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드 미스 다이어리 - 극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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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이상의 비혼 여성이 어떤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을 하면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다. '노처녀 히스테리'라고. 저렇게 부르지 않고서는 도저히 못 견디는 사람들을 위해 한마디 하겠다. 그건 잦은 스트레스에 노출됨으로 인해 그만큼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이 약해졌을 뿐. 만약 노처녀 히스테리를 인정한다면 이 사회는 갖가지 계층의 갖은 스트레스들로 가득할 것이다. 이를테면 아줌마 히스테리, 아저씨 히스테리, 중년 히스테리, 비정규직 종사자 히스테리 등. 이름만 갖다 붙이면 다들 히스테리가 된다. 그러나 어쨌건 사람들이 인정하는 건 딱 하나 노처녀 히스테리뿐이다.
일 때문에 사람을 좀 많이 만나는 편인데 그때마다 그들은 지치지도 않고 묻는다. ‘남자 친구 있어요?’ ‘결혼은 언제 할 거예요?’ 남자 친구의 유무를 묻는 건, 없다면 나는 어때요, 같은 착한 의도는 절대 아니다. 그저 단순한 호기심이다. 있대도 그만 없대도 그만. 그렇지만 그 나이 먹도록 남자친구가 없을까 봐 매우 근심스럽다는 표정만큼은 가증스럽게도 꿋꿋하게 유지해주신다. 두 번째 질문은 마치 처음의 질문에 예스라고 대답했을 때만 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역시 이것도 예스건 노건 간에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질문한다. 혹 여기서 자신의 소신을 밝혀 ‘안 할 건데요?’라는 부정형 답변을 하면 우리는 장시간 그들의 염려를 가장한 설교를 들어야 한다.
그것은 주로 첫째, 네가 지금은 팔팔하지만 언제나 그렇게 젊은 건 아니다. 둘째, 그러므로 말년에 외로울 것을 걱정해야 한다. 셋째, 사람이 늙어 외로운 것만큼 추한 것 없다. 넷째, 그러니 쉰 소리 말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얼른 정신 차리고 시집갈 궁리를 하여라. 등으로 요약된다. 늘 저런 질문에 시달리던 나는 언제부턴가 ‘사적인 자리가 아닌 곳에서는 개인적인 얘기가 되도록 하고 싶지 않다.’라는 내 의견을 밝혔다. 그러면 반응은 뻔했다. 까칠하다는 둥 그래서 아직 시집을 못 간 거라는 둥 하다가 그래도 내가 여전히 물러서지 않으면 기어이 한마디 하고야 만다. 노처녀 히스테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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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저건 어디까지나 결혼 혹은 연애에 관한 문제이니 그냥 노처녀 히스테리 어쩌고 하는 소릴 견뎌준다 치자. 정말 미치고 팔짝 뛰겠는 건. 내가 무슨 일에건 조금이라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 다 저 말을 가져다 붙인다는 것이다.
그것은 주로 1. 네가 지금은 팔팔하지만 언제나 그렇게 젊은 건 아니다. 2. 그러므로 말년에 외로울 것을 걱정해야 한다. 3. 사람이 늙어 외로운 것만큼 추한 것 없다. 4. 그러니 쉰 소리 말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얼른 정신 차리고 시집갈 궁리를 하여라. 등으로 요약된다. 늘 저런 질문에 시달리던 나는 언제부턴가 ‘사적인 자리가 아닌 곳에서는 개인적인 얘기가 되도록 하고 싶지 않다.’라는 내 의견을 밝혔다. 그러면 반응은 뻔했다. 까칠하다는 둥 그래서 아직 시집을 못 간 거라는 둥 하다가 그래도 내가 여전히 물러서지 않으면 기어이 한마디 하고야 만다. 노처녀 히스테리냐고.
좋다. 저건 어디까지나 결혼 혹은 연애에 관한 문제이니 그냥 노처녀 히스테리 어쩌고 하는 소릴 견뎌준다 치자. 정말 미치고 팔짝 뛰겠는 건. 내가 무슨 일에건 조금이라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 다 저 말을 가져다 붙인다는 것이다. 늘 모가지 간당간당한 시일을 두고 원고독촉을 해대는 걸 원망해도 노처녀 히스테리. 하자 있는 물건을 바꾸러 가서 따박따박 말을 해도 노처녀 히스테리. 심지어 집안 모임에서 쥐콩만한 애새끼들마저 내가 조용히 좀 하라고 하면 노처녀 히스테리냐고 묻는 데는 정말 할 말이 없어진다. 어째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면서 비혼인 여성들은 하나같이 노처녀 히스테리를 부린다는 오해를 뒤집어써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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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혹시라도 우리가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에 대해 질투로 인해 눈깔을 뒤집으며 흠을 잡지 않을까 눈에 불을 켜고 살핀다. 아까 위에도 잠깐 언급했다시피 우리는 단지 나이를 먹었고 그 나이만큼 갖은 스트레스에 자주 노출이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멍청한 인간들 빼고 다 아는 사실. 스트레스는 결코 자주 경험했다고 해서 그걸 더 잘 견디는 게 아닌 오히려 그 반대로 스트레스에 한없이 약한 인간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여자가 혼자 사는 건 참 녹록지 않은 일이다. 어쩌다 추격자 같은 영화라도 보게 되면 며칠 동안 밤길이 무서워진다. 거기라고 잊을만하면 ‘여자 혼자 사는 오피스텔에 강도 침입’ 따위의 기사가 뜬다. 안전을 생각하면 좋은 동네에 방범 시스템이 끝내주는 아파트에라도 살아야겠지만, 현재 서울의 땅값은 정상적인 월급을 받는 두 남녀가 맞벌이해도 10년에 하나 장만할까 말까 한데 내가 그걸 무슨 수로 장만하나.
세상에서 가장 꺼려지는 건 지하주차장이고, 어쩌다 집구석에 전기라도 팍 나가버리면 친하지도 않은 두꺼비에게 너 집이 어디냐고 물어야 한다. (설사 두꺼비가 친절하게도 대답을 해줘서 그의 집이 어딘지를 안다 해도 별로 달라지는 건 없다) 뭔가 고장이 나거나 조립을 할 일이 있어도 맘 편히 사람 하나 부르지 못한다. 거기다 택배 기사가 아무리 기분 나빠 하더라도 보조걸쇠를 건 채 문만 빠끔히 열어 택배만 건네받아야 한다. (그 문틈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택배는 집에 사람 없는 척하면서 데스크에 맡기라고 한다) 그것뿐인가 귀갓길에 혹시 뒤에 취객이라도 한 명 어슬렁거리며 따라오면 머리털이 쫙 서면서 강도, 강간, 살인미수 등 온갖 처참한 상황이란 상황은 다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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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결혼하라는, 늦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결혼하라는 독촉을 들은 것 중에서 가장 골 때리는 것은 더 늙으면 애를 쑥쑥 낳기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노산은 위험하다. 그 정도는 바보도 알고 있고 바보가 아닌 나 역시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여자에게 단지 종족 번식의 의무를 잘 해내기 위해 한 살이라도 팔팔하여 순산할 수 있을 때 결혼하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라는 듯이 말하는 건가. 그렇다면 남자들에게도 똑같이 젊어서 한 개라도 정자수가 더 많을 때 결혼을 해서 가장 우수한 유전자를 물려줘야 하지 않느냐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남자가 애 만드는 기계가 아니듯. 우리 역시 애 낳는 기계가 아님을 그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단지 조금 늙은 여자이기 때문에 당해야 하는 온갖 언어폭력들. 이제는 정말 지긋지긋하다. 어떨 때는 너는 지껄이거라 나는 한 귀로 흘리겠다고 버텨보지만, 사실 아무리 내가 그 말들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싫은 소리는 역시 싫은 소리이다. 이걸 버티면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갈 뿐. 이쯤 했으면 됐겠지 같은 적당한 멈춤의 미덕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거기에 대고 이건 이렇고 저건 저러하다라고 내 의견을 말하는 날이면 거의 무조건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백 퍼센트 노처녀 히스테리냐고 이죽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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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처녀 히스테리는 정말이지 남자도 만나고 싶어 미치겠는데, 결혼은 그보다 더하고 싶어 돌아버리겠는데 그게 안 되는 상황이라서 세상 모든 게 다 이로 인해 짜증 나고 신경질 나는 상황에 부닥친 사람에게나 말해야 하는 거 아닐까? 물론 연애와 결혼 문제에 대해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 고민의 강도가 더해가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에 신경이 곤두선 나머지 모든 세상살이가 짜증 나서 공중 삼 회전이라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이젠 제발 단지 나이 좀 먹은 비혼 여성을 향해서, 그녀들이 까칠하다는 이유로 노처녀 히스테리라고 단정 짓지 말았으면 좋겠다. 노총각 히스테리는 없는데 유독 노처녀 히스테리만 있는 걸 보면 호스트바가 룸살롱만큼 싸지 않기 때문이라는 미친 생각까지는 하고 싶지 않다. 아무튼, 나를 히스테릭한 인간으로 보는 건 상관없지만, 그 앞에 노처녀란 단어는 제발이지 좀 붙이지 말았으면 좋겠다.
글쓴이ㅣ남로당 칼럼니스트 블루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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