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페어 러브 - 영원한 사랑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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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페어러브] 사랑을 생각한다. 라고 표현하지 않고 꿈꾼다고 표현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사랑은 꿈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낮에 꾸는 달콤한 낮잠 같은 꿈. 깨어나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는 꿈에서 깨어나고, 그것이 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피식 하고 웃음이 나온다. 어떤 이들은 꿈을 연결해서 꿀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아무나 그렇게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아무리 달콤한 꿈을 꾸었다고 해서 그 꿈을 연장하기 위해 다시 잠들어봤자 같은 꿈을 연이어 꾸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술집에 적힌 낙서들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사랑이 얼마나 영원하지 않았으면 누구와 누구의 사랑 영원히. 하트. 같은 낙서들이 이렇게 많은 것일까? 가만히 놔둬도 영원하다면, 아니 적어도 우리의 생명만큼이라도 그 끝을 확실히 알 수 없다면 아무도 그런 낙서를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 자기 이름을 적어놓고 영원히 살고 싶다는 낙서를 본 적이 없다. 우주의 생성 과정까지 갈 것도 없이, 지구의 나이에만 비하더라도 인간의 삶은 찰나에 불과하다. 그 찰나에 하는 사랑은 더욱더 짧다. 어쩌면 우리가 하는 많은 사랑은 기다림 끝에 마침내 찾아온 사랑이 아니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불안한 나머지 이만하면 사랑하기에 적당한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에 그러지 않고 무려 나이 오십이 될 때까지 사랑 한번 해 보지 못한 사진기 수리공 형만이 있다.
페어러브의 의미는 공정한 사랑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는 모든 것이 공평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정말 그런 것일까? 사랑을 하게 되면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나이와, 관계와, 신분, 빈부 같은 것들이 사랑을 하는데 있어서 전혀 지장이 없는 것일까?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이건 페어러브가 아닌 드림러브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오십이 되도록 사랑 같은 건 포기하고 살아온 남자에게 기적적으로 찾아온 사랑. 게다가 그 사랑하는 사람은 같은 오십 줄이 아닌 스무 살의 앳된 여자이다. 어쩌면 이 소설은 사랑스러움을 가득 담고 있지만 그 안에는 너무나 남성적인 판타지를 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나 사랑하지 않고, 진실 된 마음 하나만 가지고 오십이 되도록 자신을 지켜온 남자에게 마침내 찾아온 사랑은 그간 그의 외로움을 보상이라도 하듯 자신이 아닌 다른 젊은 남자를 충분히 사랑할 수 있는 어린 여자이다. 이 어린 여자는 남자의 재력을 본 것도 아니고 남자의 남다른 능력을 본 것도 아니다. 다만 그의 감수성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반해서 그를 사랑하게 된다. 외로워서도 아니다. 그녀는 아빠가 죽었지만 별 다른 슬픔을 느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사랑스럽다. 사랑을 담고 있어서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그 사랑이 정말 십대아이들의 사랑처럼 너무 어설프고 때로는 풋풋하기까지 하다. 친구의 딸과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불륜 못지않게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 수 있지만 이들의 사랑은 끈적이지도 느끼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서 불나방처럼 서로를 향한 어쩔 수 없는 이끌림에 활활 타오르지도 않는다. 어른의 시선으로 볼 때는 오히려 미성숙한 사랑에 가까울 정도로 이들은 우리가 오래 전에 포기했던 순수라는 것을 안고 사랑을 한다. 만약 내가 형만이었다면 그 나이가 될 때까지 사랑 한번 하지 못했을까? 소위 말하는 초식남의 전형에 속하는 형만이라 그런가? 잘 모르겠다. 나는 사랑을 하지 않거나 혹은 내가 이것이야말로 진실한 사랑이다 라고 생각할 만한 사랑을 기다리기에는 세상에 너무 물이 들고 찌들었다. 이만하면 적당하다 싶은 사랑을 했고, 때로는 상대방의 고백에 ‘나 좋다는데 튕길 거 뭐 있나’ 라는 마음으로 사랑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사랑 자체에 나는 그다지 많은 의미를 두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나에게는 꿈에 불과한 것이니까. 사랑은, 세상을 살면서 겪어야 할 모든 힘든 일들을 죽지 않고 견뎌내 가며 살기 위해 신이 내린 잠깐의 달콤함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의 사랑이 영원할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원의 의미를 결혼까지 두느냐 아니면 죽는 그날까지 사랑하는 것에 두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이들의 사랑은 옛날 읽었던 동화책처럼 어떤 결말도 없이 끝이 난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만난 것 까지만. 딱 거기까지만 소설은 말하고 있다.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사랑이 일상이 되고 나면 그건 더 이상 사랑이 아닌 그냥 생활일 뿐이라고. 결혼한 많은 선배들을 봐도 그 말은 영 틀린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사랑해서 함께 산다기 보다는 결혼을 했기 때문에 함께 산다는 말이 더 어울릴 만큼 서로에게 익숙해져서 마침내 생활의 일부가 되곤 했으니까. 영화 [페어러브] 그러나 내가 아는 한 선배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신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와이프에게 ‘나랑 결혼해줘서 고마워’ 하고 머리에 키스를 한 다음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그래 세상에는 영원한 사랑이 있을 수도 있구나, 사랑이 꿈이 아닐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선배와 선배의 아내를 보면서 이들은 단지 결혼했기 때문이 아닌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원하기 때문에, 마치 우리가 연애를 할 때 서로를 집에 들여보내주고 싶지 않았을 때처럼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형만과 남은에게도 희망은 있다. 먼저 늙어갈 형만, 그리고 계속해서 형만 보다는 뒤늦게 나이가 들어갈 남은. 그리고 친구의 딸을 사랑한다는 주변의 시선. 이런 모든 것들을 그들이 넘어설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세상에 찌든 나의 시선에서 본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의 사랑을 보면서 진심으로 바란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사랑하길.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이 세상에 그래도 영원한 사랑이 있다고 믿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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