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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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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구세주> 요즘 젊은이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군대 갈 때는 훈련소 가기 전날 술을 잔뜩 먹여 놓고는 인근 여관이나 모텔에 방을 잡아 재워줬습니다. 그리고 여자도 불러주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훈련소 가기 전날 서울대 입구 전철역 근처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그날 알게 된 사실인데 하지만 서울대 입구 전철역을 나와도 서울대 정문이 보이지 않더군요. 그리고 우리나라 최고 대학 근처에 웬 여관과 모텔이 그렇게 많은지도 처음 알았습니다. 친구 녀석들이 입대하기 전에 총각 딱지 떼고 가라고 해서, 여자 붙여주겠다고 했는데 영업용 여자한테 떼고 싶지는 않아 거절했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군 복무를 동두천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군 시절에는 '팀 스피릿'이라고 엄청난 규모의 한미 합동 군사훈련이 있었습니다. 저는 전차병이어서, 1990년과 1991년 두 해 연속 3월 한 달 내내 경기도와 강원도를 오가며 훈련에 참가했습니다. 1990년 3월 말 훈련을 마치고 동두천에 복귀하고 시내를 관통하여 부대로 복귀하는데 길거리에서 여고생 보고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동안 많이 굶주렸나 봅니다. 정말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복귀하자마자 부모님께 부대에 급한 일이 생겨 돈이 필요하니 10만원만 부쳐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당시 사병 월급이 6,000~7,000원 정도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대할 때 10,000원 정도 받았으니깐요). 부모님은 무척이나 걱정되셨는지 20만원을 부쳐 주셨습니다. 제 바로 위 선임은 저랑 나이는 같은 데 그 유명한 쌍팔년도 12월 입대 군번입니다. 선임이랑 동두천 보산동에 갔습니다. 선임이 알고 있다는 어느 집에 들렀는데, 그 시간에 공교롭게도 두 명의 아가씨가 기다리고 있더군요. 한 명은 색기가 도는 것이 예쁘장하게 생겼고, 또 한 명은 넉넉해 보이는 것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야, 네가 먼저 골라봐!" 순간적으로 이거 잘못 골랐다가는 군 복무 내내 골치 아프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통통한 아가씨 고르겠습니다!" "너는 통통한 스타일 좋아하는 모양이구나." '나도 예쁜 여자 좋아하거든!' 속으로 한마디 했습니다 이렇게 각자 선택을 하고는 방으로 안내되었습니다. 처음이라 조금 긴장했나 봅니다. 이 육덕진 누님 나의 처지를 알고 있는지, 정말 편안하게 저를 만들어주며, 능수능란한 혀와 손으로 저를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덕분에 21년 동안 쌓였던 저의 에너지는 용솟음치며 바깥 세상 구경을 처음 하게 되었습니다. 누님과 흘린 땀방울과 저의 에너지는 개천을 이루어, 강을 만들고, 아마 바다에 이르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놀이가 있는지도 처음 알았습니다. 선임을 졸라 그다음 주 토요일에 그 집에 또 갔습니다. 물론 부모님께서 부쳐 주신 20만원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때 당시 물가로 세 번 정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번에는 선임의 제안으로 파트너를 바꾸어 제가 예쁜 누나를 데리고 가고 선임이 통통한 누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예쁜 누나와 방으로 갔는데, 이 누나 옷을 벗더니 갑자기 큰 대(大)자로 눕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손을 입에 가져가서 침을 묻히고는 질에 갔다 대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지난번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 생소한 환경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일체의 전희가 생략된 채, 오로지 박는 일만 남았던 것입니다. 뭐 이거 짐승도 아니고...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는 여자의 벗은 몸에 자동으로 반응하는 데, 도저히 적응이 안 되었습니다. 빨리 안 하고 뭐하냐는 그 누나의 재촉에 어떻게 일을 치렀습니다. 아무런 감정 없는 막대기에 쑤시는 기분 그 자체였다고나 할까? 세상에는 항상 좋은 면과 나쁜 점이 공존함을 그 일을 통해 깨달았죠. 그 예쁜 누나가 그날 저녁 또 다른 섹스의 향연으로 저를 안내했더라면, 모르긴 몰라도 군 복무 내내 영업용 여자들에게 수백만 원 갖다 바쳤을 것입니다. 예쁜 누나가 그날 저녁 깨우쳐 준 덕분에 저는 제대하는 날까지 보산동에 다시 가지 않았습니다. 또한 유쾌하지 못했던 그때의 추억들은 직장 생활 할 때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통상 술을 거나하게 한 잔 걸치고 나면 여자 생각 날 때가 있습니다. 동료 또는 친구들이 미아리, 588 가자고 할 때 한번도 간 적 이 없었습니다. 동료들이 뭐 그리 빼냐고 나무랐지만 그 때의 트라우마로 집창촌 스타일의 장소는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녁 창밖에는 비도 살포시 내리고 있습니다. 이 빗속에 20년도 넘은 기억의 조각들을 살짝 꺼내보았습니다. 글쓴이ㅣ jambi 원문보기▶ http://goo.gl/MM2yk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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