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욕이 없다 vs 누군가에게 성욕이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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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이 더 씨] 성욕, 섹스하고 싶은 욕망, 섹스하고 싶다는 욕망, 자기 안에 뭉쳐있는 에너지를 섹스를 통해서 터트리고자 하는 욕망. 지금 성욕을 느낀다. 지금 섹스를 해서 성기 주위로 뭉쳐오는 에너지를 해소하고 싶은 욕망이 느껴진다. 이 사람 앞에서는 더 강하게 성욕을 느낀다. 이 사람과의 섹스에선 내 안에 뭉친 욕구가 더 짜릿하게 해소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이 사람 앞에선 강렬하게 성욕이 치밀어서 어찌할 줄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 이 사람과의 섹스에선 내 안에 뭉쳐지는 욕구가 더 짜릿하게 터져 나갈 거라고 기대해서 당장 그것을 실행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기대가 보상받는다. 그 사람과의 섹스를 더 열망하게 된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보상받지 못하게 된다면 점점 기대가 줄어들면서 그 사람 앞에서 점점 더 성욕이 생기지 않는다. ㅣ성욕이 별로 없다 VS 누군가의 앞에서 성욕이 생기지 않는다. 성욕이 별로 없는 것과 누군가 앞에서 성욕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다르다. 성욕이 별로 없다는 것은 온 세상의 이성에게 그다지 성욕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의 앞에서 성욕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이 사람이 나의 에너지 뭉침을 해소해 줄 사람이라고 생각지 않아서 기대에 떨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 한 번 이야기해 보자. 누군가가 세상에 태어났는데 그 집엔 라면밖에 없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서 평생 라면만 먹고 살았고, 이 사람의 식욕은 이 라면에 대한 욕망이다.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그 집을 벗어났는데 음식 명장이 하나하나 국물을 내고 손질해서 싱싱한 재료로 만들어낸 한식 전문점에서 풀코스 요리를 먹게 된다고 쳐보자. 처음엔 어떻게 먹어야 할지도 몰라서 얼떨떨할 수 있다. 차라리 라면처럼 후다닥 뚝딱 먹었던 게 낫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있을 수 있다. 마음을 집중해서 먹어야 하고, 좀 더 긴 시간 먹어야 하고, 자세도 대충 막 먹어서는 안 될 것 같고... 그러다가 그 맛깔스러운 한식 요리를 여러 번 다 맛보고 난 후 목구멍에, 위와 장에 온몸의 감각이 여태보다 훨씬 환상적인 맛을 보게 된다. 이제 이 사람은 더 이상 라면에 대한 식욕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식욕이 사라진 것을 의미할까? 그렇지 않다. 그 사람이 라면에 식욕을 느끼지 않는 건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닐 수 있다. 맛깔스러운 환상적인 짜릿한 식감을 주는 음식이 생겨난다면? 그 사람이 더이상 라면을 끓이지 않고 자기의 파트너와 같이 그걸 배우고 찾아내고 만들어간다면? 더구나 그 방법이 자기를 고요히 들여다보면 인간들의 자기 본능 안에 있는 거라면? 성 치료사인 에바마리아는 '굿바이 섹스리스'라는 책에서 섹스중이 섹스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오히려 좌절된 섹스 욕구와 그에 대한 불안에서 올 수 있다고 말했다. ㅣ성욕에 대한 생각 몇 줄 - 성욕은 있다 없다 단정할 수 없다. - 자기가 알고 있는 섹스의 쾌감이 다가 아닐 수 있다. - 더한 감각을 만나면 그것을 열망하게 되어 줄어들던 성욕도 생길 수 있다. - 그것이 충만하게 터트려진다면 성욕은 맛있는 코스요리처럼 환희로 가득할 수 있다. 그래서 다시 기대감이 고조된다. - 한편, 지속해서 좌절된 욕구 발산은 오히려 섹스에 대한 방향성 없는 발산 욕구로 나타날 수도 있다. 글쓴이ㅣjj2535 원문보기▶ https://goo.gl/kcVrX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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