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아이템 | ||||||||||||||||
|
약간의 결핍
0
|
|||||||||||||||||||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포털 사이트에서 연예인 누구 과로로 쓰러져 병원행, 링거 투혼 같은 글귀로만 보던 일을. 며칠 전 실제로 내가 겪게 되었다. 다만 서 있다가 병원에 간 게 아니라서 누워 있다가 갔으므로 말 그대로 쓰러지진 않았으며, 링거를 맞긴 했지만 투혼을 한 건 아닌 정도랄까? 아무튼 태어나 처음으로 어디가 아파서 혹은 병명이 있어서가 아니라 과로로 병원을 가 보게 되었다.
전날 술을 조금 마시기는 했지만, 평소의 나와 달리 분위기를 망치지 않을 정도로만, 기껏 맥주 몇 잔 정도였으나. 일단 술을 마신 건 맞으니까 처음에는 술병이 난 줄 알았다. 그러나 술을 마신 당일도 멀쩡했으며 그 다음 날 일어나서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래서 좀 피곤했지만 일어나서 김치찌개를 끓여 밥을 해 먹었다. 그런데 밥을 먹고 한 시간 정도 있으려니 몸이 영 좋지 않았다. 급기야는 먹은 걸 다 토해내고 누워 있다가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약장을 뒤져 피로회복제 한 병과 소화제 한 병 -토한 걸로 봐서 혹시 체한 건 아닐까 싶어- 열이 좀 있어서 감기증상인가 싶어 타이레놀 콜드를 한 알 먹었다. 하지만 증세는 호전되지 않고 여전히 아팠다. 나중에는 꼼짝도 할 수 없을 정도였고 좀 어지럽고 머리도 아팠다. 그렇게 누워 있다가 마침 사촌 여동생이 뭘 가져다주러 들렀는데 내 상태를 보더니만 이건 이러고 집에서 뭉갤 일이 아니라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사촌 여동생의 부축을 받으며, 앉아 있는 것도 불가능해서 그녀의 차 뒤 자석에 누워 끙끙 앓으며 병원을 갔다. 가는 동안 점점 더 상태는 나빠졌다. 주말이라서 마땅한 병원이 없어 우린 그냥 생각나는 대로 3차 의료기관인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근데 가뜩이나 누워있어도 힘든 사람에게 소변검사, 피검사, 엑스레이 촬영, CT 촬영 등등 갖은 검사를 하자고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저 과로로 쓰러졌으니 영양 링거액이나 한 방 맞고, 잠 좀 자다가 집으로 가는 것이었으나, 그들이 원하는 것은 만에 하나라도 있을지 모르는 뇌출혈이나 갖은 병세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뭐 3차 의료기관으로서는 당연한 권유였지만. 그런 걸 하지 않고는 영양 링거액을 맞는 처방을 내릴 수가 없다고 하길래. 우린 그냥 대학 병원 응급실을 나와서 2차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2차 의료기관인 병원에서는 다행스럽게도 내가 원하는 처치를 받을 수 있었다. 열을 제고 증세를 물어본 다음, 영양 링거액을 꽂아주며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아, 이거야말로 내가 원하던 거야 하면서, 누워서 그들이 권하는 대로 최대한 안정을 취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 넓은 대학병원 응급실도 조용하기만 하더니만. 어찌 된 게 그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정도의 규모를 자랑하는 2차 병원 응급실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아파서 그러는 거라면 나도 아픈 입장이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그게 아니었다. 누워서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고 있는데 저쪽 어딘가에서 갑자기 어떤 여자가 펑펑 울며 뭐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저렇게 소리 지르며 울 정도면 되게 아픈가 보다 했었는데 좀 듣다 보니 중얼대는 말이 예사롭지 않았다. 내가 아파서 운 줄 알았던 그녀는 실은 남편에게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았는지, 혹은 그가 스물다섯에 시집와 여태까지 산 나에게 뭘 해 줬는지, 그리고 당신에게는 내가 아무 존재도 아니지 않냐며 신세 한탄을 하는 것이었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울고불고. 그래도 나는 곧 남편 되는 사람이 아내를 진정시킬 줄 알았다. 벗뜨, 그러나 ‘내가 너한테 안 해준 게 뭐 있는데’ ‘그 정도로 비참하다. 그러면 대한민국 사람들 다 비참해서 죽어야 한다’ ‘네 낭비벽이 심해서, 내가 옷 사 입는 거 좀 줄이라고 했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이냐’ 등등. 이 남편이란 작자가 한 수 더 떠서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자의 친척들이 옆에 있었는지. 형부 그건 아니지 않나요, 언니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남편으로서 그런 무심한 소리나 하시면 곤란하지요 같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고, 뒤이어 내 가까이 누워 있던 술 취한 한 아저씨가 ‘이 씨팔 병원 너희가 전세냈냐’ 고 소리 지르며 합세하기 시작했고, 의사가 조용히 시킬 요량으로 그 아저씨에게 보호자는 어디 있냐고 하니까 ‘니미랄 보호자가 있으면 내가 응급실을 왜 오나’ 며 화를 내더니만. 여기 책임자 누구냐 다 나와라 한판 붙자고 덤벼들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누워서 떨어지는 링거액 방울을 지켜보며, 저거 다 맞으면 집에 가는 길에 뭐든 몸에 좋은 걸 먹어서 기력을 보해야겠다고 생각했으며, 주변에는 3차 병원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주말에 병원을 와야 했던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조근조근 얘기하는 소리들이 자장가처럼 들리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좀처럼 그러지 못하겠지만 노력하면 얼마쯤 잠을 잘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저 난리부르스는 내가 병원에 있는 2시간 중에서 무려 1시간 30분이나 지속됐다. 딱 죽겠구나 싶었다. 대체 병원 응급실에서 부부싸움을 해야 하는 부부의 사연은 알 수 없지만, 병원에서 링거액을 맞으면서 울고 소리 지르며 남편에게 자신의 삶을 하소연해야 하는 그 부인이 얼마나 참고 살았고, 자기 말마따나 또 얼마만큼 비참하게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런 아내를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우선 진정시키거나 달래자고 생각하는 대신, 오히려 더 큰 소리를 지르며 이혼하자는 얘기는 좀 오버인 거 아닌가 싶지만 역시 오죽하면 병원에서 아픈 아내를 상대로 이혼을 얘기하는 그 남자의 심경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내 비록 어떤 특정 부위가 아파서가 아닌, 단순 과로로 쓰러져서 링거액을 맞으며, 한숨 자거나 좀 쉬거나 하면 죽지는 않을 환자였지만. 그래도 엄연히 환자는 환자여서 안정을 좀 취해야 하는데 싶었다. 그래도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 와중에도 링거액은 한 방울 한 방울 착실하게 내 몸에 들어갔으며, 그 사이 열도 좀 내렸고, 사촌 여동생이 우스갯소리를 하는데 받아칠 정도의 기력도 회복했다. 비록 내가 원하는 잠은 오지도, 잘 수도 없었지만. 이대로 링거를 맞다가 죽진 않겠구나 싶었다. 내가 과로로 쓰러져 병원을 가야 했던 이유는. 문자 그대로 과로를 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2주 정도. 나는 하루에 3시간 정도 자면서 계속 일을 했다. 두 번째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아 계약을 마쳤고, 원고를 그저께까지 넘겨야 했는데, 그 와중에도 라디오 방송과 연재물들은 계속해야 했고, 집에서만 일하는 게 아니라 일이 좀 있어서 아침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밖에서 계속 볼일을 봐야 했다. 집 안 작업실에서만 일했다면 몸이 좀 덜 피로했을 텐데 날마다 외출을 해야 하니 별수 없이 씻어야 했고, 이것저것 준비도 해야 했으며, 마침 집안일을 거들어주던 아주머니도 내 집 일을 봐 줄 수 없는 상황이라 집안일도 해야 했다. 막상 나열하니 뭐 다 별일도 아니다만. 아무튼, 저걸 2주 동안 지속했더니 나름 몸에 무리가 왔었나 보다. 거기다 신경이 하도 바짝 곤두세워져 있어서 ‘오늘은 만사 제쳐놓고 6시간쯤 푹 자야겠다’고 마음먹고 누워도 3시간 이상 잠이 오질 않았다. 그나마 그 3시간도 시계를 보니 그렇게 지나있어서 내가 3시간을 잤구나 할 뿐. 몸으로 느껴지는 시간은 30분도 채 안 되는 것 같았다. 하루에 보통 8시간 넘게 자던 인간이 그 3시간마저 푹 잠들지 못하고 자는 둥 마는 둥 했더니만 몸이 그 지경이 된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힘들어서 불행하냐 하면 그렇지 않다. 아니, 오히려 반대라고 말할 수 있다. 행복하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래도 못 해먹겠다던가 내가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어 한숨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냥 일이 좀 많았을 뿐이고, 잠을 푹 못 자고 신경을 썼더니 이렇게 된 것일 뿐. 그동안 춥다고 방에만 틀어박혀서는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밖에는 안 해서 결국 스스로 건강 상태를 이렇게 만든 내가 조금 한심스러울 뿐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일은 벌어졌고, 동네 한의원에 가서 보약이라도 한재 지어 먹으면서 하다못해 플라시보 효과라도 노려볼밖에. 이외수의 책 ‘하악하악’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으니 나는 정말로 행복하다. 그리고 이 행복은 바로 먹고 싶을 때 먹지 못하고 자고 싶을 때 자지 못했던 젊음에서 유래된 것이다. 나는 누군가가 행복하다는 말을 난발하는 것을 좀 주책스럽다고 느끼는 편이지만. 이외수의 말은 백 퍼센트 공감한다. 그냥 모든 일에 감사하고 내게 주어진 모든 게 다 축복 같아서가 아니라 (어쩐지 이런 건 좀 종교인스럽다.) 궁핍을 경험했기 때문에, 즉 지금 누리거나 할 수 있는 것들을 과거에는 그러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았던 것이라면. 아마 누구든지 그런 것들을 누리게 되는 순간 충분하게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나는 일을 참 하고 싶었다. 내 존재를 확인받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단순하게 돈을 벌어 조금 더 편하게 잘 살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일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노는 팔자를 동경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종국에는 너무 심심해져서 뭔가라도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일이라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남들에게 증명받는 일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존재를 왜 남에게 증명받아야 하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이란 ‘남’ 이라는 것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잠깐만 눈을 돌려도 온통 세상은 ‘남’ 천지인데. 나 빼고는 결과적으로는 다 ‘남’들인데, 그리고 그 ‘남’들 속에 섞여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무시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과거의 나는 이런 ‘남’들에게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인정이랄지 약간의 칭찬 같은 걸 듣는 대신 온통 걱정과 연민과 한숨만 자아냈었다. 그 시절에는 아무튼 나 역시도 일하고 싶었지만, 남들처럼 그러기를 간절하게 소망했지만 아무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뭔가를 했다면 그걸 누구에게 보여주고 적어도 그 일을 계속해 나가도 나쁘지 않겠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하는 수 없이 일하지 않고 노는 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놀고 싶어 노는 거랑은 아예 다른 문제임을. 이런 식으로 놀아 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만약 내가 지금의 내 상황을 불행하다 혹은 힘들다 느끼지 않는다면, 이외수처럼 나 역시 그것에 대한 극도의 궁핍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물론 자고, 먹는 정도의 생존과 직결되어 사람이 살기 위해 최소한 누려야 했던 것을 누리지 못한 정도의 절박함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당시의 나는 꽤나 많이 괴로웠었고 힘들었었다. 그때 내가 자주 들었던 노래는 신해철의 'It's all right'이라는 노래였는데, 그런 노래를 들으며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아직은 좀 더 버틸 수 있다고 주문이라도 걸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날들이었다. 그런 날들을 겪고 나니 지금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여기서 조금 더 힘들어도 어떻게든 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더 힘들고 싶은 건 아니다. 그땐 컨디션을 조절하건 보약이라도 먹던 무슨 수를 내도 낼 것이다.)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일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그 중 어떤 것들은 솎아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나는 그 사람들이 부럽다. 얼마나 일이 많으면 대체 일을 가려서 할 수 있단 말인가? 나에게는 꿈같은 일이다. 나는 그저 하나 들어오면 그때마다 너무 고맙고 황송스러워서 어떻게든 누를 끼치지 않고 잘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설사 가식적으로 보인다고 해도 상관없다. 저건 일에 대한 내 진심이니까. (만약 저런 마음조차도 없다면 나는 이 일하지 않았을 것이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와서도 나는 여전히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 밤 10시쯤 견딜 수 없게 졸려서 침대로 기어들어간 다음 죽은 듯이 자고 (이게 좀 다르다. 그땐 숙면을 취하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문득 새벽 2시가 조금 넘으면 눈이 딱 떠진다. 그때부터 삼십 분 정도는 침대에 누워서 다시 잠을 청해본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으면 그냥 일어나서 커피를 한잔 끓여서 마시고 작업실 문을 연다. 그리고 앉아서 계속 글을 쓰다가, 밥도 먹고 볼일도 보고 하다가 다시 오후 2시쯤 서너 시간 정도 낮잠을 잔다. 물론 그 작업실에 있는 내내 글만 쓰는 건 아니다. 인터넷 웹 서핑도 하고, 책도 보고, 가끔은 가계부 정리 같은 걸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간에 하루에 단 한 줄이라도 꼭 쓰자는 생각만큼은 변함없다. 일이 있건 없건. 글이 쓰이건 말건. 처음부터 당연히 존재하여 누리던 것을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이미 일반인의 차원을 넘어선 사람들이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과 공기를 고마워하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게 없던 적이 없으니 고마울 것도 좋을 것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단 한 순간이라도 궁핍을, 그리고 그 타는 목마름의 궁핍을 해갈하고 싶다고 소망해봤다면 아마 알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말들이 그리고 내 마음이 어떤지를 말이다. 가능하다면 나는 약간은 부족한 상태로 살고 싶다. 뭐든 다 있고, 뭐든 다 할 수 있는 인생은 좋기는 하겠지만 어쩐지 그게 계속되면 행복한 것이 아니라 무료하다던가 공허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늘 약간은 부족해서, 조금만 더 팔을 뻗어보자고 스스로 생각하는 게 내 삶에는 딱 좋은 상태일 것 같다. 글쓴이ㅣ남로당 칼럼니스트 블루버닝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