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양연화 : In the mood for love]

 
ㅣ간단한 줄거리
 
1062년 홍콩. 지역 신문사 편집장인 차우(양조위) 와 그의 아내는 서민 아파트에 새로 이사를 온다. 무역업을 하는 남편을 둔 리첸 (장만옥) 은 그들의 옆집에 이사를 오게 된다. 이들은 서로의 배우자가 출장을 갔을 때 집주인과 어울려 마작을 하게 되면서 조금씩 안면을 트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차우와 리첸은 넥타이와 핸드백을 단서로 서로의 배우자가 불륜의 관계임을 알게 된다. 차우와 리첸은 이 문제로 인해 자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들은 서로에게 자꾸만 끌리게 된다. 하지만 자기 배우자의 불륜상대의 배우자라는 위치는 차우와 리첸이 서로 사랑할 수 없도록 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우리는 똑같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거나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사랑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랑의 대부분은 불륜이다. 사랑은 때로 도덕이나 상식을 뛰어넘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끝내 그것을 뛰어넘지 못한다. 차우와 리첸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ㅣ가장 아름다운 한 때
 
‘화양연화’ 여자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 혹은 인생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뜻한다. 차우와 리첸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는 동시에 또한 다시 오지 않을 아름다운 시절을 보낸다. 그들의 아내, 혹은 남편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바로 그들은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건 재채기와 가난과 사랑이다. 그래서 이들은 사랑을 숨기지 못한다. 다만 그들은 사랑을 이루려고 애쓰지 않을 뿐이다.
 
이룰 수 없는 꿈이 슬프듯 이룰 수 없는 사랑도 슬프다. 어쩌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그 사랑을 간절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해서는 안 되는 모든 사랑을 하는 이들이 그렇게 절실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거나 혹은 이루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애인이 있거나 배우자가 있다고 해서 사랑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사랑은 예고도 없이 찾아오며, 그것은 때로 자신의 힘으로 막을 수 없게 되어버리기도 한다. 차우와 리첸은 상대의 배우자가 바로 자신의 배우자와 불륜을 저지르는 상대이다. 그래서 이들의 만남은 처음부터 ‘배우자의 불륜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에서 출발한다. 둘은 갖은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문제의 쟁점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이제 두 사람의 과제는 배우자의 불륜 해결에서 끌려서는 안 되는 사람에게 끌리는 감정 처리까지 더해진다.
 

 
ㅣ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불륜은 아침 드라마의 단골 소재이다. 그리고 불륜은 실제 세상에서도 그만큼이나 흔해져 버렸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불륜 소재의 영화와 드라마를 통틀어 화양연화만큼 아름다운 영화는 없었다. 이 영화가 아름다운 이유는 아마 이들이 사랑을 하는 내내 슬퍼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이들의 사랑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차우와 리첸은 서로를 그렇게 보내고 나서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 각자의 방법으로 서로를 추억한다. 차우는 앙코르와트 사원 벽에 있는 구멍에다 대고 자신의 비밀을 말하며, 리첸은 그 옛날 자신들이 이웃해 살았던 아파트를 찾아간다. 만약 이 두 사람이 서로의 배우자가 불륜을 저질렀으니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별 죄책감 없이 서로에게 돌진했더라면 그래도 이 영화가 아름다웠을까?
 

영화 [화양연화 : In the mood for love] 

 
언젠가 애인이 있는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끌린 적이 있었다. 그녀와 나는 일 때문에 만난 사이였으므로 그 이상의 무언가가 끼어들 처지가 아니었다. 일 때문에, 혹은 일을 이유로 만날 수 있음을 내심 기뻐하며 우리는 자주 만났다. 나는 분명하게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하거나 표현을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마음은 말이나 행동을 통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전달되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그래서 곧 그녀도 내 마음을 알게 되었다. 얼마 후 나 역시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밤. 애인이 술에 많이 취해서 전화를 했다. 나는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녀는 슬픈 눈으로 말했다. ‘다른 사람 생긴 거 다 알아’ 물론 나는 부정할 수 있었다. 왜냐면 마음 속으로만 그랬을 뿐 실제로는 그녀와 나는 아무 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손끝 한번 옷자락 한번 스칠 만큼 가까이 있지도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만날 때는 늘 일이라는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부정하지 못했다.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가 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는 나 자신을 속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결국 애인과 나는 그것을 이유로 헤어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나를 떠나 보내길 원하지 않았고, 나 역시 그녀를 아프게 하고 마음에 품은 사람을 향해 달려갈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을 꺼내어 밖으로 보여주지 않는 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그 일은 표면상으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넘어갔다. 그 후로 나는 다시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  
 
사람을 마음에 품는 것과 실제로 품는 것. 두 가지 중에서 경중을 따질 수 있을까? 죄를 물어야 한다면 아마 실제로 품어야만 가능하겠지만 죄가 아닌 양심이나 마음의 문제라면 얘기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누군가를 마음으로 품는다는 것은 이미 모든 것을 허락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애써 기회를 만들거나 능동적으로 모션을 취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의 심장 속에는 노래 가사처럼 유리조각 폭풍이 몰아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차우와 리첸에게 이별이란 없었다. 사랑의 시작이 없으니 이별도 없다. 따라서 이들의 그리움은 기억이 남아있는 한 지속되는 것이다. 아쉬움 없이 사랑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별 후에는 그립기 마련이다. 그러니 사랑을 시작조차 해 보지 못한 이들에게 그리움은 얼마나 클 것인가. 차우가 뿜어내는 담배 연기 속에 그리고 리첸의 차이나 드레스 깃에는 서로를 향한 그리움이 먼지처럼 앉아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팔을 뻗어 안을 수 없다고 해서 그 사랑이,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다. 마음으로 안았다면, 그리고 마음 안에서 안겼다면 이미 그것은 사랑으로 충분한지도 모른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랑을 현실로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마음속으로 품은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마 이 영화는 잔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