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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내 남자의 유통기한’ - 이제 날 사랑하지 않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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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 남자의 유통기한] 1 친구 김양은 남편이 첫 남자였다. 그녀는 연애시절 애인의 유혹, 읍소, 한탄, 육탄전 등 치열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자신의 처녀성을 지켜 보람된(?) 첫 날밤을 치러냈다. 2년 연애하면서 애인 빤스 속에 손 한번 못 넣어본 김양의 애인, 그 늙다리 총각이 결혼하던 날 그의 얼굴에 빛나던 광채는 거짓말 조금 보태 갈비탕 스테인레스 그릇에 반사될 정도로 굉장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애 닳아, 몸 닳아 했던 만큼 그들의 신혼은 그야말로 침실에 불 켤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 흘러갔고, 그 뜨거운 실상은 한달 즈음 지나 가졌던 집들이에서 약간 상기된 표정의 김양에 의해 낱낱이 밝혀졌다. “하루도 그냥 자는 날이 없다니까. 정말 힘들어 죽겠어.” “이년, 좋을 때구나!” 누구는 야유했고, 누구는 질투했으며, 또 누구는 침묵, 누구는 긴 한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신혼의 단꿈에 담뿍 빠진 김양, 볼 빨간 김양을 흐믓하게 바라보다 문득, 그 이야기를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2 사랑하는 사람과 처음 섹스를 할 무렵, 우리의 몸은 에너지로 넘쳐난다. 콘돔 한 박스를 사 놓으면 언제 다 썼는지 모를 정도로 횟수는 많고 휴식기는 짧다. 이때는 바야흐로 질보다 양이 승리하는 때이다. 어떤 게 좋은 섹스이고 잘하는 섹스인가에 대한 관심은 아직 없다. 기회가 오면 일단 들러붙고 보는 것이 최상이다. 그 공간이 숙박업소라면 주로 주말에, 애인의 자취방이라면 그보다는 자주 불타는 밤이 허락될 것이다. 결혼한 부부라면 물론 에브리데이 제공 된다. 그렇게 한 두 달이 흘러간다. 그 사이 여자친구나 와이프는 '내가 섹스 머신이냐‘ 하며 눈을 몇 번 흘기기도 할 것이다. 남자는 다리를 주물러 주기도 하고 물을 떠다 바치기도 하며 안하던 애교도 부리고, 그러다 에라이, 한 번 더 쓰러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한 두 달이 흐르고 나면 그 팽팽하던 성적 긴장감에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어느 평범한 저녁, 남자는 관성의 법칙대로 그녀를 더듬으면서도 머릿속에서 약간 갈등을 때리기 시작한다. 딱히 하고 싶은 마음은 안 들지만 매일 하다가 갑자기 안 하면 어색할 것도 같고, 그래서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슬쩍 파트너의 눈치도 본다. 가슴을 더듬던 손이 허리까지 내려와서 자리를 못 찾고 맴돈다. 여기서 더 내려가면 하는 것이고 여기서 철수하면 안 하는 것이라는 암묵적 동의란 게 있는데 그 마지노선이 아마 배꼽라인 근처가 아닐까? 3초간의 포즈- 끝에 남자는 슬쩍 힘을 뺀다. 잠든 척 하다가 진짜 잠들어 버린다. 여자는 드디어 안 하고 자는 날이 도래하는구나 싶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 동안 너무 무리했다 싶다.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우리가 ‘강쇠옹녀’ 커플도 아니고 말이야. 그런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살짝 찾아드는 이 어색함, 그리고 서운함은 뭘까? 그렇게 끊어진 긴장감이 다시 팽팽해지는 일은, 안타깝지만 거의 없다. (물론 계속 이어진다면 제 명에 못산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로 짧게 건너뛰기 시작한 섹스는 어느새 주말용으로 굳어지게 된다. 아직은 괜찮다. ‘맞아, 이게 정상 싸이클이야.’ 하고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 점점 더 뜸해져 간다. 부부는 그나마 ‘출근, 시댁 가는 날, 임신, 육아’ 등등의 핑계거리라도 많지, 연인들은 ‘그냥 넘어가는 주말 밤’에 대한 변명거리가 궁색할 수밖에 없고, 궁색한 변명의 빈자리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끼어들기 시작한다. 밤마다 도시에 출몰한 멧돼지모양 돌진하던 그가, 아무리 피곤하다고 해도 ‘그럼 그냥 넣고만 있을께.’ 하며 자존심 없이 매달리던 그가, 어느 날 조용히 돌아누우며 묻지도 않았는데 피곤하다는 말을 먼저 늘어놓고, 그것이 기대하던 토요일 밤에도, 레이스 남발한 슬립을 입은 밤에도 묵묵히 이어지는 때가 찾아온다. 그것은 모든 연인과 부부에게 도래하는 운명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때가 언제 오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때를 어떻게 보내느냐의 문제이다. 타이밍이 서로가 원하는 때에 찾아온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게 넘어갈 수 있지만, 한쪽은 이제 발동이 걸렸거나 한창 뜨거울 때에 찾아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조금씩 식상해지는 섹스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간혹 그것을 다른 문제로 전이, 확대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식어버린 침대를 다른 문제로 전이, 확대 하는 데는 주로 여자들이 전문이다. 내가 김양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침실에 켜 놓은 무드 등의 불빛 아래 뜯어진 레이스 실밥만 묵묵히 발각되는 그런 밤, 남편에게 혹은 애인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는 사실, 마음속에서 여러 번 메아리쳐 울리더라도 절대 입 밖으로 내지 말아야 할 말, 그것은 바로 이것이다. ‘이제 날 사랑하지 않는 거야?’ 3 [파니 핑크]를 만든 감독 도리스 되리의 [내 남자의 유통기한](원제: The fisherman and his wife)은 남녀간에 일어나는 사랑의 생성과 발전 그리고 쇠퇴와 재생의 과정을 재미있게 담은 영화이다. 영화 [내 남자의 유통기한] 패션 디자이너인 이다와 물고기 전문가인 오토는 각자 일 때문에 찾은 일본에서 우연히 만나 첫눈에 반하고, 성격도 어찌나 급한지 일본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첫날밤을 치룬다. 사실 사랑은 생성직후가 최상의 클라이막스 단계이다. 반하고, 고백하고, 인심전심 해서 첫날밤을 치루는 단계에서 가장 많은 도파민이 분비되고 행복지수도 만땅을 친다. 그 다음부터는 쇠퇴만 남아 있을 뿐이다. 서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로 사랑이 깊어진다는 표현들을 많이 쓰고 그것이 정서적으로 만족감을 더 줄지는 몰라도, 흥분 상태로만 점수를 매긴다면 어쨌든 쇠퇴이다. 독일로 돌아온 그들은 아이를 낳고 생활을 이어나간다. 아내는 성공을 꿈꾸고 남편은 물고기와 함께 하는 고요한 일상을 꿈꾸는 탓에 부부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점점 더 멀어져 간다. 원제보다 한국어 제목이 영화와 더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들의 사랑이 유통기한이 분명히 찍힌 통조림처럼 내다 버려야 할 시간을 향해 촘촘히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는 해피앤딩의 미덕을 십분 발휘해, 완전한 쇠퇴와 몰락의 잿더미 속에서 새롭게 싹트는 부부의 사랑을 보여주면서 끝이 나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달콤한 앤딩을 찾기 힘들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이것이다.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밤, 잠자고 있는 오토의 방으로 이다가 찾아온다. 이다는 기모노 차림에 요란한 화장을 하고 남편에게 적극적으로 몸을 들이대지만, 오토는 질색을 하고 아내를 밀어낸다. 그러자 갑자기 기모노를 벗어 던지는 이다, 기모노 안에는 여전사용의 가죽 슬림을 입고 있다. 어느 틈에 채찍까지 든 그녀는 남편에게 채찍을 휘두르면서 외친다. 이래도 나를 안 원하지 않느냐고, 이제는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고…. 영화 [내 남자의 유통기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랑에 빠지면 도파민이나 페닐에틸아민같은 화학물질이 나와 밤마다 뒹굴고도 아침에 한번 더 하고 싶은 놀라운 사랑의 에너지를 주는 대신, 화학물질 제공은 만 3년을 넘지 못하며 상대를 바꾸지 않는 한 리필도 안 된다는 것을.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레 서로의 몸을 탐하고 서로의 마음을 기웃대던 에너지들이 컴퓨터 게임이나 술, 친구, 아이에게로 흩어져 간다는 것을. 그것이 에너지의 법칙이자 우주의 규칙이며 그렇게 생성, 발전, 쇠퇴, 소멸하지 않으면 지구는 뻥- 터져 버리고 말 것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꾸만 묻는다. “이제 날 사랑하지 않는 거야?” 4 얼마 뒤면 결혼 일 주년을 맞이하는 김양 부부의 현재 잠자리 주기는 열흘에 한번 꼴이라고 한다. 멧돼지였던 남편은 순한 양이 되어 그녀의 등짝에 얌전히 코를 박고 잠든다고 한다. 맞벌이라 본인도 고단하기 때문에 이러한 주기에 불만은 없지만, 아주 가끔은 남편이 멧돼지였던 시절이 그립다고도 한다. 그때는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분명했으니까. 추호의 의심도 없고 이의도 제기되지 못했으니까. 결혼생활이 지속되면서 서로에 대한 믿음도 이해도 더 깊어지고 단단해 지긴 했지만 그래도 등 한번 쓸어주지 않고 먼저 잠드는 남편을 볼 때면 ‘내가 여자로 안 보이나.’로부터 시작해 급기야는 ‘이제 날 사랑하지 않는 걸까?’로 이어지는 의심과 슬픔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김양은 그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사실 그 말은 해 봤자 본전도 못 건지는 말이고 서로 빈정만 상할 뿐이다. 사랑에 빠지면 여자는 가장 사랑받고 행복했던 순간을 그대로 ‘펌질’해서 마음속 깊은 곳에다 저장해 둔다. 그리고 수시로 꺼내보면서 현재와 비교한다. 어느 정도의 변화는 수용하고 이해하지만 쇠퇴의 속도가 빨라지면 마음속으로 절망한다. 남자들은 가장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순간을 가능한 잊어버리려 애쓴다. 체조 경기 점수 매기듯이 최고치 점수는 제하고 평균을 먹여야 롱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관계에서 찾아드는 쇠퇴와 몰락을 이겨낼 장사는 없다. 식어버린 마음을 데쳐주는 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어쩌면 타고난 성격과 인격, 페어플레이 정신일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자들은 앞으로도 끝없이 똑같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물어주는 것이 고마운 일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러한 질문들이 방부제 역할을 하는 덕분에, 유통기한을 넘긴 사랑이 썩거나 버려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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