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린이집의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무슨, 무슨 궁전 어린이집’이었던 것 같은데 도무지 궁전 앞에 어떠한 단어가 들어가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그 어린이집이 ‘궁전’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만큼 크거나 부유하지 않았다는 것과 생각보다 손질이 잘 된 공간이라는 것만 떠오를 뿐이다.
나와 그녀가 어린이집에 드나들게 된 것은 내가 아이를 좋아해서도, 그녀의 장래희망이 어린이집 교사여서도 아니었다. 어린이집이 존재하는 본질적 의미가 있듯, 남녀가 만나는 ‘본래의 목적' 때문이었다. 그녀는 나와 사귄 지 100일째 되던 날 집에 가기 싫다며 노골적인 요구를 해왔다. 나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동침 요구가 싫진 않았지만, 부담스러웠다. 왜냐하면, 나는 대한민국 여자라면 누구나 신성하게 여길 100일 기념일을 위해 15만 원이라는 거금을 지갑에서 털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녀와 모텔을 가게 된다면 나는 하루 만에 20만 원을 쓰게 되는 거였다. 돈의 힘이 육체적 흥분을 앞지르는 상황이었다. 허나 자금상황 때문에 그녀의 신성한 용기를 뭉갤 수는 없었다. “그럼 우리 모텔 갈까?” 그녀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럼 어디 갈 때가 있나?”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우리 엄마 어린이집 가자! 거기 주말엔 비거든.” 아, 어린이집! 순간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말하던, 히메나 선생님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날 이후 주말이 되면 자연스레 그녀와 나는 그 어린이집으로 들어섰다. ‘무슨, 무슨 궁전 어린이집’은 그녀의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어린이집이었다. 주머니 사정이 여유롭지 못했던 나와 그녀에겐 그 어린이집은 단순히 새 나라를 이끌어 갈 아이들의 공간이 아닌, ‘우리의 욕망을 무럭무럭 자라나게 할 공간’이었다. 그녀가 어린이집의 비밀번호를 누를 때면 나는 그녀의 치마 속에 자리 잡힌 중심을 누르고 있었다. 그녀가 입으론 하지 말라고 하면서 엉덩이는 뒤로 쭉 뺀 채 문을 열고 있었다. 문이 열리면 나와 그녀는 어린이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이어 그녀의 문이 열리면 나의 ‘그것’이 그녀의 안으로 들어섰다. 바닥에 널린 고무공만큼이나 탄력 있는 그녀의 육체가 내 몸 위로 튀어 올랐다. 나는 멀어지는 공을 잡기 위해 뛰어가는 아이처럼 헐떡거리면서, 상하 운동을 반복하고 있는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내 손에 고인 그녀의 가슴이 출렁거리고 있을 때, 그녀가 내 가슴 위로 침몰하듯 무너져 내렸다. 한참 동안 내 위에 포개져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던 그녀가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우리 아기 낳으면 꼭 여기서 키우자!” 라며 내 입술에 당돌한 외침을 밖아 넣었다. 나는 가만히 그런 그녀의 말투, 몸짓, 입술을 감상하다가, 옆으로 고개를 돌려 4~5세 용으로 보이는 미끄럼틀을 바라보고는 미래의 내 딸아이가 저 위에서 미끄러지는 상상을 했다. 그래 딸을 낳자. 나의 손이 매끄러운 그녀의 엉덩이 위에서 미끄러지고 있었다.
이 아이와의 연애가 미끄러지듯이 순조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감정을 태우던 그 어린이집은 보편화된 연애의 궤도로부터 어긋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주말 오후의 따스함을 느끼려고 하기보다는 어린이집 안에서 섹스를 하고, TV를 보다 잠들고, 다시 일어나 서로를 빨아들이기만 했다. 이러한 심플한 사이클은 그녀와 나 사이의 지루함을 낳게 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녀의 연락이 뜸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그녀와 헤어진 날, ‘무슨, 무슨 궁전 어린이집’을 나와 길을 걷는데 가로등들이 나란히 불빛을 던지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아래를 향해 던지고 있었다. 유난히 아래로 향하는 것들만 보였다. 여름도 다 지나가는 듯했다. 걸쭉한 침을 내뱉고 씩씩하게 가을을 맞이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해 가을을 씩씩하게 보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다시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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