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데 겨울밤의 농도가 꽤나 진했다. 이런 날엔 진탕 술을 마셔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집어치웠다. 나보다 우월한 울림통을 가진 엄마의 잔소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집으로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려놓았다. 라면이 어디에 있더라. 아 여기 있다. 평화롭고 별일 없는 밤이었다.
라면을 먹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신경질적으로 젓가락을 식탁에 내려놓고 전화기를 바라봤다. 대학교 선배의 전화였다. 전화를 받으니 울먹이는 선배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뭐 하냐? 나 그냥 있는데, 별일 없으면 나랑 술이나 마시자. 마침 별일 없는 밤이었는데 알았어, 나갈게.
선배의 목소리가 촉촉했다. 헤어졌나? 바위같이 생긴 그 선배도 여자와 헤어지면 우는구나.
새삼 그 바위 같은 얼굴이 흘리는 눈물이란 것이 궁금해졌다. 술집에 들어서니 선배는 자작을 하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꽤나 울었는지 눈이 살짝 부어있었다. 나는 “형 헤어졌어?”라며 이별의 전모를 캐물었다. 선배는 그녀가 자신과의 섹스가 마음에 안 들어서 떠났다며 자신의 잠자리 기술을 탓하고 있었다. 고개 숙인 남성의 표본이라도 된 양 선배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말없이 넘어가는 소주가 꽤나 썼다. 나는 이럴 거면 나를 왜 불렀나, 싶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선배의 목소리가 이내 발기하더니 사정하듯 그녀의 이야기를 분출했다. 한참을 듣다가 잠자리만으로 차인 선배도 답답했지만, 오랜 기간 사귀면서 잠자리에 대한 불만을 한 마디도 털어놓지 않은 그녀도 답답했다. 아니 그럼 선배와 사귄 그 여자는 여태 연기였던 거야? 그 수많은 잠자리의 신음들이? 나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씨팔, 모두 다 연기였대. 이런 젠장 모두 연기였단다.
선배와 나는 맥주 몇 잔을 더 마시고 곧바로 헤어졌다. 새벽 밤의 어둠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뒹굴고 있었다. 섹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이 새벽에 누구를 어떻게 불러 언제 모텔까지 도달할 것인가. 에이 씨, 집에 가서 야동이나 한 편 보면서 아랫배에 고인 욕망들을 싹 다 분출한 뒤 곧바로 잠이나 자야겠다. 입은 씩씩 거리고 있었지만, 왜인지 나의 고추는 너무도 평온했다. 갑자기 먹다가 만 라면이 떠올랐다. 이상하게 허기가 졌다. 그리고 섹스로는 배를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너무도 솔직한 선배의 말들이 왠지 모르게 가슴에 맺혔다. 나와 몸을 나누었던 그녀들의 신음과 나 없인 못 살겠다는 절정의 표정들이 모두 거짓이었을까? 거짓이었다면, 왜 그녀들은 솔직하게 자신들의 요구를 언어로써 구체화하지 않았던 걸까? 아쉬움과 배신감이 교차하였다. 그 후로 나는 정말 열심히 섹스를 했다. 목 언저리까지 차오르는 사정의 유혹을 도로 삼킨 채, 열심히 땀 흘려 그녀들을 위해 봉사했다. 그러나 그녀들이 만족한 건지 못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들은 도통 말이 없거나, 내가 이해하지 못할 말들만 내뱉었다. 여자들은 자기가 가지고 싶어 하는 구두는 솔직하게 말하면서, 자신이 선호하는 체위는 쉽게 말하지 못 한다. 여자들이 침대 위에서 말을 아낄수록, 남자들은 자신의 섹스 실력이 우월하다는 얄팍한 자부심을 가지게 된다. 이건 정말 좋지 않은 현상이다. 여자에게든 남자에게든.
오늘도 나는 섹스의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에 골몰한다. 싱싱한 육체에 대해 고찰하기보다는 복잡한 조리과정을 거친 여자들의 심리에 더욱 몰두하게 된다. 아, 머리가 아파진다. 미안한 말이지만, 남자들은 여자가 말을 해주기 전까지는 절대 모른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야만의 습성을 가진 남자들은 여자의 커다란 가슴을 한입에 삼키는 데만 집중한다. 그렇다고 그녀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남자들은 모르는 것이다. 여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지. 그러니 날 것의 말을 해주면 된다. 너무나도 신선하고 자극적이게 우리에게 요구하면 된다. 여기야 이곳에다가 너의 혀를 송두리째 박으란 말이야. 라고 아, 이건 좀 무리인가. 어쨌든 나는 좀 더 깊숙한 당신들의 솔직함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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