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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랑 폰팅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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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의 PS 파트너>
 
요즘 들어 문득, 아니 자주 외롭다. 물론 나는 외로움은 인생에 있어 영원히 가져가야 할 친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외로운 건 외로운 거다. 어쩔 수 없다. 느껴지는 걸 뭐 어쩌겠는가. 외로움의 실체를 파악하거나 혹은 그럴싸한 말로 포장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주는 느낌이 약해지는 건 아니다.
 
다들 외로울까? 다들 외롭겠지? 그렇겠지? 지금 막 사랑을 시작해서 그 설렘 때문에 심장이 쿵쾅대는 상황이 아니라면 다들 좀 외롭지 않을까? 누군가가 내 얘기를 들어줬으면 좋겠고, 누군가와 공감을 하고 싶고. 많은 환자들이 상담을 받다가 정신과 의사에게 반하는 이유는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전부 자기 할 말이 바빠서 내 얘기 같은 건 들어 줄 시간이 없거나 말을 한다 하더라도 내 속 깊은 얘기는 할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런 얘기들을 정신과 의사들은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들어준다.
 
물론 그들은 공짜로 얘기를 들어주는 것도 아니며, 그것은 엄연한 정신과적 치료의 한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만큼 내 얘기를 할 곳도, 들어주는 사람도 없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반대로 남의 얘기를 들어주는 게 직업인 정신과 의사는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라고 한다. 하긴 그들이라고 해서 자신의 관심이나 호감도와 무관하게 다른 사람들의 매번 다른 사연을 들어주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비록 직업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이쯤에서 고백을 하나 해야겠다. 아주 오래 전. 내가 혼자 산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니 아마 스물 몇 살 무렵이었나 보다. 그쯤의 나는 심한 외로움을 타고 있었다. 밤마다 잠이 오지 않는 그 긴 시간 동안 도대체가 할 일이 없었다. 사람들과 술을 마시거나 어울려 다니며 놀아도 언제나 마지막은 내 집. 그리고 그 안에 혼자인 나였다. 함께 있는 동안에는 세상 끝까지라도 같이 가 줄 것 같은 친구들이 있었지만 결국은 ‘조심해서 잘 들어가’ 하고 헤어지면 그 뿐이었다. 나는 그 이후의 시간들을 견딜 수가 없었다. 비디오도 빌려보고 책도 봤지만 그런 게 외로움을 없애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런 것에라도 집중하려고 애를 쓰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면 더욱 더 외로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예전 남자친구가 군대에 갔을 때 통신병으로 있었으며, 그에게 전화를 하던 기억이 났다. 그는 늘 전화기 앞에 있었으며 상사에게 걸리지만 않는다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외부와 통화를 하는 게 가능했다. 물론 그때는 이미 그는 제대하고 없었지만 나는 그가 그럴 수 있다면 다른 누군가 (즉 현재의 통신병으로 있는)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군대라는 것이 자유가 없고 한정된 공간과 제한된 룰 안에서만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은 어쩌면 지루해서 죽기 일보 직전인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그때 때마침 내가 (것도 여자인) 전화를 해서 이런 저런 말 상대를 해 준다면 그들로써는 마다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더구나 그들과는 어떤 대화를 하건 만날 일이 없으니 관계의 발전 같은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마음만 먹으면 익명성도 (내 이름 하나만 지어서 둘러대면 되니까) 보장받을 수 있다. 나는 옳타쿠나 싶었다. 그리고 기억 속에 있는 그 전화번호를 돌렸다. 부러 그런 사병들을 뽑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역시나 그때 전화를 받은 통신병도 내 남자친구만큼이나 목소리가 좋았다.
 
보안 어쩌고 저쩌고 끝에 통성명을 밝히는 그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저 혹시 저랑 폰팅 하실래요?’
 
그러자 그는 잠시 망설였다. 당연했다. 가정집도 아닌 군부대 안에 전화해서 폰팅을 하자고 했으니 내가 미친 여자가 아닐까 싶었겠지. 하지만 그는 결국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아니면 군부대까지 전화해서 폰팅을 하자고 하는 이 여자는 대체 얼마나 불쌍한 인간인가 하고 측은지심이 발동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말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빌미를 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하긴 궁금도 했겠지. 그래서 나는 대충 둘러댔다. 차마 전에 있던 남자친구가 그 부대에서 근무를 했고, 나는 그를 사귀는 동안 하루에 수십 번도 넘게 그 번호로 통화를 했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거기가 어디냐고 묻고, ‘어머 군부대였어요? 저는 그냥 아무 번호나 눌렀어요’라는 거짓말을 했다. 그가 믿었는지 믿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 그렇습니까’ 하는 말로 대충 넘어가 주었다. (사실 그 번호는 무지하게 쉬웠다. 외우기 쉽게 번호 자체가 쉬운 건 아니었지만 전화버튼을 누를 때 번호와 번호의 간격이 거의 없이 연달아 쭉 누를 수 있는 즉 손으로 누를 때 쉬운 번호였다.)
 
그래서 나의 폰팅은 시작되었다. 나는 그에게 교대 시간을 알려 달라고 한 다음 낮 시간이 아닌 밤 시간에 주로 전화를 걸었다. 어차피 낮에는 나도 바쁘고 그도 상사의 전화를 받아야 할 일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새벽 1시가 넘으면 군부대도 비교적 한가했다. 그들은 몇 명이서 근무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돌아가면서 밤 근무를 서는 모양이었고, 나는 그가 밤 근무를 서는 날을 골라서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가명을 썼다. 가명을 쓰는 게 조금 미안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우리는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조금은 특이한 내 이름이 신경 쓰였었다. 그러나 나는 내 이름을 속인 것을 빼면 비교적 그에게 솔직했다. 어쩌면 내 주변의 그 누구에게 보다도 내 속에 있는 얘기를 많이 했었다. 아마도 익명성이 보장되며, 그와 내가 절대 실제로 만날 일이 없다는 전제가 있었으니 가능했겠지만.
 
나는 그에게 별의별 얘기를 다 했다. 어떤 날은 전날 꾼 꿈에 대해 얘기했고, 또 어떤 날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 얘기했다. 처음에는 거의 들어주기만 했던 그도 조금씩 대화에 끼어드는가 싶었더니 어느새 자기 이야기를 하나 둘씩 해 주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밤늦은 시간에 서로의 얘기를 들어주고 또 서로의 얘기를 들었다. 나는 그가 몇 살인지, 군에 가기 전에는 뭘 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어차피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게 별로 중요하지 않기도 했거니와, 추측하건대 군대에 가서 군복무를 할 나이라면 내 나이에 플러스 마이너스 3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뭘 하는 사람인지 묻지 않았던 것은 말 하는 것으로 봐서 나와 비슷한 학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것들을 내가 느끼는 그대로 믿고 굳이 그에게 확인하지는 않았다. 그 역시 내 나이를 대충은 짐작하는 것 같았고 학생이라는 것도 느끼는 것 같았지만 나에게 어느 학교를 다니느냐, 어디 사느냐 같은 신상과 관련된 질문은 하지 않았다.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우리는 일종의 페어플레이를 하는 느낌으로 전화를 했었다.
 
그때, 아마 나는 내 인생에 걸쳐 누군가와 가장 많이 대화를 했을 것이다. 우리의 전화통화는 약 1년 6개월 정도 지속이 되었고 (이후 그가 제대를 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가 제대를 한다고, 이제 더 이상 전화를 하지 못한다는 말을 할 때 나는 잠깐 망설였었다. 지금이라도 내 이름을 말 하고, 내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우리의 관계는 지속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왠지 그러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는지 나에게 묻지도, 그리고 자신의 연락처를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통화를 할 때, 나는 어쩐지 약간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마치 오래 기르던 고양이가 죽었을 때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고양이는 동물이니 당연하겠지만 나와 같이 산다고 해도 단 한 마디도 나누지 못한다. 그러나 대신 오랜 시간을 함께 했으니 느낌을 나눈다. 그리고 그와는 그토록 오랫동안 대화를 했지만 나는 그의 실체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닮아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많이 허전할 때면 그에게 전화번호를 가르쳐주거나 대신 그의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않은 것을 잠깐 동안 후회했었다. 그리고 또 어떤 날은 다시 그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그 아닌 다른 누군가와 얘기를 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번호로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 일은 거의 잊고 살았었다. 그러다 오늘 집 정리를 하면서 버릴 물건들을 찾는데 예전에 쓰던 전화기 (정확하게는 그때 쓰던 전화기인데 당시 한참 유행했던 네온 불빛이 들어오는 전화였다.) 를 찾아냈다. 유선 전화기에서 무선 전화기로 바꾸면서 버릴까 했었다 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은 것이라서 차마 버리지 못하고 여태 껴안고 살던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때의 일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 너무나 내가 외로웠던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대화를 하고 산다. 그게 누가 되었건 어떤 대화가 되었건 간에 하루에 한마디도 안하고 살지는 않는다. 그리고 히키코모리가 아닌 이상 사람들을 만나고 산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진심을 나누고 있을까? 그리고 서로의 외로움이나 허전함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을까? 언제나 만나면 그때만 잠깐 반짝이는 관계들. 그리고 파하고 나면 외로움은 항상 각자의 몫이다. 내가 그때 그와 나눈 대화들은 비록 두서도 없고, 서로에 대해 별로 아는 것도 없었지만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앞으로 누군가를 만난다 하더라도 (성별이나 관계의 형태에 무관하게) 그때처럼 대화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혼자서 영화를 보다가 술을 마신 이 밤. 나는 참 외롭고 허전하다.
 
 
글쓴이ㅣ.남로당 칼럼니스트 블루버닝
남로당
대략 2001년 무렵 딴지일보에서 본의 아니게(?) 잉태.출산된 남녀불꽃로동당
http://burur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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