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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스 코믹스 4 - 삶을 바라보는 낙관적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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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말이다, 별로 슬프거나, 가슴 아픈 일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눈물이 날때가 있다. 별것 아닌 일상적인 이야기, 이상적인 대화인데도 갑자기 코 끝이 찡해지면서 참을수 없는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왜 갑자기 이러는지 알수가 없다.

하여간 눈물이 나는 것이다. 굳이 슬퍼서가 아니라 뭔가 알 수 없는 것이 마음 한구석의 여린 부분을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그 순간 겸연쩍어 웃으면서 내가 왜 이러지, 라며 눈가의 눈물을 닦게 된다.

 
 
 (c) 1988 by Mieko Osaka

오사카 미에코의 만화를 보고 있으면 이 가끔 일어나는 현상을 종종 겪게 된다.
별로 슬픈 이야기도 아니고, 아아, 감동했다 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닌데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살짝 맺히게 된다.

마음 한구석의 여린 부분을 묘하게 자극하는 감성, 그것이 오사카 미에코의 만화에는 있다. 오사카 미에코 만화처럼 '드라마틱' 이라는 말과 거리가 먼 만화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오사카 미에코처럼 일상의 드라마를 잘 잡아내는 만화가 또한 드물다.

가령 너무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불현듯 귀찮아 질 때. 키우는 고양이나 강아지의 뒷모습을 보며 사랑스러움과 그 작은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안타까움에 가슴이 꼬옥 죄어들 때. 자신보다 잘 난 친구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질투심을 함께 느낄때, 누구나 한 번쯤 느껴 보았고,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보았던 기쁨, 슬픔, 후회 이런 것들을 미리미리 녹화해 두었다가 눈앞에 펼쳐놓는 그런 만화가 오사카 미에코의 만화다.



아름다운 시절
 
 
(c) 1991 by Mieko Osaka 
 
“ 그 사람들은 스스로 이야기를 쓰지는 않지만, 이야기의 등장인물이 되는 사람들이다 라고.
나는 가공의 인물의 인생을 창작해낼 수 없지만 자기 자신의 인생을 만들 수는 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라면, 좋은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 좋고 나쁜 건 둘째치고, 좋은 작품으로 말이다.”

만화 <아름다운 시절>은 마치 일일 드라마 같다.

주인공이 확실하고, 그 주인공의 이야기가 주요 줄거리이지만 주인공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에도 시선을 돌리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다.

여자 주인공의 연애뿐만이 아니라, 그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각자 제 짝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아야 끝나는 그런 일일 드라마. 그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세세한 일상을 그린다는 점에서도 일일 드라마 같은 구석이 있다.

대학 시절 친하게 지내고, 프로포즈까지 받았던 남자 친구(Boyfriend가 아니라 Male Friend이다)가 계속 독신인 것에 내심 기대를 하고 있다가 그 결혼 소식에 내심 안타까워하는 잡지 기자 스즈키 키레이가 두 살 연하의 남자를 만나 조금씩 가까워지고 동거에 들어가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과정이 주요 줄거리라면 그녀의 주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특히 여자들의 작은 이야기들이 이야기를 좀 더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여기에 나오는 여성들은 대부분 서른이 넘은 독신 여성들. 일하는 것도 좋지만 나만의 남자를 만나고도 싶고, 하지만 남자에게 얽매이지 않고 좀 더 일도 하고 싶고, 집에서는 결혼 이야기를 꺼내며 쪼아 오고, 일을 하면서도 이 일이 정말로 나에게 맞는 일인지, 내가 이 일에 재능이 있는 게 맞는지 의심스럽고… 등등 이십대 후반이 되면, 서른이 되면 인생은 좀 더 편안하고 안정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고민과 갈등과 불안에 시달린다.

그런 여자들의 이야기를 밝고 아기자기하게 그린 것이 바로 <아름다운 시절>이다.
연애 부분에서도 일상적인 소소함과 아기자기함은 잘 드러난다.

서른 즈음에 하는 연애, 각자 몇 번인가의 연애 경험이 있는 상태에서 새로 시작하면서 느끼는 불안함, 솔로였을 때의 자유로움에 대한 동경과 그 동경 때문에 느끼는 약간의 죄책감, 응석부리고 싶은데 상대가 받아주지 않을 때의 섭섭함 등등.
연애가 진행되면서 겪을 수 있는 내면의 갈등과 서로 맞춰 가는 과정이 공감 120%를 끌어낸다.



영원한 들판
 
 
(c) 1988 by Mieko Osaka
 
“때때로 귀를 기울인다. 몸 안으로 귀를 기울인다.
자신의 몸에 무언가가 변화가 일어났다. 마치 그걸 알려고 하는 듯이.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채 몸이, 마음이 점점 어른이 되어간다.
어른이 된다는 게 뭘까? 내가 막을 수도. 어쩔 수도 없이.
하지만 괜찮아. 그걸로 된 거야. 미캉. 그건 자연스러운 거니까.”

보통 말하는 성장 소설, 성장 드라마라는 것이 있다. 어린 아이가 주인공인 경우도 있고, 사춘기 소년 소녀가 주인공인 경우도 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이 성장 드라마. 보통 청소년기에 권장 도서라는 명목으로 읽기를 강요당하지만 이상하게 난 그 때 이 성장 소설이라던가, 성장 이야기라는 것이 재미없었다.

아마 나 자신이 성장기였기 때문이 아닐까.

나이를 먹고 나서 보니 어느 새 성장 소설이니, 성장 드라마라는 것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늙으면 옛날 이야기만 한다던가, 그 시절의 이야기들이 그렇게 그립고 예쁘게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마치 여고생이었던 시절에는 어른들이 왜 화장도 못하고 귀밑 3센치의 단발머리에 교복을 입은 나를 예쁘다고 했는지 몰랐는데, 지금 여고생들의 화장기 없는 뽀얀 피부와 염색 안한 머리카락에 단정한 교복 차림이 더 없이 예뻐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영원의 들판>은 성장의 이야기이다. 사춘기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감정들, 성장의 이야기를 여러 가지 색깔의 털실로 한 올 한 올 짜 올린 스웨터 같은 투박하지만 따뜻하고 공감이 가는 그런 성장 이야기이다.

언제까지나 죽은 강아지를 잊지 못하는 소년 니타로.

그런 니타로의 집에 여러 집을 전전하여 사람을 잘 따르지 않는 강아지 미캉이 들어온다. 작은 강아지 미캉의 성장을 통해 자신의 성장을 바라보는 니타로, 그런 니타로를 통해 자신의 성장을 바라보는 누나 이치히메.

요즘의 감각적인 느낌이 아닌, 좀 더 고리타분한, 옛날 문학 소녀와 같은 감성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는 아련한 추억에 잠기게 한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다.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우리의 성장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걸.



풋내기 소방관 미나미
 
 
(c) 2001 by Mieko Osaka 
 
“이건 더미가 아냐. 살아있는 사람이다. 아직도 따뜻한, 내가 살릴 수 있는 사람이야.
그리고 여긴 학교가 아냐. 훈련장이 아닌, 살아있는 거리다.
내가 구할 수 있고, 구해야하는 거리다.”

앞의 두 이야기가 아기자기한 일상이었다면 이번 역시 아기자기한 일상이다.
다만 그 주인공이 여성 소방관이라는 것을 빼면. “불황에는 역시 공무원이 최고!!”
라는 심금을 울리는 카피를 뒤 표지에 실은 이 만화는 앞의 두 편에 비하면 훨씬 가볍고 유쾌하다.

입사하기로 했던 회사가 도산하는 바람에 공무원 시험을 친 미나미가 소방 학교에서 겪는 에피소드를 시작으로 하여 한 사람 몫의 소방대원이 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발령 받은 소방서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이 황당한 듯 하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장례식장에서 시체를 구조해 나오는 일이라던가, 불이 난 러브호텔에 인명구조를 하러 갔더니 애인과 애인의 바람 상대를 만난다던가 하는 황당한 사건들이 주는 웃음은 즐겁다.

가벼운 소방관 코미디라고 생각하고 남녀 상관없이 즐겁게 볼 수 있는 만화이다. 오사카 미에코의 만화는 아기자기함과 일상을 들여다보는 섬세한 시선이 무엇보다 강점이다. 하지만 그것을 그저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 속에 들어있는 희노애락을 잡아내고, 그리고 그것을 낙관적이고 희망적으로 풀어 내는 시선. 지금은 힘들지만 내 주변에는 나를 받쳐주고, 나를 이끌어주고, 믿어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 그리하여 지금은 힘들지만 괜찮아질 거야 라는 희망.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 이렇게 부족한 나이지만 언젠가는 더 나은 내가, 더 멋있는 내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자기 반성과 자신감. 오사카 미에코 만화를 보면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다. 공감의 눈물 쬐끔과 입가 가득한 미소, 모든 건 다 괜찮아질 것이라는 낙관주의.

그것이 오사카 미에코의 만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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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똘 2015-01-23 01:23:15
글, 참 맛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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