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맨 빅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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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있을 때의 일이다. 지역 봉사라고 해서 일정 시기가 되면 일개 소대씩 나가서 농사일이나 노가다 같은 걸 도우면서 지역민과의 친목을 다지는 행사가 있었다. 사실 말이 지역 봉사지 나가봐야 아저씨들과 노가리 까면서 부대에서 작업하던 것과 비교도 안되는 적은 양의 일을 하고는 참과 소주를 즐기다 들어가는 게 지역 봉사였기 때문에 서로 나가고 싶어하는 게 지역봉사였는데 우리가 나가던 날은 목적지가 평소와 좀 달랐다. 10분 안에 도착하는 부대 주변으로 나가는 게 보통이었는데 그 날은 한 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갔던 것이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바로 ‘XX원’, 중증 장애인을 모아놓은 보호시설이었다. 대대장이 이 곳 시설과 무슨 봉사 계약을 맺었다나. 어딜 보는 건지 알 수 없는 눈으로 침을 흘리며 뒹구는 뇌성마비들 사이에 앉아 우리가 제일 처음 한 일은 원장에게 정신교육을 받는 일이었다. 군바리라고 일반인하고 다를 게 없다. 장애인이 옆에 있으면 웬지 뻘쭘하고 뭔갈 도와주거나 말이라도 한마디 건네야 할 것 같아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묘한 불편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근데 이 원장 강연 내용이 가관이었다. '자, 여러분은 행복함을 느껴야 합니다. 저들을 보십쇼. 저 초점 없는 눈과 뒤틀린 다리를. 저들은 인생에 밥 먹는 것 외에는 낙이 없는 이들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짐만 되는 그런 사람들을 제가 모아서 아무 의미 없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임무를 맡긴거죠. '너희는 감사해 할 줄 알아야 한다. 스스로 행복함을 깨달아야 한다.' 라는 사실을 이 곳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에게 느끼게 하는 것. 삶의 의욕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것. 그렇습니다. 여길 찾은 모든 사람이 힘을 얻어 돌아갔습니다. 자살하려던 사람, 알콜 중독자들, 진짜 힘든 많은 사람들이 여길 찾고 '아, 이런 장애인들도 있는데 나는 참 행복한거다. 인생 열심히 살아야 겠다.' 라는 깨달음을 얻고 간거죠.' 아니 이게 무슨 좆 디비지는 소리냐. 세상은 일반인의 것이고, 장애인은 들러리냐? 장애인은 일반인이 행복함을 깨닫게 해주는 도구 이외에는 아무 쓸모도 없다는 소리를 장애인들 잔뜩 누워 있는 가운데 떠들어대다니.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져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당장 단상으로 달려가 목사의 뒤통수를 후려쳤다면야 얼마나 좋겠냐마는 당시 군바리였고 소심했기에 못 그랬다. 군바리가 민간인을 치면 민법과 형법을 동시에 적용 받아 두 배로 벌을 받는 다고 교육 받았었거덩.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말년이기도 했고. 왜 이런 지루한 얘기를 늘어 놓냐고? 오늘 소개하려는 책이 장애 관련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탈리도마이드 베이비 출신이라는 거대한 장애를 딛고 세계 최고의 성악가로 거듭난 사람의 이야기, ‘빅맨 빅보이스’라는 책이다. 물론 당에서 소개해야만 하는 책은 어쩌면 이런 책이 아니라 ‘선천적 왜소 성기와 발기 부전, 조루라는 거대한 장애를 딛고 일어선 카사노바의 이야기, 빅맨 빅페니스’ 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당, 단순한 군소빠굴정당이 아니라 인간 간의 소통을 위해, 섬과 섬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진정한 명랑 정당이 아니던가. 인간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선 때론 이런 얘기도 들여다 봐야 하는 것이다. 물론 말아톤이나 레인맨 같은 영화를 보면서 이런 책 얘기를 꺼내어 점수를 따는 행동 역시 아주 바람직하다 하겠다. 알아서들 하시라. ㅣ탈리도마이드 이 사람 노래하는 사진이다. 왜 이렇게 짤뚱하냐고? 짤뚱하기만한 것이 아니다. 이 사람의 외모에 대해서는 본문을 인용해보겠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꼼꼼히 살폈다. 거울 속 성악가는 키 1미터 32센티미터에 성장이 멈춰 있었다. 팔과 무릎관절, 허벅지는 제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 손가락도 오른손은 4개, 왼손은 3개밖에 없었다. 엉덩이는 너무 컸다. 머리도 큰데다 대머리였다. 머리카락은 금발이었다. 1960년대 초반에 탈리도마이드 베이비라 불리는 아이들이 독일에서 만 명 가량 태어났다. 입덧 치료를 위해 복용하던 탈리도마이드가 태아의 성장을 막아 기형아가 태어난 것이다. 임신 21~22일 사이에 복용하게 되면 태아의 귀와 뇌가 영향을 받고 24~29일 사이에 복용하면 뼈가 성장을 못하여 팔과 다리가 매우 짧아지며 30~36일 사이에 복용하면 손과 직장, 항문등에 기형이 나타난다고 하지만 이거야 학술적인 얘기고 어쨌거나 이노무 약 복용 때문에 당시 서독에서 약 5천명의 아이들이 죽었다. 탈리도마이드 베이비의 1/3 정도는 뇌손상을 입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대부분은 정상이 아닌 신체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고 주인공인 토마스 크바스토프 역시 그 중의 하나이다. 이 책은 이제 육십이 된 그의 자서전이다. ㅣ내용의 중점 장애를 딛고 일어선 성악가 얘기를 다루었다 하니 질질 짜고, 엉엉거리면서 빨래 짜듯 눈물 짜내는 내용을 예상하신다면 기대감을 접으시라. 주인공은 장애라는 이유로 매일 두들겨 맞고 울지도 않고, 그런 아이를 집에서 부둥켜 안고 울며 ‘우리에게도 좋은 날이 있겠지.’ 어쩌고 뇌까리는 일 같은 것도 없다. 그의 아버지는 당당하고 아들의 재능을 살리기 위해 헌신하며 형은 동생의 공연여행을 따라다니는 반매니저인데다, 예상을 깨고 주인공은 처녀부터 이혼녀까지 다수의 애인을 갈아치우는 능력남이니 본 서기보다 훨 낫다 하겠다. 갈등이 없으니 처음부터 눈물의 소지도 없을 수 밖에. 여자 친구와 함께..
그는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정규 교육을 받기 힘들었고, 음대엔 결국 입학조차 못 했지만 과외를 받아 성악을 공부하고 별 어려움을 겪지 않은 채 서서히 명성을 얻어 성공한다. 아들을 정규학교에 집어넣기 위해 교장과 과감한 명랑을 시도하는 포레스트의 검프의 어머니 같은 교성 섞인(?) 얘기는 있지도 않다. 하긴 있어도 할 수 없는 이야기인가? 물론 아픔이 없다 할 수는 없겠다.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처럼 정규 교육의 부재나 주변의 폭력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나오긴 하지만. 어떤 여자애도 너와 함께 손잡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지 않을 거야. 너는 손이 거의 없잖아. 다리도 정상이 아니고. 그게 무지 뭐야, 그것도 아주 짧은. 자전거는 쳐다보지도 마. 그냥 가만히 있어. 왜냐고? 여자아이들을 위해서 자전거를 시내까지 밀고갈 수도 없잖아. 너는 무언가 속이고 있다고. 너는 다른 아이들과 달라. 너는 흉측하고 너무 작거든. 너는 기형적으로 생긴 난쟁이일 뿐이라고. 이제 좀 장애인의 아픔이 느껴지는가? 하지만 아픔은 금새 이렇게 바뀌어 버린다. 관객들은 처음에 키득대며 생뚱맞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건 놀랄 일이 아니었다. 나 같은 성악가가 콘서트 무대에 오르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을테니까. 난쟁이처럼 작은 키에 팔도 짧은데다, 그리고 제대로 자라지 못한 두 다리 때문에 로봇처럼 뻣뻣하게 움직이는 이 성악가를. 하지만 내가 칼 뢰베의 웅장한 발라드 <왕자 오이겐>에 맞춰 내 바리톤 목소리를 뿜어 내자마자 객석은 일순간 조용해졌다. 마지막에는 그 고요가 환호로 바뀌었다. 아무도 내 작은 덩치에서 그렇게 큰 목소리가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마법같이 여겨졌을 것이다. 마술사의 작은 모자 안에 그렇게 많은 토끼가 살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너무 잘 나가서 성질나고, 갈등이 없어 심심하기조차 한 이 자서전은 그가 딛고 이겨낸 장애 같은 것 보다는 오히려 그가 생각하는 세상, 그의 예술관, 그가 겪었던 유명 인사들과의 에피소드등을 다루는데 더 중점을 두고 있다. 물론 그의 신체적 특성 때문에 이 모든 것에 그의 장애가 관련되어 있긴 하지만. 그러나 이것은 평범함을 원하는, 신체의 콤플렉스를 남들에게 보이기 보다는 스스로의 노래로만 평가받고 싶어하는 주인공의 내면이 반영된 결과는 아닐까? 담담하게 써내려갔을지언정 그 밑에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의 눈물과 고통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ㅣ결론 사실 이 책의 선전 문구는 지나치게 장애인의 성공, 특수한 형태의 성악가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인간 승리적인 면모에 맞추어져 있지만 실제의 내용은 그것에 거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다. 주인공은 장애가 그것의 일반화를 용납하지 않는 세상과 부딪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얘기 하긴 하지만 그것에 특별한 중점을 두지도 않고, 울음 섞인 목소리가 아닌 담담한 태도로 그것에 대해 회상한다. 물론 이것은 이미 주인공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배가 불렀으니 예전 일이야 아름답게 채색된다는 식의 악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의 성공이 그의 장애를 모두 덮을 수 있을까? 공연 여행을 다니며 새로운 호텔에 묵을 때마다 세면대가 그가 들여다 볼 수 있을 만큼 낮은 위치인지, 엘리베이터는 버튼이 손에 닿을 만큼 낮게 있는지를 꼼꼼이 점검해야만이 등을 눕히고 쉴 수 있는 모든 상황을 현재의 성공이 덮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 책에서 보여주고 봐야 하는 것은 장애에 대한 시선의 문제, 장애를 돕고 그들에게 봉사한다는 시선이 아닌 같이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시선이라는 문제이다. 동정이라는 sympathy와 공감이라는 empathy는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른 것이다. 나는 장애인들의 신체적 결함이 결정적 핸디캡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티눈 정도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이곳까지 부지런히 읽은 독자들은, 내가 전형적인 장애인의 삶을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것이다. 나도 형처럼 스스로 머리를 때릴 수도 있고, 추억도 많다. 이를테면 사춘기 시절 맥주와 담배를 처음 경험했고, 이웃들의 닫힌 생각과 전쟁을 벌였으며, 첫 사랑의 키스도 맛봤으며 그리고 음악을 즐겼다. 신문 라디오 TV에 천편일룰적인 장애인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화가 난다. 그때마다 나는 내 신조를 중얼거렸다. '나는 8천만 독일 국민 중 한 사람일 뿐이야. 내 눈엔 모두가 똑같아 보인다고!' 주인공의 말이다. 우린 여전히 사람을 보기에 앞서 장애를 먼저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군바리 시절, 그 날의 나는 장애인들 목욕시키기, 장애인들 방 청소하기 등등의 여러 메뉴 중에 그 시설의 수입이 되고 있는 분리 수거 쓰레기 분류 및 정리 작업을 지원했다. 가장 힘든 일을 맡음으로서 진정한 봉사 정신을 실천해보고자 했다는 건 절대 아니고, 그저 그들과 같이 있는 것이, 그들과 같은 온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 불편해 차라리 추운 바깥에서 손 비비고 떨며 일하는 것을 택했던 것이다. 그것이 장애인에 대한 어떤 종류의 악의나 경멸감 등의 감정에서 비롯했다고는 지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그곳의 장애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내 동정어린 봉사와 희생정신이 아니라,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맥주 한 잔 하는 식의 어떤 공감은 아니었을까. 장애인을 돕는다는 것이 나쁘다는 말은 분명히 아니다. 세상이 그들에게 맞추어져 있지 않다보니 그들에게는 때로 도움이 필요할 것이고 그걸 외면하는 것 보다는 돕는 것이 훨씬 나을테니. 하지만 그 돕는다는 것이 머리 속에 박혀 장애라는 인식이 인간 존재를 넘어선 무엇이 되는 순간에 그들은 언제나 삶 속에서 객체가 되어버린다. 필요한 건 도움인가, 새로운 인식인가? 담담한 어조로 한 장애인의 기억을 더듬는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그들에 대하여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당원 제위께 일독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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