인 시샘과 부러움을 받게 된다. 남편은 남편대로 으쓱해지고, 부인은 호호거리며 사랑받고 사는 자 특유의 내숭 섞인 웃음을 짓게 마련이다. 반대로, 부인이 날름 넣어준 장어 꼬리를 씹고 있던 남편은 누군가의 농담 섞인 타박을 듣게 된다. “야야. 벌써 그러면 어떻게 하냐? 와이프한테 잘해라. 말년에 고생한다.”
가끔 부부동반 모임에서 이런 류의 농담이 오가는 분위기가 되면 나는 “많이 먹어, 자기”하고 너스레를 떠는 과에 속한다. 장어 꼬리가 그날 밤 즉각적인 효능을 발휘할 거라 기대하는 건 아니다. 섹스칼럼을 쓰고 10년째 성인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인 만큼 ‘저 여자는 부부관계도 적극적이고 명랑할 거야’라고 믿는 사람들의 기대치에 부응하기 위한 과장된 액션이라 함이 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바라는 만큼 달려들지 않는 남편에게 우회적인 압력을 행사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는 말 못 하겠다.
하지만 내가 그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일반적인 순서대로 남편을 타박하는 것이 아니라, ‘대단한 부인을 모시고 사느라 힘들겠어’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밤낮 하는 게 섹스 타령인 여자랑 살려면 남편이 얼마나 정력적이고 테크닉이 뛰어나야 하겠냐는 생각을 전제로 한 것이다. 나로서는 무척 억울한 일이다.
이 자리에서 폭로하는데 내 남편은 그다지 정력적이지 않다. 그의 섹스 패턴을 식사 습관에 비유하자면 ‘배고플 때 대강 끼니만 때우면 된다’ 식에 가깝다. 물론, 촛불과 재즈 음악이 흐르는 로맨틱한 분위기에 잘 차려진 정찬을 보면 기뻐하고 나름대로 즐길 줄도 안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노력을 기울여 밥상을 차리는 스타일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우리 부부의 섹스는 권태로운 삽입운동의 반복. 시들시들한 보통의 중년 부부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럼 나는 얼마만큼 노력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로 노력하지 않는다.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서로의 게으름으로 침실에서의 권태가 일상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부부관계에 심각한 위기를 겪은 적도 있다. 그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진지한 대화나 화끈한 이벤트 등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부부는 궁합이 잘 맞는다고 볼 수 있다.
글을 쓰다 보니, 왜 나는 항상 남편이 어떻게 해주기만 기다리고 있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일하랴 애 보랴 온몸이 피곤할 때 나도 가만히 드러누워 남편의 서비스만 받고 싶은 것처럼, 피곤한 남편 역시 나의 서비스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삽입만이 중요한 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왜 정작 나는 삽입 없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실천하지 않았을까? 왜 모든 시작과 끝을 남편에게 떠넘기려 했을까?
남편의 입에 장어 꼬리만 집어넣어 주는 것이 아내 역할의 전부가 아니다. ‘이거 먹고 힘껏 발기해서 나 좀 어떻게 해 줘!’라고 구걸할 만큼 우리 아내들이 무력한 존재는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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