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 익명게시판
신기루같은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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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였다. 창밖으로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나는 자판을 두드렸다.
타닥타닥, 하릴없이 내리는 것이 비인지 자판소리인지 분간이 안될 때 쯤.
그녀가 연결되었다.
랜덤채팅은 그랬다. 단순히 채팅으로 욕정을 풀 남녀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좀 정상적으로 이야기를 하고픈 여성들이 간혹 접속하는.
랜덤채팅에서 여성이 없다고 여기는 부류들은 대게
처음부터 자신의 성별을 밝히거나, 자신이 발정났다는 것을 처음부터 드러낸다.
익명성은 곧 가면이라 자신의 솔직함이 그대로 드러난다고는 하지만,
너무 적나라하면 눈쌀을 찌푸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니까.
여성과 대화하는 것은 나름의 요령이다. 
현실에서 만났을 때,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
그것을 활자로 옮기는 작업이다.
가볍게 처음은 인사와 농담과 인사치례를 건내고
이야기 수위는 간을 보며 조금씩 높혀간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 방법이 절대적으로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확률을 높혀주는 것은 분명하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의아하게 느낄 것이. 이정도 노력이면 밖에서 만나지 그러냐는 생각이 들법도 하겠지만, 내세울게 글재주 밖에 없는 글쟁이라면 자신의 재능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이성교제를 하는 것이 무엇이 나쁜 것일까.
그녀는 장난스럽게 활자를 올렸다.
통통 튀는 물수제비 같은 그녀의 문장이 느낌이 좋았다.
아니나 다를까 몇시간에 걸친 그녀와 나의 대화는 점점 수위를 올려가고 있었다.
나의 성관념에대한 철학 아닌 철학(이런걸 개똥철학이라고 하던가)으로 이야기를 계속 하다가,
나는 이미 문장으로, 단어들로 그녀를, 그녀의 몸을 구석구석 탐닉하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나의 말을 따르고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응'이라고 대답하며 나의 음담패설을 받아주는 그녀, 그런 그녀가 어느정도 달아올랐다고 여겨지는 그 순간에, 나는 한가지 선언을 했다.
'이제부터 내가 네 주인이야.'
그 유치한 문장이 그 순간에 얼마나 그녀에게 섹시하게 느껴질까. 철저하게 문장으로 달아오른 그녀의 몸이 느끼는 위압감이 그 짧은 몇초의 침묵에서 느껴졌다.
그녀는 순순히 '네'라 대답했다.

그 후로, 그녀와 나의 채팅은 이어졌다. 그녀와 나는 랜덤채팅에서 메신저로 옮겨졌고 그녀의 목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달콤했다. 약간은 허스키한 보이스에도 톤이 높은 그녀의 목소리는 굉장히 매력적이게 다가왔다. 귀여운듯 하면서도 어른스러운 목소리였다. 나는 그녀가 보고싶었다. 그녀도 내가 보고싶었다.
우리는 약속을 잡았다. 채팅을한지 채 일주일이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서로는 서로를 원했다.
내안역, 그녀는 자신을 찾아보라며 장난을 쳤고. 나는 찾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몰랐다. 사진을 본적도 영상통화를 해본적도 없었기에.
약속된 날짜에도 그녀의 장난은 계속됐다. 하지만 그녀를 찾는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내안역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솔찬히 놀랐다. 수수한 차림의 그녀였지만 비져나오는 아름다움은 숨길 수 없었다. 눈도 입도 굉장히 큰 그녀였다.
스스로 키가 158이라고 했지만 비율이 좋아선지 전혀 그래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쾌활했다. 나를 놀리고 싶어했으며 나는 그녀의 장난을 받아주었다.
그녀와 나는 마치 오래전 부터 봤던 것 처럼 어색하지 않았다. 
그녀와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고, 그녀와 점심을 먹은 뒤.
우리는 서로를 탐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까지나 나는 그녀의 '주인님'이었다.
손바닥, 혁띠, 손가락, 진동기. 그녀에게는 꽃향기가 났다. 라벤더향기.
향수냄새는 아니었고. 그저 그녀의 샴푸냄새 뿐이었다.
도톰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몸을 나름 부드럽게 매만지나, 더운날씨 탓에 부드러움은 없고 진득함만 남는다.
그녀는 강압적인 분위기엔 쉽게 식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 욕설에 달아올랐다.
그녀는 한번 달아오르면 몇번이고 절정에 올랐다.
그렇게 일주일간 다섯번을 내리 만나고, 그녀는 점점 더 스스로에게 솔직해져갔다. 이젠 내가 단순히 귓가에 속삭이는 것 만으로도 몸은 쉽사리 뜨거워져 침대 시트를 적셨다. 확인시켜주자 그녀 스스로도 자신에게 놀란듯, 그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말이냐고 내게 되물었다.
하지만 이렇게 질펀하게 놀면서도 나와 그녀는 한번도 이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몸상태와, 너무 빠르지 않냐는 이유로 나와의 합일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항상 손만이 바빴다.

마지막 만남은 담백했다. 그동안 너무 달린 이유도 있었고 쉬어갈 겸 해서 그녀와 데이트를 즐겼다. 카페도 가고 점심도 먹고 보드게임 카페도 가고 노래방도 가고.
그녀는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고, 다음날 알바를 하고있는 나에게 마지막 통보 문자를 보냈다.
자신의 집안사정과, 자신이 변해가는 모습이 두렵다는 내용의 문자였다.
나는 슬펏지만 이내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녀를 그렇게 떠나보낸 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녀와의 육체적 탐닉이 아니었다.
그녀와 보드게임 '인스'를 하던 기억이 제일 오래 남았고
신기루같았던 그녀와 그 보드게임을 한판 두고 싶다.
익명
내가 누군지 맞춰보세요~
http://redholic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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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017-08-26 16: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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