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양반들의 성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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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인도>
<성종실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흔히 고려 말을 음행이 극치에 달했다고 하는데, 조선의 양반들도 만만치 않았다. 고위 벼슬아치가 회식 중에 기생을 데리고 관공서에서 관계를 맺을 정도였으니, 당시의 성적 방종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편, 판중추 벼슬에 있었던 이순몽은 어머니 무덤에 성묘를 하러 가면서 기생과 동행하였는데, 백주대낮에 기생과 같이 목욕을 한 후에 "기생과 행음한다"고 크게 소리치고서 관계를 가졌다. 헌데 이순몽의 아들 석장은 아버지의 첩 보금과 통간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사관은 이를 두고 "이순몽이 황음하여 법도가 없어 가법이 패하고 무너져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탄하였다. 이처럼 조선의 양반들은 도덕군자임을 자처하여, 아내와 백성들에게는 성을 억압하면서 자신들의 욕구는 거침없이 해소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기생 쟁탈전이다. 태종 때 대호군 황상의 첩 가희아는 한편으로 총제 김우와 내연관계였다. 가희아가 빼어난 미모로 궁중 잔치에 불려가자, 김우는 자기 휘하의 기병과 보병 30명을 동원하여 가희아를 납치했다. 그러자 황상이 몽둥이를 들고 뒤쫓아 전투를 벌였다. 결국 두 사람은 장군에서 사병으로 전락하여 수군에 편입되고 말았는데, 심지어 왕이 아끼는 궁녀까지도 납치하여 첩으로 삼는 경우도 있었다. <태종실록>에 보면, "내가 얼굴을 아는 기생도 내연에 나오지 않는 자가 있어 정제에 결원이 생긴다. 말할 가치도 없는 일이지만 제 집에 숨겨두고 제 첩이라고 까지 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태종이 한탄하고 있다. 관료들이 기생을 점유하는 방법은 이렇다. 마음에 드는 기생이 있으면 담당 관리에게 부탁해 속신해서 일단 집으로 빼오고, 대신 자신의 종을 기생으로 올린 뒤 죽은 것으로 서류를 꾸며 다시 집으로 데려온다. 어쨌든 조선의 선비들은 "공자님도 첩을 두었다" "화담과 율곡 선생도 서얼을 두었다"는 말로 자신들의 축첩과 기생 다툼을 합리화했으니, 그래서 조선을 양반의 나라, 양반들의 천국이라고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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