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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결혼하고 싶다고 느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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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리짓존스의 일기]
 
친구들은 말했었다. 넌 우리 중에 제일 빨리 시집을 갈 거라고.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내 친구들 중에는 결혼을 하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적어도 내가 제일 빨리 시집을 가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그렇게 보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요리 하는걸 좋아하고,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고, 무엇보다 밖에 나돌아 다니는 것 보다 집구석에 딱 붙어 있는 걸 좋아하는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게 결혼과 무슨 상관이겠냐 만은 어리고 뭘 몰랐던 우리들은 결혼에 있어 가장 중요한 남자와 새로 생길 가족들을 뺀 나머지 것들만 생각했었다. 남자를 끼워 넣는다고 해 봐야 사랑하는 사람이랑 매일 붙어 있을 수 있는 게 결혼 이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해가 바뀌고 이제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나니 집에서도 어느 정도는 포기한 눈치이긴 하지만 또 모른다. 아직 다 같이 모여 떡국을 먹지 않았으니 조만간 그 자리가 오면 또 한바탕의 잔소리 퍼레이드가 펼쳐질지도. 친척들 모임이나 제사 혹은 명절이 즐겁지만은 않은 이유는 단지 어른들로부터 결혼하라는 걱정 어린 (그러나 내겐 잔소리일 뿐인) 말을 들어서만은 아니다. 정말로 그 자리가 불편한 것은 나보다 더 빨리 결혼해서 애까지 있는 어린 사촌 여동생들 때문이다. 

그녀들은 피가 섞여 있기 때문에 사회에서 만나는 단순한 동생들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그녀들의 눈에 행여 내가 한심해 보이지는 않을까 또는 철없어 보이지는 않을까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언젠가 여름 모임에서 스포티한 복장에 사과머리를 하고 갔더니 애가 둘인 사촌 여동생은 이렇게 말했다.

언닌 늘 고등학생 같아”

만약 내가 어디선가 단 한번이라도 동안 어쩌고 하는 소리를 들었더라면 이 얘기는 분명 칭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남자 대학생으로부터 ‘저 무슨 과에요?’ 하는 말까지 들은 적이 있지 않은가. 요즘은 그나마 나이보다는 젊어 보인다는 말을 듣기는 하지만 이미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 는 말 자체가 나이가 들었다는 소리 아니겠는가. 그래서 사촌 동생의 얘기는 결코 칭찬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나 혼자 좀 길게 풀이해보자면 그래, 역시 언니는 결혼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언제나 철딱서니 없는 옷차림을 잘도 하고 다니네. 정도랄까? 

어떤 사람들은 내가 결혼을 하지 않는 무언가 대단히 특별한 이유라도 있거나 혹은 엄청난 소신 같은 게 있는 줄 알지만 사실 그런 건 전혀 없다. 굳이 이유를 말하라면 결혼이라는 문제가 구체적으로 내게 온 적이 없었다고나 해야 할까. 남자는 있었지만 그 남자와 결혼을 할 일 같은 건 벌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혼자 사는 게 편하다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결혼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불편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든가 결혼은 나쁘다는 생각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가끔 결혼해서 모든 게 너무 달라져버린 친구들을 볼 때면 영원히 싱글로 남아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 때도 있지만 그녀들도 그녀들 나름대로의 행복이, 삶이 있을 테고 그건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아주 가끔은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대부분 허접하고 엉뚱하기도 해서 누군가에게 말하기도 뭣한 것이지만 아무튼 혼자 보다는 둘이 있었으면 좋겠다 혹은 누군가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를테면 외로워서 개나 고양이를 키우느니 사람이 있으면 좋지 않겠냐는 생각 정도라고 해 두자.

며칠 전 가느다란 실로 꼰 팔찌를 샀다. 액세서리를 좋아하지만 팔에는 시계 이외에 좀처럼 팔찌를 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 팔지 같지도 않은 가느다라함에 반했었다. 너무나 가늘어서 시계와 같이 착용을 하더라도 전혀 과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회색 팔찌는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아주 조그만 은색 타원형 장식품만 달려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정말 억만년 만에 팔찌를 구입했다. 아마도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 엄정화가 늘 차고 나오던 팔지를 보며 저 정도라면 괜찮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엄정화의 팔지를 파는 브랜드에서 구입했으니 영향이 지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너무 가느다랗고 더구나 다한증에 시달리는 동시에 겨울이라 핸드크림을 잔뜩 바른 내 손으로는 도무지 벗기지도 차지도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장에서 언니가 채워준 이후 아직까지도 내 손목에는 팔찌가 그대로 차여 있다. 하도 가늘어서 크게 불편하지는 않지만 일단 집에서는 모든 액세서리를 하지 않는 나로서는 조금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다. 차라리 샤워를 할 때는 괜찮은데 세수를 할라치면 이 팔지는 언제나 거슬렸다. 

그래서 문득 생각했다. 이럴 때 ‘자기야 나 팔지 좀 풀어줄래?’ 혹은 그 반대로 말 할 남편이 옆에 있다면 어떨까? 팔지 하나 차자고 남자와 결혼할 수는 없는 문제겠지만 그래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아주 가끔 화장실에서 큰 볼일을 보다가 화장지가 떨어질 때가 있다. 밖이 아닌 집인 게 그나마 천만다행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쯤이야’ 할 문제는 아니다. 솔직히 작은 볼일 같으면 약간 찝찝해하면서 옷을 입고 화장지가 있는 베란다의 창고로 가서 꺼내 오면 되지만 큰 볼일은 약간 찝찝 정도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 옷을 올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리 혼자 사는 집이지만 무릎에 옷을 걸친 엉거주춤한 자세로 베란다까지 가고 싶지도 않다. 아무도 안 본다 하더라도 중요한 건 내가 그것을 보고, 무엇보다 그 행위를 하는 게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럴 때 또 생각한다. 만약 남편이 있다면 약간 창피하긴 하겠지만 화장지를 좀 가져다 달라고 충분히 말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요리랄 것 까지는 없지만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거의 집에서 밥을 해 먹는다. 비록 나 혼자 먹을 거지만 꽤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들어서 먹는다. 혼자 먹는다고 해서 김, 김치, 참치 캔만으로 때우던 것은 이십 대 초반에나 가능한 짓이지 서른이 넘어 그런다면 그건 골병이 들기로 작정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아주 가끔이지만 내가 만들었어도 기막히게 맛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나는 손이 큰 편은 아니지만 유독 국을 끓일 때는 손이 커져서는 한 솥을 끓이곤 하는데 그런 국이 마침 맛있을 때는 이 많은걸 혼자 먹기보다는 누군가와 같이 먹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는 내 주 특기인 해물 탕을 끓였는데 (솔직히 식당 해물 탕보다 내가 끓인 게 더 맛있다. 고 생각한다.) 그날따라 맛이 정말 예술이었다. 요리를 해서 식탁에 올렸을 때 ‘이거 맛있는데?’ 라고 말 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은 역시 아무리 익숙해진다 하더라도 약간은 맥 빠지는 일이다. 
 

영화 [브리짓존스의 일기]
 
여자가 혼자 살다가 보면 TV 뉴스에 나오는 흉측한 범죄 소식을 들을 때 마다 움찔 하게 된다. 다른 사건 사고도 많겠지만 유달리 혼자 사는 여성이…로 시작되는 범죄 소식은 아무리 딴 짓을 하고 있더라도 마치 소머즈의 귀라도 달린 듯 귀에 확 꼽힌다. 그리고 그런 밤이면 어김없이 조금은 무섭고 약간은 걱정된다. 때마침 베란다에서 무슨 소리라도 들리는 것 같으면 그야말로 머릿속에는 온갖 범죄 현장이 스쳐 지나간다. 최악의 경우에서 살아남는 법이라는 책을 왜 좀 더 정독하지 않았던가 하는 후회부터 시작해서 이럴 줄 알았으면 침대 옆에 야구 방망이라도 하나 놔두는 건데 까지 별별 생각이 다 든다. 하지만 이때 더 중요하고도 무서운 사실은 일단 밖에 나가서 그 소리의 정체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야 난 아무것도 못 들었어’ 라며 그냥 잠을 청할 만큼 무딘 인간이 다음에야 말이다. 요행히 아무 일도 아니라면 약간의 무서움을 참고 나가서 아무 일 없음을 확인한 다음 안심하고 다시 잠을 청하면 된다. 그러나 이 약간의 무서움은 솔직히 약간이 아니다. 문을 열고 나가는 동안 이 문을 열게 아니라 오히려 방문을 걸어 잠갔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지나 않을지 머리털이 서고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 긴장한다. 그럴 때 남편이 있다면 얼마나 덜 무서울 것인가. 더구나 밖에 나가서 확인을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는 것은 당연히 그의 몫이 될 것이다.

이렇게 사소하지만 사실 사소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일들 (일상이란 따지고 보면 사소함의 연속이 아니던가) 을 겪을 때면 생각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마침내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수순처럼 결혼을 하게 된다면 괜찮지 않을까? 물론 결혼 생활이란 저런 사소함을 해결하기 위해 선택하는 방편으로는 너무나 많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저런 일을 겪는 순간에는 찰나라 할지라도 남편 이라는 존재를 떠올리게 되는 게 사실이다. 

저러한 이유들로 내가 결혼을 할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가끔은 나에게도 결혼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공원에 나들이 나온 행복한 부부와 그들을 꼭 닮은 깨물어주고 싶게 귀여운 아이를 볼 때 보다 나는 저럴 때 더 결혼이 하고 싶어진다.
남로당
대략 2001년 무렵 딴지일보에서 본의 아니게(?) 잉태.출산된 남녀불꽃로동당
http://burur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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