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모코 니노미야의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오케스트라 동료들과 졸업파티에서 노래방에 간다. 만화책에서 미녀 자매로 묘사되는 모에와 카오루 자매는 마이크를 잡고 노래방 분위기를 환상의 분위기로 이끌면서 열라 삘~받은 표정으로 이런 가사의 노래를 부른다.
"무겁다고 하지 말아요. 절벽들에겐 잘난 척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으니까 오! A, B, C, D, E, F, G컵"
아무리 만화라고는 하지만 "절벽들"이라는 야멸찬 호칭에 필자의 가슴은 미어졌고, 한편으론 "잘난 척 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으니까"라는 말에 뜨금 했다.
미국 연예주간지 『글로브』지에서 미국 여자연예인을 대상으로 최고의 가슴과 최악의 가슴을 뽑았다.
사진으로만 봐도 장난 아니게 빵빵한, 마치 "여기 달린 게 가슴이랍니다" 라고 온 몸으로 외치는 듯한 저 팝 가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가슴이 최고의 가슴으로 뽑혔다.
글로브지는 선정이유를 '여성들이 가장 원하는 가슴 이외에 더 이상 다른 말이 필요 없다'고 밝혔다.
이 밖에 최악의 가슴으로 선정된 사람 중에는 우리에게도 낯익은 카메론 디아즈가 있다. 할리우드 최고의 몸 짱 중의 하나로 인정 받고 있는 그녀는 미녀삼총사에서 보여줬던 풍만함과 거리가 먼 '납작 가슴'으로 '기만 죄'에 걸렸기에 최악의 가슴으로 선정됐다는 것이다.
터질 것 같은 가슴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A컵에서만이라도 벗어나길 한번쯤 꿈꿨던, 속칭 절벽, 계란 후라이, 민짜 가슴 등등의 이름 외에는 자신의 가슴을 형용할 단어를 찾지 못하는 우리의 자매들은 이 겨레의 땅에 수도 없이 많다.
"난 가슴 작아서 콤플렉스야" 는 말에 위로는 못할 망정 "사실 가슴 작으면 남자들이 싫어하긴 하지"라고 바로 대꾸해버리는… 우정에 금 가는 말을 사정없이 날리던 친구부터, 브라에 넣었던 패드가 위로 올라오는 바람에 전철에서 쪽 팔려 죽는 줄 알았다던 친구, 지 가슴은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건포도라는 후배, 난중에 돈 벌면 남친이 확대수술 해주기로 했다는 친구, 푸쉬업을 하면 가슴이 커진다, 자주 만져주면 커진다더라 등등. 절벽가슴과 관련된 친구들과의 대화는 끝이 없다. 또 그만큼 천일야화처럼 벼라별 속설들이 "야 걔가 해봤는데 진짜 커졌댄다" 라는 누군지도 모르는, 어딘가에서 75 A컵 브라를 땅을 패대기 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절벽가슴을 고치기 위해 매진한 독립군 자매의 경험담에 힘입어 그들의 대화는 일파만파 커진다.
여기에 외국에서 생활하는 한 친구의 절규가 심상치 않다.
"밖에 나와서 보니까, 중국애들이나 일본애들 가슴 무지 크다. 우리나라도 못 사는 거 아니잖아? 근데 왜 우리는 뽕 브라가 아니면 안되냐고?"
'뽕브라'.
도대체 언제 적부터 사용했던 말인가? 언제부터 "밥 먹었어?"라는 말처럼 "쟤 뽕브라 무지 티 난다" 라는 말이 이토록 낯익었단 말인가? 도대체, 왜, 언제부터, 이토록, 뽕브라라는 단어가 마치 인간이 진화되기 이전 시기, 공룡이 초원을 뛰놀던 시기에 있었던 것처럼 내 뼈에 생생하게 각인된 것처럼 느껴진단 말인가?
이 지점에서 뽕브라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된다. 궁금한 김에 네이버 지식인에 들어가 검색 창에 뽕브라를 쳐보니, 지식인들이 저런 질문을 던져놨다.
질문 : 남자는 대머린데 감쪽같은 가발이 나와서 신부에게 들키지 않고 결혼까지 하게 되고요. 여자는 절벽인데 깜쪽 같은 뽕브라가 나와서 신랑에게 들키지 않고 결혼을 했어요. 누가 더 정신적 충격이 클까요?
질문 : 뽕 브레지어 한 여자와 안 한 여자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요?
……염병들한다.
이때까지 이 글의 제목은 아마도 '뽕브라에 대하여'나 '뽕브라 변천사' 같은 간단명료한 글이 될 운명이었다. 그러나 이 상황까지 도래하자 이 글은 이상하게 '뽕브라를 찾는 모험'으로 탈바꿈하고 만다. 뽕 + 브라란 이 이상한 조합어가 가진 성격이 너무나 모호해서, '니미 뽕이다'가 해답이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을 필자는 너무나 뒤늦게 깨달아버린 것이다. 때문에 이 글은 진흙구덩이 속에서 백 원짜리 하나 찾는 백수의 심정으로 별 시덥지 않은 근거라도 하나 하나 찾아보려는 '모험'이 될 수 밖에 없다.
ㅣ80, 90년대의 브라
예전 우리의 선조들은 젖가슴을 치마끈으로 조여 납작하게 만들려 애를 썼는데, 저고리 아래로 가슴을 드러내고 다니던 선조들이 브래지어를 착용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후의 일이다.
80년대 브라 광고를 보면 브라가 우선 꽤 크다. 가슴을 다 덮는다. 다 덮는 건지 가슴이 작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게다가 대부분이 흰색이고 (하기사 그땐 냉장고 등의 가전제품도 흰색이었다. 멋지다. 백의민족~당시는 백의민족을 몸소, 온몸으로 실천하는 시기 였나 보다.) 또 지금의 브라 처럼 한가지 천으로 봉제 선을 없애는데 중점을 두지 않았다. 지금처럼 스타시스템이 발달되지 않았던 상황임을 고려해봐도 그다지 유명한 모델은 없다. 또 다른 차이는 현재의 광고가 브라를 직접적으로 보이는데 관심이 없다면, 이때의 광고는 상반신은 브라 하나를 착용한 광고가 원칙이었던 듯 하다.
회상해보면 이때는 TV나 지하철에서 브라 광고를 본다는 건 꿈도 못 꾸는 일이었다. 비너스나 비비안 같은 광고도, 기억하시리라. 왠 밀로의 비너스 같은 석고상 얼굴 보여주던 그 광고를. 그때는 브라 광고 비스무레한 걸 하나 볼라고 해도 9시 뉴스도 끝나고 한참 밤이 되어야 가뭄에 콩 나듯 볼 수 있었다.
또한 이때 광고모델들은 특별히 가슴이 크지가 않다. 이 광고 사진을 보면서 '아 이런 언니들은 다 어데가고 요새는 효리나 혜교같은 애들이 광고하는 거냐' 한숨이 절로 나와도 할 수 없다. 이때의 모델언니들은 다 가정으로 돌아 갔을거다.
지면광고를 통해서 본 이때의 언니들의 모습에서 뽕 브라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최소한 지면상으로는.
ㅣ90년대 중반 이후의 브라
"내게 제일 자신 있는 곳은? 얼굴, 다리, 힙? 아냐 아냐 가슴! 볼륨 업이 있으니까"
볼륨과 업이라는 단어가 교묘히 공조하는 저 이름부터 구매자에게 무한정의 환상과 확신을 주는 '볼륨업' 브라. 지금이야 이 사진을 보면 전형적인 뽕브라 발이라는게 티 나는 심하게 업 된 광고지만, 당시는 뭇 여성들의 부러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속옷광고가 지하철 광고의 중요한 광고의 한 면을 차지하게 되면서 더 이상 브라 광고는 시각적으로 예전처럼 직접적으로 브라를 착용한 가슴을 노출시키는 방법에서 비껴난다. 또한 '당당하게 드러내자' 라는 모토를 증명이라도 하듯 톱 모델들이 브라 광고에 투입되고 있다. 최근 보이는 모델만 해도 이효리, 송혜교, 장진영 등등이다. 모른다. 조만간 여자연예인의 인기도를 재는 척도가 화장품 모델에서 브라 광고 모델로 바뀔지.
이들의 포즈는 극도의 헤벌레한 상태다. 광고카피는 쿨~한 여자고 편안한 여자로 브라 착용시의 활동성과 편안함을 강조하고 있다.
편안함을 강조한 이러한 광고와 함께 주류는 당구 다이에서 몸매를 자랑하던 이혜영 광고의 뒤를 잇는, 팜므파탈 분위기의 광고이다. 가슴을 쫙 펴고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이글거리는 눈으로 업 된 가슴만큼 업 된 자신감을 드러내는 광고들이다.
80년대 브라와의 확연한 차이는 '업'의 차이다. 편안함과 더불어 가슴을 업 시켜준다는데 누군들 마다할 것인가? 빵빵하고 자연스런 가슴 선을 원하는 여성들의 열망은 '몰드 브라' 의 한국 브라 시장 석권을 가져왔다.
한술 더 떠서 요새는 웰빙 개념까지 도입한 브라까지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고, 접착식 브래지어의 대명사처럼 굳어진 누브라의 경우 이미 기존 브래지어 시장을 위협할 정도로 기록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ㅣ세계에서 제일 많이 팔린 브라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이 뽕브라가 팔리는 걸까?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여성 속옷은 원더브라 (Wonder bra) 다. '놀라운 브라'라는 원더브라는 1964년 세상에 나온 이후 지금까지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평균 3초에 하나가 팔린다. 원더브라가 세계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가슴을 받쳐 올려주는 푸쉬―업(Push―Up) 효과 때문이다. 패드를 넣어 가슴이 풍만해 보이게 하는 것이다. 몸의 볼륨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여배우 기네스 팰트로와 깡마른 슈퍼모델 케이트 모스도 원더브라의 열성팬이란다.
결국 서양여자들도 뽕브라 한다는 얘기다. 빵빵한 가슴에 대한 여성들의 소망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는 하나.
ㅣ뽕브라의 추억(?)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가슴산업은 날마다 발전하면서 점점 다양한 형태와 소재, 성능의 브라들이 속속 선 보이고 있다.
최근 엄청난 판매량을 보이고 있는 누브라의 예만 봐도 어쩌면 몇 십 년 이내에 브라끈은 선사시대의 유물로 자리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된다면 고딩시절 교복 상의에 끈 비칠까봐 죽어라 속옷을 덧입던 기억이나, 끈을 잡아당겼다는 어떤 변태선생에 대한 기억, 풀어진 브라 끈을 다시 묶으러 화장실 한칸에 숨어들던 기억도 화롯불에 밤 까먹던 기억처럼 희미한 추억이 될지도 모르겠다. 비디오방에서 수줍게 등을 더듬으며 브라를 풀으려던 남자의 손길도 아련한 기억 속에 자리잡을지 모를 일이다.
누가 알겠는가? 점점 발육이 좋아져서 거유까지는 아니더라도 절벽이란 이름이 무색한 요즘 애들의 뽀대 나는 가슴만 봐도 조만간 절벽가슴은 추억이 되고 뽕브라 또한 추억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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