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곰 테드]
몇 년 전 홍대 앞에서 바를 운영할 때 얘기다.
10대 청소년이 주로 돌아다니는 학원가 한 복판에 ‘bar G-SPOT’ 이란 글자가 새겨진 간판이 포부도 당당하게 올려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뜻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관계로… 우리 가게는 아는 사람만 아는 음란문화(?)의 메카로 자리를 잡았었다.
손님 중에는 빠 형식의 신종 룸싸롱을 기대하고 들어와 아가씨를 요청하는 넥타이부대도 있었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가게 한 쪽에 전시된 딜도나 한국 전통 춘화를 즐겁게 감상하고 가는 외국인들도 있었다. 여러 가지 성 관련 서적을 가져와 ‘여성들을 위한 세미나’를 기획하자고 열을 올리는 언니가 있었는가 하면, 마치 내기에 져서 벌칙이라도 수행하는 듯 우물쭈물 들어와 ‘비아그라도 파나요?’ 라고 묻고는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후다닥 도망가는 파릇한 20대 청년도 기억에 남는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이자 지금도 깊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KM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한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 키에 사람 좋은 미소를 가진 그는 바 한 쪽 귀퉁이에 앉아 맥주를 주문했다. 그는 “가게 이름이 너무 좋아서 들어와 봤어요.” 라고 첫마디를 던졌다. 가게 문을 연지 3일만에 - 순전히 간판만 보고 들어온- 첫 손님인지라, 당시 동업자 사이였던 남편과 나에겐 실로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지스팟의 뜻을 아세요? 아는 사람 별로 없는데…” 라고 하니, 그는 오히려 놀라는 눈치다.
“그래요? 사실 모르는 척 하는 걸 수도 있죠. 뭐. 남들이 모르는 섹스 관련 용어를 혼자서 아는 척 했다간 설명하기도 난감할거고 변태로 찍히면 곤란하니까.” “하긴… 간판 허가를 담당하는 구청 직원도 그런 케이스가 아닐까 싶어요. 하하하.”
그렇게 친해진 우리는 지스팟에 관해 몇 마디 대화를 나눴고, 약 10여분 후 나는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전마협의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부업으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마협이 뭐냐고 묻자, 그는 “전국 마스터베이션 연합의 약칭이죠. 자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서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모여 함께 딸을 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합니다.” 라고 설명했다.
바 주변에 모여있던 사람들 중 한 명이 “와~ 나도 좀 데려가요.”라며 농담을 하자, 그는 진지하고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절대 지켜야 할 규칙이 있어요. 남자든 여자든 오르가슴까지는 느끼면 안돼요. 사정을 하고 나면 급속도로 후회가 몰려오죠. 섹시하게 느껴졌던 나 자신과 사람들의 모습이 일순간 추잡하게 보일 수 있어요. 내가 지금 뭐 하는 짓인가? 류의 허탈감을 느끼지 않는 한도 내에서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섹시함을 즐기되 끝까지 가지는 말라! 그게 전마협의 지향점이죠.”
그 날 이후, KM(킹 오브 마스터베이션)이란 호칭을 얻게 된 그는 지스팟의 든든한 고문관이자 우리 부부의 결혼식 증인으로 참여하는 등 평생지기 친구가 되었다.
그가 처음 지스팟을 찾던 그 날, 뿔테 안경을 쓰고 앉아 전마협 운운하던 그를 ‘이런 변태새끼!’ 하고 몰아세웠다면 아마 우리는 그의 독창적인 섹스관과, 세상을 바라보는 유쾌한 안목을 공유할 기회를 놓쳐버렸을 것이다.
답답하고 지루했던 도시 생활.. 그나마 열정을 잃지 않고 즐거울 수 있었던 건 바로 곳곳에 숨어 도발적인 이벤트를 벌이는 KM과 같은 변태들 덕이 아니었나 싶다. 얼마 전 홍대에 또 다시 작은 클럽을 열었다는 그의 소식을 듣고, 떠나온 지 1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이 그리워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