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 익명게시판
미지근한, 뜨거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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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고 싶지 않은 여전한 손에 작은 안도를 느꼈다. 그래도 왠지 효과 없는 기침약처럼 안도는 불안으로 금세 맴돌았다.
 
부스럼이 떨어지는 실금에 손을 닿기라도 하면, 함께 빚은 시간까지도 와르르 무너질까봐서. 우린 일련의 갈등을 모른 척했다.
 
그녀는 공연을 마친 화려한 밤마다 자신보다 큰 기타를 메고 내가 필요하다고 텅 빈 눈으로 말했다. 나 또한 그렇기에 서로의 밤을 채울 때마다 더욱 공허해졌다.
 
그녀는 삶의 목표이자 낙(樂)인 락(Rock)을 줄여가면서 까지 다른 노동으로 생활비를 벌었다. 나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다른 밴드원과의 갈등을 만들어도, 그녀의 지키고 싶은 것 가득한 의존이 무언가 잘못되고 점점 무겁게만 느껴져도, 나 또한 말을 아꼈다.
 
한 침대에서의 헤엄 뒤에 땀이 범벅된 몸으로 내 가슴 위에 엉켜있는 노란 머리카락과 그녀가 죽어가는 사슴마냥 숨을 고를 때에 비로소 입을 열 수 있었다.
“돌아가자.”
나는 그녀의 정수리에 턱을 괴며 말했다. 팬과 가수 사이로 돌아가자고.
 
“응.......”
그녀의 대답은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로 눈물이 차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뭐가 뭔지, 알기 전에 뒤를 상상하지 않으면 우린 좀 달랐을까?”
“........”
두서없이 그녀가 뱉은 말의 뜻을 알 것 같아서, 대답할 수 없었다.
 
“나 밉지.”
“아니.”
“밉기도 할 거야, 나도 내가 싫어. 그래도 나 미워하면 안 돼?”
“안 미워해. 네가 소중한 건 나도 소중해.”
조금 더 강요했으면 좋았을지도 모르는 것에 대해, 나는 묵인했다. 그게 그녀의 꿈을 조금 더디게 만들기까지도 했기에,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공연 때 기타를 들고 날뛰는 모습과는 다르게 훌쩍거리는 소리 한 번 없이 긴 시간 울었다. 붉어진 코와 볼, 부은 눈을 하고. 그녀는 시원하다고 말했다.
 
파란 조명 같은 달빛 속에서 우린 마지막처럼 섹스 했다. 더는 눈을 뜨지 못할 것처럼, 더는 서롤 듣지 못할 것처럼, 더는 서로의 냄새를 맡지 못할 것처럼.
 
눈으로 그녀의 선(線) 하나, 형(形) 하나를 모두 담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경박해서 아름다운 소리를 질렀다. 또 한 그녀만의 눅눅한 머리냄새와 더 깊이 들어갈수록 달큰하고 친숙한 향기를 모두 마셨다.
 
“안에.......안에 싸줘.”
그녀는 부서지고 다시 세워지는 몽롱한 의식을 가진 표정으로 말했다.
 
위험하니만큼 대책 없고 불성하고 무책임하게 그녀의 안에 나를 쏟았다. 그녀 안의 내가 넘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와 두 번 다시없을 아침 식사를 함께하고 왠지 오늘 따라 발이 잘 들어가지 않는 스니커즈에 계속해서 발을 밀어 넣을 때, “종종 공연 보러 와.” 라며 그녀가 말했다.
 
“내 책 사주면.”
“당연하지. 우린 그 뭐랄까.......꿈꾸는 게 직업이고 상상하는 게 일이잖아?”
“아티스트라는 단어보다 훨씬 낫네.”
그제야 신이 신어지며 비교적 가벼운 발걸음으로 현관문을 열 수 있었다.
 
현실이 한심하다고 말하는 우리는, 각자 미지근하고 뜨거운 소중한 것을 지닌 채 계속 되어야 한다. 현실을 넘고 무언가 달라지기 까지.
 
끝-
익명
내가 누군지 맞춰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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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017-03-29 10: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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