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와일드>
"뭐가 그렇게 못 마땅해?"라는 질문에 "그냥, 답답해..."라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었더랬다.
사랑하는 데에도 각기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는 법이다.
내 방식의 사랑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남자들에겐, 좀처럼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 그는 "나를 사랑한다면 그럴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건 사랑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어서 변명하기를 포기하고 있는데, 오늘 잠시 읽은 책의 한 구절에서 똑똑한 여자가 똑똑하게 쓴 글을 발견하였다.
속이 다 후련하여, 옮겨다 놓는다.
-
멀리 호수가 보였다. 저 호수가 영화 <러브스토리>에서 라이언 오닐이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알리 맥그로우를 보며 스케이트를 타던 그 호수일까?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사랑을 지고지순하게 만들기 위해 왜 항상 여자를 죽이는 걸까? 왜 그렇게 죽어가거나, 아니면 인어공주처럼 벙어리가 되거나 ,백설공주처럼 독사과를 먹어야 하는 걸까? 때로는 징그러운 개구리한테 키스를 해야 하고, 숲 속의 잠자는 미녀처럼 마술에 걸려 잠자고 있거나, 그도 아니면 계모와 딸들에 의해 고통을 당해야 하는 걸까?
그 모든 사랑의 여자 주인공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한결같이 절세 미인이고, 남자를 위해 무슨 일이든지 감내하는 착한 여자들이고, 자기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해결할 수 없는 수동적인 인물들이다.
그렇게 불쌍하고 가여운 여인들의 문제를 몽땅 해결해 주는 인물이 바로 용맹스러운 백마 탄 왕자들, 혹은 기사들이다. 여인들은 고통에서 구출되고 그 남자들의 선택된 여자가 되어 자기의 생명의 은인인 그 남자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그와 결혼하여 "그리고는 행복하게 살았더래요"로 끝이 난다.
다른 경우, 줄리엣이나 에바페론, 그레이스 켈리나 프린세스 다이아나, 마릴린 먼로 같은 여자들은 모두 제명에 살지 못하고 죽어갔고, 죽고 난 후에는 세속적인 여신들로 재활용되고 있다.
나는 죽고 싶지않다. 살아서 건방지고 튼튼하게 사랑하고 싶다.
그냥 억울하게 당하고 싶지 않다. 아프면 아프다고,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럽다고 말하고 싶다. 바보가 되는 마법에 걸리고 싶지 않다. 징그러운 개구리를 보며 '아름다운 왕자님'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싶지 않다. 그냥 "어머, 개구리네요!" 하며 보이는 대로 말하고 싶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구원자인 왕자님 없이도 삶이 주는 위험을 극복할 수 있는지 그 방안을 찾으며 열심히 공부해 왔다. 그리고 남성세계가 하는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그 남자가 나를 떠나간 것은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몰랐다. 속일 수 없는 여자를 감당할 수 없어서. 동화 속에 어김없이 나오는, 그리고 '(남자와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더래요'라는 사랑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은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앞으로도 그런 일은 내게 일어나지 않을 듯 하다. 그러나 '그리고 (남자가 있거나 없거나, 인생에 다른 어떤 일이 있거나 말거나) 행복하게 살았더래요' 와 같은 일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혁명가와 함께 영원히 치열하게 혁명을 했더래요. 로 끝나는 그런 사랑을 꿈꾸며 살았다. 그래서 세계적인 혁명가의 사진으로 내 방을 도배하다시피 했었다. 그러나 나중에 20년도 더 지난 후에 쿠바에 가서 찾아본 체게바라는 전혀 좋은 남편이 아니었다. 그가 비록 남자들 사이에서는 의리에 살고 죽는 '진짜 사나이'였더라도 말이다.
- 현경,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거야, p. 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