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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를 방해하는 약간의 장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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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누군가는 안면인식장애로 인해 매일같이 보는 사람의 얼굴을 끝끝내 기억하지 못한다. 또 누군가는 수전증이 너무 심해 술이라도 따를라치면 보는 사람이 불안하여 3년간 못하거나 말거나 차라리 자작을 택하게 한다. 이런 것들은 비록 장애인 등록증 같은 걸 발급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실로 명랑 생활을 방해하는 요소들임은 틀림없다.
 
나에게도 두 가지 장애가 있다. 첫째는 사람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과거 무척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조금만 세월의 틈이 생겨버리면 나는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 사람과 나누었던 사소하고도 하찮은 모든 기억은 다 떠오르는데 정작 그를 부르는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는 대화를 나누는 내내 그의 이름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내느라 진땀이 난다. 미국처럼 퍼스트 네임, 미들 네임 어쩌고 하면서 긴 것도 아니요, 사공이나 남궁 같은 성을 가진 게 아니라면 단 세 글자에 불과한 이름이 왜 그렇게 떠오르지 않는 것일까?
 
여기에 약간의 변명을 좀 하자면 내 이름이 너무 쉽다는 것이다. 영희 철수보다 더 쉬운 내 이름. 스스로 생각해도 이런 이름을 까먹으면 물고기 아이큐도 못 따라가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만큼, 한 번만 들어도 뇌리에 팍 하고 박히는 이름. 본인의 이름이 이렇게 쉽다 보니 나머지 세상 사람들의 이름은 너무 기억하기 어려운 거지. 그래도 그렇지 방금 그 자리에서 부른 이름조차 돌아서면 까맣게 생각이 나지 않을 때는 참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자괴감이 밀려오곤 한다.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인간들은 초등학교 동창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는 인간들이다. 내게 있어 초등학교 동창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공룡의 학명을 전부 외우는 것과 버금가는 일이다. 그들은 1년이나 한 교실에서 같이 공부한 친구들의 이름을 기억 못 하는 게 더 신기하다고 말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담임 이름도 기억이 안 난다.
 
일이 이렇다 보니 나는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명함을 달라고 한 다음. 집에 오자마자 명함의 뒷면에 만난 날과 그 사람의 대략적인 특징 같은 걸 적어둔다. 그렇지 않으면 또 역시나 나중에 명함을 보게 되면 이 사람이 누구였더라 하게 된다. 내가 사용하는 메신저에 등록된 수많은 사람 중에서 이름을 기억하고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서너 명에 불과하다. 그들조차 내 가족이라는 사실이 좀 문제긴 하지만.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을 대변하는 가장 짧고도 힘 있는 단어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누구나 서로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준다. 근데 정말 미안하게도 내 이름의 경우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해 주는 반면 나는 정반대이다. 그들도 차라리 내 이름을 긴가민가하면 좋으련만.
 
그들이 내 이름을 기억해버리면 나 역시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야 말이 된다. 모르려면 다 같이 모르고 알려면 다 같이 아는 게 더 낫지. 이건 어느 한 쪽은 내 이름을 부르며 반가워하는데 나는 정작 그 이름이 기억이 안 나서 ‘저기 죄송하지만 성함이...’ 해야 하는 상황은 정말이지 괴롭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비록 이름은 기억 못 하지만’ 어쩌고 하면서 그 사람과의 일화를 줄줄이 나열하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싸이코 같다.
 
또 한 가지 장애는 길치, 방향치인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나도 방향감각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정도가 절대 아니다. 내 가족들은 이것이야말로 어디 가서 실험한 다음 장애인증을 반드시 발급받아야 한다고 말할 정도이다. 내가 기억 못 하는 건 길 같은 정도가 아니다. 나는 레스토랑에서 화장실을 갔다가 나오면 내 자리를 못 찾음은 물론이고, 화장실에서 나와 다시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간다는 게 더 큰 문제이다. 학교 다닐 때 체육 시간에 좌향좌 우향우 연습을 하면 나만 애들과 다른 방향으로 서서 두리번거리곤 했었다. 체육 선생은 급기야 내 손에 돌을 하나 쥐어 주었다. 그러면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얘야. 이 돌을 쥔 쪽이 좌향좌 다 알았지? 이제 패는 것도 지치는구나’
 
학교 다닐 때는 개학 전에 늘 악몽에 시달리곤 했다. 그건 개학을 해서 학교를 갔는데 이런 젠장할 교실이 어딘지를 모르겠는 것이다. 물론 학년과 반이 적혀 있기는 하지만 학교 건물이 달랑 한 개도 아니고 전부 다 찾아 다니려면 꿈속에서도 정말이지 진땀이 쫙 흐르는 일이다. 문제는 이게 꿈이 아니라 실제로 개학을 하면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쪽팔리게도 나는 개학을 하면 꼭 아는 친구 한 명과 같이 등교했다. 그 친구는 얘가 첫 등교를 나와 함께 하고픈가 봐 하고 생각했겠지만 지금 고백하건대 그런 이유는 절대 아니었다. 나는 단지 내 교실을, 지난 방학 이전에 매일매일 갔던 그곳을 찾지 못해서였다.
 
어쩌다 우리 집이 이사라도 할라치면 식구 중 누군가는 나와 함께 한 달 정도는 붙어 다녀야 했다. 안 그러면 관할 경찰서에서 ‘집이 어딘지 몰라요’ 하며 질질 짜고 있는 나를 받아와야 하니까. 나를 인계하던 경찰이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아니 그래 이사를 했으면 애한테 집을 확실하게 가르쳐줬어야지요’ 할 때, 내 부모들은 언제나 말했다. ‘이사한 지 이 주 조금 지났습니다.
 
솔직히 말해 나 같은 인간이 운전대를 잡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아니 화장실에서 나와 지 자리도 못 찾는 인간이 어떻게 운전대를 잡고 길씩이나 찾겠는가. 내비게이션이라는 물건이 세상에 등장하기 전. 나는 내가 운전하는 날은 ‘자동 운전 모드’ 같은 게 자동차에 장착되기 전까지는 요원한 일인 줄 알았더랬다. 물론 지금도 내비게이션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이다.
 
그렇게 많이 비행기를 타고 기차를 탔건만. 나는 아직까지 공항이나 기차역에 들어서면 공포감이 훅하고 밀려온다. 방향 표지판도 있고 안내도도 있지만 그런 건 내게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리 가도 절대 익숙해지거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가끔 예전에 자주 갔던 곳에 누군가가 나를 부르면 정말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그들은 내가 그 장소를 다시는 찾지 못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할 테니까. 사람들은 내가 가던 장소만 가는 이유가 단골집을 좋아해서라고 알지만 아니다. 나도 새로운 장소, 새로운 곳에 가고 싶다. 하지만 내게 있어 그건 너무 힘든 일이다. 늘 가던 장소도 제대로 못 찾는 주제에 새로운 장소라니. 약속 장소를 늘 내가 잡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아. 정말이지 사는 게 힘들다.
 
 
글쓴이ㅣ남로당 칼럼니스트 블루버닝
남로당
대략 2001년 무렵 딴지일보에서 본의 아니게(?) 잉태.출산된 남녀불꽃로동당
http://burur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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