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오래 전 얘기다. 친하게 지내던 선배 H씨의 형님 부부를 만났다. 다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이었고 나와 선배는 앞 자리에, 형님 부부는 뒷 좌석에 앉았다. 결혼 7년 차라는 두 부부는 누가 봐도 다정해 보였다. 길을 걸을 때 손을 꼭 잡는가 하면, 부인을 바라보는 남편의 눈길이 어찌나 그윽한지.
남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부인이 말했다. "여보 시 읽어줘."
가방에서 자연스럽게 시집을 꺼내는 것이 많이 해본 솜씨다. 남편은 류시화의 시집을 꺼내 들고 바리톤 급의 음성으로 천천히 시를 읽기 시작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 그대가 곁에 있어도 / 나는 그대가 그립다.”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 했다. ‘결혼을 한 다면 꼭 이런 남자랑 하리라. 넓은 어깨에 기대어 사랑의 고백과도 같은 시를 들으며 행복해하리라.’
하지만 환상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며칠 후, 그 자상한 형님 부부, 선배, 나 이렇게 넷이서 함께 술을 마시게 됐는데 동생이 자리를 비운 사이 '대한민국 대표 남편상'으로 깊은 인상을 줬던 그가 나에게 수작을 걸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내에게 시를 읽어주던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헤어진 후 따로 만나자고 했다. 기습 키스를 시도하기도 했다.
마음 한 편으로 '그 우아한 부인보다 내가 더 예쁜가?' 하는 우쭐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남자는 아내에게 시를 읽어 주던… 미래, 내 남편감의 롤 모델이 아니었던가. 당혹스러움과 배신감에 순간 화가 치밀었지만 나는 그저 어정쩡한 웃음을 지으며 부랴부랴 도망치다시피 자리를 빠져 나왔다.
아줌마가 된 지금 같으면 뭐라고 한 마디 쏘아붙이기라도 했겠지만 당시 나는 쭈뼛쭈뼛 "이러시면 안돼요" 정도의 소극적 거부를 최선의 방어로 생각했던, 소심한 20대 여성이었다. 답답해서 땅을 칠 노릇이다. 아는 사람에게 형님이 그러더라고 꼰지르지도 못 했다. 동생으로서 얼마나 민망할까 싶었다.
그 형님은 나에게 그저 '남자는 역시 믿을만한 종자가 못 돼'라는 뻔한 편견만 남기고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그 후로도 살면서 그때 그 형님을 상기시키는 남자들을 심심찮게 봐왔다. 멋지게 피아노를 연주하며 자기 약혼녀에게 전화로 들려줬다는 이적의 '다행이다'를 들으면서 감탄하기는커녕 '칫~' 하고 혀를 차게 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다.
하지만 세월은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법.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다른 생각이라기 보다 생각의 방향이 조금 바뀌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시를 읽어주는 남자도 바람을 핀다ㅡ고로 남자는 믿을 수 없다)’에서 '바람 피는 남자도 아내에게 시를 읽어준다ㅡ믿을 수 없는 남자도, 좋은 남편이 될 수 있다’로 긍정적이고 기특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나이가 들면 이해 못할 일이 없다더니… 서른 중반을 바라보다 보니 이 세상 모든 일을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해라기보다는 관용과 적응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물론, 이해건 체념이건 뭐건 간에 그 수혜자 명단에 내 남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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