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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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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 아주 오래 전 내가 친구와 이태원 지하 단칸방에서 기거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때 나는 이태원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동네가 동네인지라 온 나라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친하게 지내던 네델란드인이 있었는데(그와 친해진 계기는 그의 나라에서 온 맥주, 하이네켄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부터였던 것 같다) 그는 우리나라에 진출한 미국 컴퓨터 회사의 프로그래머로 파견 근무를 하고 있었었다. 무척 똑똑하고 활기차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이는 무려 마흔이 코앞이었다. 당시 내 나이가 겨우 20대 초반이었으므로 그의 나이를 듣고 내 귀를 의심했었다. 그때는 서른을 넘은 마흔이라는 나이가 우주만큼이나 멀고 광대하게 느껴졌었으니까. 그는 내 나이를 잘 추측하지 못했고, 나 역시 그의 나이를 잘 추측하지 못했었다. 왜냐면 외국인이 보기에 (우린 서로의 입장에서 다 외국인이었으니) 다른 나라 사람들은 도통 나이를 추측할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미국 여자애들 같은 경우는 스물 대여섯은 족히 되어 보이는데도 십대라고 해서 나를 기절시키곤 했다. 아무튼 그가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Life is short'이었다. 뭐 인생은 짧다고 정도의 말일 텐데 그 뒤에는 그러니까 즐기라구 의 의미가 축약되어 있는 것 같았다. 오늘 영화를 보다가 저 대사를 하는 남자 주인공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 번 'Life is short'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그래 맞다. 인생은 짧다면 짧다. 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 수명이 90세가 될 날이 머지않았지만 인간이 그렇게 부를 뿐인 90년은 어쩌면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인지도 모른다. 바다거북은 무려 200살을 살고, 큰 수염 고래도 150년은 너끈하게 산다. (이건 동물만 생각했을 때 그런 거고 식물에 해조류까지 범위를 확대하면 만 년 단위가 되기도 한다.) 이 광활한 우주를 생각한다면 어쩌면 우리 인간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시간은 찰나에 불과할지도. 그래서 인생은 짧으니까 즐기라는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짧은 인생 동안 즐겁지 않으면 얼마나 억울하겠냐고, 우주의 티끌도 먼지도 안 되는 우리의 존재와 시간들이 너무 부질없게 느껴진. 저 말은 겉으로 느껴지는 약간 날라리 같은 분위기와는 달리 어쩌면 깊은 성찰 끝에 나온 말인지도 모르겠다. 무튼 결론은 인생을 즐기라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사는 게 즐기는 것, 곧 즐겁게 사는 인생인 걸까? 한때의 나는 화장품 광고 카피마냥 20대가 영원하다고 생각했었다. 당시의 나는 내 젊음과 청춘을 불사르지 못해 안달 난 인간 같았었다. 할 수만 있다면 매일매일 심장이 견디기 힘들만큼 미쳐 날뛰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또 내가 실천할 수 있는 나에게 즐거움을 줄 만한 일들은 거의 다 찾아서 해봤다. (뭐 그렇다고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았다. 그만큼의 배짱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도 없었다.) 그래서 즐거웠냐고? 한동안은. 아니 꽤 오랫동안은 즐거웠던 것 같다. 어쩌면 스스로 나는 이렇게나 재미를 열심히 쫓고 사니까 분명 즐겁다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믿고 싶었을 것이다. 즐겁지 않다면 내가 대체 왜 이 장소에서 이 사람들과 이러고 있나 싶었을 테니까. 깨고 나면 허무하기 짝이 없는 술들. 어젯밤에는 달콤했지만 오늘은 쓰기만 한 아침. 그리고 그토록 반짝였지만 그 다음 날에는 폐인처럼 초췌한 그들과 내 모습. 이런 것들을 문득 느끼기 시작했을 때 나는 즐겁게 사는 일을, 적어도 그런 방식으로 계속 즐겁고자 하는 마음을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건 데 그때야말로 내 인생에서 'Life is short'에 내 나름의 방식으로 가장 충실했던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요즘 들어 스멀스멀 또 다시 즐거워지고 싶어졌다. 전과 같지는 않다 하더라도 나는 이제 청춘이 가고 있음을, 내가 시들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물론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장점도 많다. 모든 일에 너그러워지고 때로는 무뎌지기도 하고, 그렇게 둥글둥글 잘 적응하고 나름대로 반성도 해 가면서 사니까. 하지만 그런 마음 한 구석에는 아직도 저 말이 못다 펼친 구호처럼 펄럭이고 있다. 그리고 그 펄럭임에 눈이 멀고 마음이 뺏겨버리면 나는 다시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린다. 친구들과 죽도록 퍼 마신 어느 날 밤. 각자 택시를 타거나 대리 운전을 불러 뿔뿔이 흩어지고 나만 남은 적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일부러 남겨졌다. 나는 뭔가 더 하고 싶었다. 그게 정확히 뭐였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래서 혼자 자주가던 바를 찾아갔다. 평소에는 잘 마시지도 않는 마티니에 보드카슬링, 맨하탄까지 퍼 마시자 나는 그야말로 맨하탄까지 실려 가도 모를 지경으로 취해버렸다. 그래서 개중 가장 만만해 보이는 바텐더 한 명을 붙들고 실없는 얘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 제일 많이 한 말은 "나는 미쳤나봐요"였던 것 같다. 그 외에는 어떤 말을 했는지 자세하게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평소의 나답지 않게 그에게 명함을 건네고, 명함을 받고 별로 매상을 올려주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칵테일 1잔 무료 쿠폰을 받았으며 가방에서 주섬주섬 책도 한 권 꺼내서 줬다. 그러니까 나는 내 신분을 잘 알지도 못하는 바텐더에게 왕창 오픈한 셈이었다. 아마도 그가 내 직업을 별로 신기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더 그랬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조금이라도 ‘어머 글 쓰시는 분이세요?’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면 나는 아마 내 책을 건네는 추태까지는 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와 아주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꿈에 대해서, 앞으로 남은 시간들에 대해서, 그리고 과거의 시간들 중 단편적인 기억들에 관해서. 하지만 둘 다 어떤 목적이나 두서없이 그냥 주거니 받거니 했던 얘기라서 그리 인상적인 것은 없었다. 그는 말을 하면서도 내 재떨이를 열심히 비워주었고 테이블 위에 물 컵 자국을 닦았으며 나초 안주를 채워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 순간. 우리가 그 어떤 순도 높은 진실을 얘기했다 하더라도 결국 나는 그에게 손님이고, 그는 나에게 그저 바텐더일 뿐이었다. 하루에 스치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좀 더 오래 스치는 사람.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치려고 해도 전생에 수많은 인연이 있었어야 한다니 그렇게 따지자면 그와 나는 전생에 꽤 가까운 사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지금 현재 이 순간에는 그랬다. 손님과 바텐더. 혹은 바텐더와 손님. 손님은 오늘따라 심하게 취했고, 바텐더는 오늘따라 손님이 없어서 심하게 심심했고 등등등. 그날 어쩌면 나는 그에게 'Life is short'이라고 말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짧은 인생을 함께 즐기자고 제안하고 싶었는지도. 그는 나보다 한참은 어렸지만 썩 잘생겼고 말도 꽤 통했으니까. 그리고 뭣보다 나는 바지만 둘러도 남자로 보일 정도로 취했으니까. 아직까지 그의 명함은 내 책상 서랍에 넣어져 있다. 명함 케이스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차마 버리기는 뭣한 쓰잘 없는 명함들을 넣어둔 플라스틱 통 속에. 그리고 그가 준 칵테일 한 잔의 쿠폰은 아직까지 남아있다. 나는 그 쿠폰을 쓰고 싶기는 하지만 그와 다시 마주칠까 봐 두렵다. 생각해보니 참 쪽 팔리는 일이다. 만약 그가 심심해서 몸부림을 치다가 던져놓은 내 책이라도 발견한다면? 그래서 몇 페이지라도 읽는다면? 나는 나를 완전히 아는 사람. 혹은 완전히 모르는 사람에게는 창피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어설프게 몇 마디 나눈 사람이 내 책을 통해 나를 보는 것은 창피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아직까지 내 심장 속에는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따뜻함을 지나쳐 핫 까진 아니더라도 약간 뜨거운데? 정도 까지는 가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짧은 인생을 마냥 즐겁게만 살고 싶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느낌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미 나는 너무 많은 껍질을 만들었고 그 껍질 안에 갇혀있으니까. 그리고 그 껍질들은 내 내면까지 변화시켜서 나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화시켰으니까. 안전한 삶. 평온한 일상. 그리고 둥글둥글 모나지 않은 인생. 그런 것들에 저당 잡혀 있다고 느껴지면 삶이 갑자기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는 잘 알고 있다. 그건 순간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더 길게 더 멀리가 모토가 되어버렸다. 짧고 굵게 혹은 찰나라도 화끈하게 같은 건 더 이상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그리고 나는 어울리지 않는다면 그런 채로 살고 싶다. 적어도 현재까진 그렇다. 글쓴이ㅣ남로당 칼럼니스트 블루버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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