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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널 이렇게까지 품을 수 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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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수업이 끝나자 몇 십 명이 우르르 지하 교실을 나갔다. 악취미를 보여준 몇몇 여자아이들과 M은 그 물살을 타지 않고 나중에 나가려는 것으로 보였다.
 
책상을 끌고 가방을 들고 뚜벅뚜벅 푸드득 거리는 잡음 속에서 그녀를 응시했다. 그저 고맙다는 말을 건넸으면 됐다. 그 뿐인 일도 못하는 서투른 이가 나였을 뿐이지.
 
여학생들은 M에게 왜 나를 도왔냐는 말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조금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M과 눈이 마주치자 나도 그냥 고개를 숙이고 물소 떼 같은 학생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작은 후회를 머금고 참여한 그 다음 수업은 실습이었다. 로브스터의 꼬리를 손질하는 쉬운 수업이었다.
 
같은 반이나 내 소문이 미처 퍼지지 않은 조원들을 만나 순조롭게 실습을 진행했다. 수업 후 그대로 조리복을 입고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피웠다. 그래도 담배친구는 있었다.
 
학교에 잘 나오지 않는 녀석, 장난이 너무 심해서 소외된 녀석. 이들이 내 담배친구였다. 모두 하나같이 뒤틀리고 뾰족한 녀석들이었다. 뾰족해서 뒤틀린 건지, 뒤틀려서 뾰족해졌는지는 모르지만. 귀찮으니까 순서대로 A ,B 라고 부르자.
 
“다녀야 되는지 모르겠다 이거.”
“왜 또.”
“귀찮잖아. 수업도 도움 안 되는 것들뿐이고.”

A가 늘 하던 한탄을 늘어놓았다.

“그래도 넌 나처럼 왕따는 안 당하잖아.”
“오늘은 뭐 당했냐?”
“일부러 빈자리 쪽 앉아서 내가 앉으려고 하면 가방 놓더라.”
“크크크큭. 못된 년들.”
“점점 영악해진다.”

푸른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 때 B가 담배 불씨를 내 목에 가져다 댔다.

“아 뜨거!”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아서 웃는 B의 명치를 때렸다. B는 맞고 쓰러져서도 껄껄거렸다.
 
“진짜 뭐하는 거냐, 병신끼리.”

나를 포함한 우리가 참 한심해 보였다. 우린 겉돌고 소외되었다는 점 말고도 더 한심한 공통점은 참 오만하다는 점이었다. 모두 자신이 자처하고 주어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반성은 없고 반감만이 있었다.
 
A는 냉소를 짓고, B는 고집을 부리며 나는 분노로 일관했다는 표현만 달랐을 뿐이었다. 모두 계속되면 상황만 안 좋아질 것은 분명했는데. 좋지 않은 것일수록 고수하는 버릇은 남자에게만 있나 싶던 순간이다.
 
나는 화장실로 가서 찬 물로 목을 식히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1층으로 내려와 놓인 커다란 거울을 보았다. 내 표정은 언짢았다. 기분보다는 내가 언짢음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마치 언짢음이라는 가시가 얼굴 곳곳에 자라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거울을 보며 내 볼을 만지작거렸다. 분명 까칠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라며 웃어보려고 했다. 그러다 뒤에 지나가는 학생들이 거울에 비치는 것을 보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교문 근처 운동장 겸 작은 주차장으로 나왔다.
 
‘텅!’
 
순식간에 내 머리에 농구공이 내려쳐졌다가 튕겨져 나갔다.
 
다른 반 남자 몇몇과 얼마 전에도 함께 밤을 새며 게임을 하던 친구인 줄 알았던 놈들이 농구장에 있었다. 한 놈이 손을 들어올리며 “미안.”이라고 말하고 다른 이들과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근처에 있던 주차금지 표지판을 잡았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 내 손을 잡았다.
 
“저녁 먹었어?”

또 그녀였다.
 
나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싱겁다는 표정을 한 녀석들을 뒤로하고 역 쪽으로 향했다. 걸으며 담배를 태우다 뒤를 돌아봤을 때 코를 막고 따라오는 M이 보였다.
 
“걸으면서 담배 피면 순경 아저씨한테 걸릴 수도 있어.”
“........”
“무슨 담배야?”
“멘톨.”
“이름이 멘톨이야?”
“아니. 아이스 블라스트.”

나는 담뱃갑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보여주며 말했다.
 
“애들 많이 피우던데 이거.”
“멘톨 캡슐 같은 게 있어.”

당시에는 캡슐 담배가 시중에 이거 하나였다. 지금은 맛 담배라는 캡슐담배의 종류가 열 가지도 훨씬 넘지만 말이다. 그런 시덥잖은 것을 왠지 설명해 주고 싶었다. 서툴러서 미처 못 전한 말이나 감정 대신 읊고 싶었던 것 같다.
 
“같이 피워.”

그녀는 하나 남은 담배를 쏙하고 뽑아갔다. 잠깐의 눈치도 보지 않고 돗대인걸 알면서도 가져간 것으로 봐서는 흡연자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껌이나 간식처럼 대학생이 스스럼없이 언제든 살 수 있는 취급을 하는걸 보면. 곤란하다는 표정의 내게 “안 되는 거였어?” 라는 표정으로 대답하는 것 같았다.
 
“안 될 건 없지.” 라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불을 건넸다.
 
그녀는 어디서 본적 있는지 불을 데자마자 담배를 빨아들였고, 곧바로 90도로 인사하며 기침했다.
 
“파하하하 그러게 왜 피워 본 적도 없는 걸 시도해.”

나는 흉부가 질길 정도로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 딱 봐도 뭐.......”
“그래도 웃었네?”
“아.......응.”
“좋았으!”

그녀는 의욕 없어 보이는 졸린 눈을 그대로 두고 입술만 빙긋 웃으며 나를 봤다. 그러다 난 저 멀리서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삼삼오오로 오는 반애들을 발견했다. 소문을 퍼뜨린 그놈도 있었다. 난 나도 몰래 그녀의 팔을 잡아끌고 작은 활어횟집 뒤, 주차장으로 숨었다.
 
“왜 뭐 있어?”
“우리 반 애들.”
“근데 왜 숨어?”
“........나랑 같이 있는 거 보면 너도 놀림거리가 될 수도 있잖아.”

아예 맘에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래도 주된 이야기도 아니었다. 두려움이었다. 폭력이 가해지거나 딱히 엄청난 행위를 당하진 않았다. 시선이었다. 그 시선이 가장 무서웠다. 남들에게 괜찮은 녀석이라고 생각될 때엔 몰랐다. 없던 일이었을 수도 있고 있어도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소외시키고 경멸해야하는 대상이 되었을 때는, 그 차가운 시선이 무엇보다 무섭고 피하고 싶었다.
 
M은 내손을 쥐었다. 그 졸린 눈 탓에 안타까워하는지 웃는지 모를 것 같은 표정으로 그들이 지나 갈 때까지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 때의 내 표정은 어땠을까 아직도 조금 궁금하다.
 
반 아이들은 꽤 멀어진 것 같았다. 그러자 그녀는 “배고파.” 한마디 이후에 나를 이끌고 어디론가 계속 향했다. 몇 개의 음식점과 작은 시장, 커다란 백화점을 지날 때까지 그녀는 내 손을 자신의 허리춤에 넣고 계속 걸었다.
 
“뭐 좋아하는지를 안 물어봤네?”

그녀는 큰 건물에 멈춰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대로 그 건물에 함께 들어갔다. 계단 두 층을 오르니 많은 문들이 있었다. 한 문으로 열쇠를 열고 들어갔다. 무척 좁고 작은 방이었다. 조금은 어질러져있고, 정신없는 냄새가 나는 것이 사람 사는 곳 같아서 왠지 마음이 더 차분해졌다.
 
잠깐 멈춘 사고를 조금 회전해 보니 나는 그녀의 자취방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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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앙기모띠주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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