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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벨 청', 하면 안 되는 것에 대한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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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섹스: 애나벨 청 스토리>
 
왜 하면 안 되죠 ?
 
다큐영화 <애나벨 청 스토리>는 미국의 대표 토크쇼 제리스프링어쇼의 한 장면에서 시작한다.
 
"10시간 동안 251명의 남자와 섹스를 한 여자를 소개합니다!"  
 
방청객에서 터져 나오는 야유와 경악의 함성 소리, 딱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사람들.
 
그들을 향해, 애나벨 청은 부러 포르노 배우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천박한(혹은 귀여운) 포즈를 취한 뒤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든다.
 
사회자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한거죠?

애나벨  왜 하면 안 되죠? 251명의 남자와 10시간 동안 하는 거랑 한 남자와 10시간 동안 하는 거랑 뭐가 달라요?
 
 
애나벨 청의 탄생
 
그녀는 청결하고 단정하고 보수적인 나라라는 싱가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그레이스 퀘크(Grace Quek) 1972년 5월 22일 생 쥐띠다. 부모님은 교사였고 교회에 열심히 다니시는 분들이었으며 그레이스는 피아노를 치고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는 착하고 단정한, 그리고 똑똑한 싱가폴 소녀였고 한다.
 
그녀는 영국 유학길에 올라 옥스퍼드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한다. 이대로 평범한 법률가가 됐을지도 모를 그녀는, 어느날 지하철 역사에서 집단 강간을 당하고 몸과 마음에 중상을 입는다.
 
법대를 그만두고 아트스쿨에 등록한 그녀는 학비 마련을 위해 누드모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으며 이 때부터 '몸'에 대해 골똘히 생각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인류학과 여성학을 공부하고 섹스와 마약과 파티를 일삼는 학생들의 무리에 편승해 세상의 남성중심적 사고에 본격적인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녀는 포르노 배우가 되었다. 그리고, 에드가 앨런 포의 시에 등장하는 여자 이름 '애나벨'과 친구들과 함께 본 삼류 에로영화의 제목을 합쳐 자기 이름을 '애나벨 청'이라 짓는다.
 
 
251명의 남자와 10시간 동안의 갱뱅
 
동양 여성으로 영국식 악센트가 매력적인 그녀는 잘 나가는 포르노 스타가 된다. 그러던 중 존 보웬이라는 포르노 감독에게 '세계 최대의 갱뱅 이벤트'를 제안 받는다. 당초의 목표는 300명, 하지만 중간에 한 남자가 손가락을 잘못 쓰는 바람에 성기에 상처를 입고 251명째에서 도전을 포기한다.
 
이후 그녀의 엽기 이벤트는 큰 화제가 된다. 제리스프링어쇼에 출연한 그녀를 본 감독 고프 루이스는 그녀에게 다큐멘터리를 함께 찍을 것을 제안한다.
 
 
스스로 '걸레'가 된 이유
 
애나벨 청 이라는 이름의 그레이스 퀙을 알고 내 머릿속에는 수십 개의 의문부호와 감탄부호가 동시에 떠올랐다. 그녀에게 있어 '몸'이란 어떤 의미인가? 그녀는 왜 그렇게 스스로를 '걸레'로 만드는가?  
 
만약 한 남성이 251명의 여성과 관계를 가졌다면 어땠을까? 남성의 생리적 특성상 10시간 동안 수십 회의 관계를 가지는 건 불가능한 일일 테니, 가능한 가정으로 한 남성이 매일 10명의 여성과 집단섹스를 한 달 동안 반복하는 기록을 세웠다고 했을 때, 세상 남자들은 뭐라고 할까?  
 
모르긴 몰라도 한나절의 가십거리 이상의 대단한 이슈는 안 될거다. 그다지 특별한 일도 아닌데 뭘. 그냥 '복도 많은 놈'하고 말거다.
 
애나벨 청에게 "꼭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었냐"고 묻자 그녀는 확실히 대답하지 못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기 위해서"
 
"남성중심의 섹스 구도를 바꾸어 보기 위해서"
 
"여성의 욕구와 가능성을 세상에 보이기 위해서"
 
일관성 없는 그녀의 변명(?)은 내 궁금증을 해소해주진 못했다. 어쩌면 그녀 자신도 아직 해답을 찾지 못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서 한 가지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있다. "내 몸은 내 것이다"라는 신념. 그리고 신념에서 뿜어져 나오는 당당함. 그녀를 보면서 스스로 솔직, 당당하다고 믿었던 나의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나는 과연 남성들이 누리는 섹스의 즐거움을 나도 누리겠다고 당당히 요구하고 있는가. 아름다운 몸을 보이고 싶은 욕구와 노력 만큼, 나도 그들에게 아름다운 몸을 요구하고 있는가? 상대방의 기쁨을 보는 만족에 길들여져서 나의 기쁨은 잊어가고 있지 않은가?  
 
에이즈가 두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녀는 "어차피 죽을 몸이잖아요. 에이즈에 걸렸어도 후회는 하지 않았을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몸은 아껴야 할 무언가가 아니다. 그녀는 스스로의 몸을 던짐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었다. 이 세상에 널려 있는 '해서는 안 되는 것'들에 '왜'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게 해줬다.
 
그녀의 행동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는 다양하다. '그녀는 251명이 아닌, 세계 전체와 섹스를 했다'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고 그녀를 영웅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옥스퍼드와 USC에서 공부한 생각하는 포르노 배우'로 표현하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명문대를 졸업했다는 사실을 팔아 대중을 유혹하는, 그래봤자 매춘부'라는 시선도 있고, '언론과 포르노 업게에 이용당한 또 한 명의 희생자'로 동정받기도 한다.
 
그 중 뭐가 됐든, 그녀가 포르노 배우 생활을 정리고 싱가폴로 돌아가는 장면은 그녀는 한없이 쓸쓸해보였다.
 
 
엄마, 꼭 자랑스런 딸이 될게
 
나는 가끔 세상의 수많은 혁명가들이 투쟁으로 이루어 놓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별다른 감흥도 없이 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50년대 콘돔의 사용을 주장하다가 수십 년간 옥살이를 했다던 미국의 간호사, 미니스커트를 처음 입고 계란 세례를 맞은 여 가수. 잔인하도록 말 많은 한국 사회에서 남성의 성폭력을 최초로 폭로하고 사생활을 희생한 겁없는 여성들까지.
 
세월이 흐른 뒤 애나벨은 어떤 사람으로 평가될까?
 
그렇게 강하고 뻔뻔하던 애나벨, 아니 그레이스는 엄마 앞에 서자 엉엉 울어 버리고 만다. 그간의 서러움과 외로움이 진하게 담긴 눈물.
 
"엄마, 꼭 자랑스런 딸이 될게!"
 
그녀는 다시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 여성을 위한 포르노를 만들고, 여자배우들의 권익 향상에도 앞장섰고, 이후 IT 업계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15년 전 그녀의 목소리는 지금의 한국에도 유효할 것 같다.
팍시러브
대한여성오르가즘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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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시댄스 2015-09-04 04:16:26
나 이 여자 안다...어...몇 안본 포르노 중 하나다. 포르노 인지 다큐인지...명확치 않지만...
차가운매너 2015-08-22 23:35:01
비난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자기몸이니까....
뉴캐슬 2015-08-20 16:48:49
호기심으로 보았다가 깊은 생각을 가지게 만든 영화.
애나벨 청. 진짜 연구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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