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Undress me>
남자와 여자가 있다.
그들은 몸으로 만나려 한다.
하나하나...옷을 벗으면서..
입은 옷 만큼이나 꼭꼭 감춰두었던
아무에게나 함부로 보여주지 않았던 자신의 숨겨둔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남자가 여자를 만날 때
그대는 전혀 아무런 염려가 없는가?
마냥 즐겁고 설레기만 하는가?
설레임과 흥분 속에서도 두려움은 남아 있지 않은가?
나는 겁이 난다.
내일 내 나이 50을 바라보고 있고
내 몸에 대해서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다고 하는 이 순간에도
처녀처럼
남자를 처음 대하는 것처럼
여전히 수줍고 어색하고 불편하다.
남자를 향한 내 여자가 뜨겁게 달떠
내 모든 긴장을 완전히 녹여낼 만큼의 에너지를 내지 못할 때.
난
대단히 겁에 질려 오돌오돌 떨면서 어딘가로 숨고 싶어 한다.
잠시 나랑 눈을 마주 보고 있어 주었으면 해.
당신의 따뜻하고 자상한 미소가 필요해.
당신이 나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해.
당신 혼자 아무렇지 않게 옷 벗지 말아줘.
그러면 난 버려진 느낌이 드니까.
그려면 난 당신과 마음 깊은 곳에서 만나는 것이 어려워지니까.
이 말이
입술 앞에서 달싹달싹 몇 수십번을 달싹여도
당신에게로 감히 꺼내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한편 좌절하고..한편 포기하고..
그러면서 나도 아무렇지 않은 듯 가장을 하지.
당신은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물음을 담은 내 시선이 공허하게 당신을 쫓다가
잠시 그렇게 당신을 쫓고 내 안으로 다시 돌아온 후에야
나는 욕실에서 뜨거운 물로 몸을 적셔
짧은 순간 그토록 길었던 시간속에서
홀로 힘겨웠던 감정들을 녹여내
시간이..꽤 걸려.
왜 그렇게 오래 씻냐고 남자는 묻지만
여자는 황량하게 갈라진 가슴에 숨을 불어 넣어야 하니까
심호흡으로 깊이 깊이 다시 생명을 불어 넣어야 하니까.
남자가 홀로 움직이면서 여자가 외로웠을 그 시간의 무게만큼
남자에게 내 마음을 솔직히 드러내지 못해 자책한 마음의 짐만큼
모두모두..다 녹여내어야 하니까.
당신 잘못이 아니란 걸 알아
난 관계를 조율할 만큼의 내면의 힘은 있어
그래도..가끔씩 당신이 아주 낯.설게 내 앞에 올 때
순간 당황스러워 어찌할 줄 몰라 망설이는 나를 만나게 돼
천천히 움직여야 해
놓치지 말고
급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 않고
천천히...아주 천천히
내가 놀라지 않게
내가 겁먹어서 울지 않게
내가 쓰러지지 않게
당신을
밀어 내지 않게
당신을
원망하지 않게
당신을
당신의.. 눈동자를 맑히 응시할 수 있게.
당신은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 거야?
* 아무런 감정적인 연결감 없이 서로 따로 샤워하고 서로 따로 옷을 벗었던 때의 묵묵함. 어색함.
옷을 벗는다는 것.
내 몸매에 대해 평가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불뚝 튀어나는 똥배, 쳐진 젓가슴, 거무튀튀하고 얼룩덜룩한 살색, 잡초처럼 무성진 음모,
임신 때 터진 살자욱, 매끄럽지 못한 피부표면, 울툭불툭한 팔뚝과 종아리, 너무 큰 젓가슴,
옆구리 살...
내 몸을 그렇게 보고 있는 나를 들킬것 같은 두려움.
홀로이 각자 따로 옷을 벗는다는 것.
내가 싫어졌나?
억지로 움직이나?
내 몸만 탐하나?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욕망으로 달려 오나?
그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
버려진 느낌
이 짓을 왜 해야 하나.. 화가 섞인 자책과 질문
무수하게 많은 생각, 갈등, 두려움..
너 별거 아니네..라고 말하는 것 같은 침묵. 그가 전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내 안의 두려움을 만나는 것. 그 두려움을 스스로 껴안아 주어야 한다는 알아차림과 실행.
하나가 된다는 것.
감정적인 측면에서나 몸의 측면에서나 언제나 함께 움직이여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몸으로 만난다는 것.
다른 어떤 것 보다 더 많이, 더 깊이 서로에게 완전히 의존하고 내 맡겨야 한다는 것.
옷을 벗는 순간부터, 아니 훨씬 그 이전 만나는 순간부터 깊이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표현되어 지고 전달되어 져야 한다는 것.
당신은 정말로 아무래도 괜찮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