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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섹스 얘기하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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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령화가족> 1 "어제 남자친구가 자고 갔거든." 어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보수적이다 못해 봉건적이기까지 한 엄마 앞에서. 아차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아무리 개방적이어도 딸 가진 부모라면 딸이 언제까지나 처녀이길 바랄 것이다. 혼자산 지 이미 10년이 넘었고, 나이가 계란 한 판이 다 돼간다고 해도 말이다. 나는 욕 잔뜩 들어먹을 각오를 하면서 십호흡을 했다. 그런데 정작 당황한 건 엄마였다. 외식하기로 해 놓고, 내가 좋아하는 "김치전 해줄까?" 묻고, 굽 높은 신발을 새로 샀는데 익숙해지질 않아서 넘어질 뻔 했다는 재미 없는 얘기를 몇 가지 버전으로 했다. 나는 무슨 얘기든 하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못 했다. 자취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엄마가 말했다. "그래도 꼭 피임은 해야 한다. 알겠지?" 그 말을 할 때 엄마는 나를 똑바로 보지 못 했다. 자식에게 섹스니 피임이니 얘기를 한다는 것이 우리 엄마에게는 너무나 곤혹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2 내가 첫 생리를 시작했을 때, 엄마는 작은 케잌을 사서 축하해줬다. 그건 이제 어린애가 아닌 '여자'가 됐음을 축하하는 의식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한 달에 한 번 생리혈을 몸 밖으로 흘려내보내는 것, 거기까지였다. 남자의 페니스를 받아들여 섹스를 하고 오르가즘을 느낄 준비가 됐다는 건 축하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엄마 세대에는 거의 모든 여자가 생물학적으로 처녀인 상태에서 결혼을 했고, 첫날밤 이불 위에 혈흔 한 조각을 남기는 걸로 '순결'을 확인 받았다. 우리 세대에는 나이 서른까지 처녀라는 건 자랑스럽기보다는 수치스러운 일에 가까워지지 않았나? 한번은 동생이 연락 없이 집에 찾아왔다. 마침 난 남친과 한참 섹스 중이었다. 인터폰을 확인하고 "잠깐만!"이라고 소리치면서 황급히 옷을 입고 침대를 정리했다. 방에 들어온 동생은 뭔가 어색함을 느꼈나보다. 좀 전까지 후끈거리던 열기가 어디 가겠는가. 그래서인지 동생은 그날따라 일찍 돌아갔다. '언니가 섹스를 할 수 있다'고는 생각했겠지만, 어디까지나 머릿속 일, 실제 그 현장을 목격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3 몇 년 뒤 동생과 술 한 잔하는데, 그 얘기를 꺼내더라. 당시 재수생이던 동생은 그 일이 무척 충격적이었단다. 한동안 내 얼굴을 보는 게 어색했다고. 동생과 섹스를 주제로 얘기하는 건 처음이었다. 분위기 탄 김에 본격적인 섹스 스토리를 나눠볼까 했는데, 딱 거기까지였다. 쩝. 좀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초등학생 때, 어느 날 남자애 세 명, 여자애 두 명이 집에 놀러왔다. 우리는 이불을 펴 놓고 전기놀이를 했다. 한참 놀고 있는데 아빠가 방에 들어 왔다. 그런데 갑자기 얼굴이 일그러지는 게 아닌가. 펼쳐진 이불을 흔들면서 뭐 하고 놀았느냐는 거다. 그때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아빠가 어떤 상상을 했는지. 물론 그 나이 떄 벌어지기 힘든 일이었지만 아빠는 이불과 남자애들 그리고 여자애들만으로 위험을 감지했던 거다. 4 내 기준에 우리 집 식구들은 모두 개방적이다. 그런데도 난 그들과 섹스에 대해 얘기해본 적이 없다. 이건 한국의 평범한 가정이라면 다 비슷할 거다. 섹스를 하는 건 묵인할 수 있다. 다만 눈에 띄지 않게 해야 한다. 만약 가족과 섹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우리 다음 세대가 부모가 됐을 때 정도면 가능할 것도 같다. 하지만 아직은 너무 먼 일이다. 다른 건 다 부모가 가르쳐주면서, 딱 섹스만 알아서 배워야 한다니, 아무래도 이상하다. 물론 부모와 자식, 가족들과 섹스를 얘기하는 건 상당히 어색한 일이긴 하다. 그치만 섹스 문제를 가족과 얘기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뒷다리 긁는식의 성교육에 의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물론 '오르가즘 더 쉽게 느끼는 법' 같은 걸 전수해주는 것까진 어렵겠지만. 글쓴이ㅣ남로당 칼럼니스트 블루버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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