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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정담] ‘청춘정담(靑春情談)’ 연재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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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julia] 밤새 '응응응(자체검열)' 을 하다가 새벽에야 잠이 들었다. 늦게 잔 자는 늦게 일어나는 것이 인지상정. 그러나 가차 없이 울리는 한 통의 전화에 잠을 깼다. 처음 들어보는 남자의 목소리가 무언가를 제시했고 나는 그러자며 서둘러 전화를 끊고 다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늦은 오후, 느지막하게 잠에서 깨어 200원짜리 인스턴트 커피를 한잔 마시며 네이버를 검색하고 있을때야 비로소 그 전화 내용이 떠올랐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내용이 아니라 '단어'들이 떠올랐다는게 맞겠다. 남로당, 정기투고, 소재 자유, 소정의 원고료... 애써 정확한 대화 내용을 떠올리기 귀찮아서 다시 게시판 클릭질을 반복하고 있을때, 문득 가장 늦게 떠오른 원고료란 단어가 강한 울림으로 뇌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원고료? 원고료 원고료... 아항 원고료! 그래, 나도 이제 생산적인 인간이 되어보는거다, 라며 마음을 다잡은 것도 정확히 이 시점에서부터인 듯 하다. 자... 그럼 써보세~ 신나게 써서 나도 부자가 되어보세~ 라며 키보드를 가지런히 놓은 순간, 사소한(?) 몇가지 의문사항들이 떠올랐다.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쓰라는 것인가...?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도 전화 내용에선 떠오른게 없다. 단지 '자유'를 무지하게 강조하던 담당자의 목소리가 왠지 찜찜했던 느낌 밖에는. '저희 남로당에서는 이번에 개편되는 '님과뽕' 이란 코너에 객원 필자를 모시고 있습니다. 이 코너는 다양한 군상들의 다양한 성생활의 소개를 통해 독자들에게 정보와 감동을 드리고자 기획 되었습니다. 인간과 섹스가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소재로 하시되, 미풍양속을 저해하는 스와핑, 수간, 세라복 입히기, 군병영내에서의 뒤치기 등의 소재는 되도록 피해주시길 바라고, 간접광고 시비를 불러일으킬수 있는 특정 모텔들의 언급은 자제해주셔야 합니다. 원고는 매주 월요일 5시까지 1500 자 내외의 글을 txt 나 한글 화일로 보내주시면 되고, 한 글자당 30원, 영어나 한자의 경우엔 내부 규정에 의거 20원에서 40원까지로 계산해서 고료를 지급합니다.' 뭐 이런게 형식적 완결미가 있는 원고청탁의 전형이 아닐까 상상해보지만, 현실은 어쨌든 '그냥 자유롭게 써주시면 됩니다.' 짧은 한마디였으니... 마치 갓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와서 느꼈던 그 '버거운 자유'가 다시 한번 닥친듯한 압박감을 느끼며 담배만 몇대 피워물고 말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대략 팔백원어치의 담배 연기를 흩날리는 동안 몇가지 후보안들이 제목과 함께 모니터에 떠오르고 있었다. 1. 티켓 한장의 선언 - 기업형 일본 화류계와의 일전을 선포한 다방 오봉 누님들의 투쟁 상황의 기록, 정리를 통해 제국주의적 글로벌리즘에의 저항 메세지를 전달한다. 2. 아트의 뒷내음을 찾아서 - 문화계 뒤편의 온갖 다양한 섹스 스캔들을 취재, 예술의 차가운 벽 너머의 인간미 넘치는 살내음을 전달한다. 3. 님따라 맛따라 - 팔도 진미들을 가상의 미모 리포터를 대동한 기행형식으로 소개한다. 예를 들어 청평의 메밀묵밥은 사정시간을 20초 당겨주니 지루환자들은 메모해 두시라던가 하는 등의. 등등... 그런데 이렇게 몇가지를 써놓고 들여다보니 그안에 흐르는 일관된 주제를 스스로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역시나 '명랑'. 이는 청탁한 주체인 남로당이라는 공간이 주는 일종의 강박관념일수도 있겠지만, 나 자신이 재미있어 하며 쓰기엔 그만한 소재가 없다라는 한계 파악에서 오는 현실적인 선택인 것이기도 한것이다. 그래서 모니터를 깨끗이 지운 빈 공백에, 떨리는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두 글자를 타이핑 해 넣었다. '명랑' 그렇다면 어떤 명랑 얘기일까. 테크닉? 선진 명랑기법? 각종 매체에 등장하는 명랑담론들의 분석? 불만족스러운 명랑이 21세기 동북아 정세에 미치는 영향 탐구? 음... 에라 그냥 쉽게 쓸수 있는걸로 가자. 이거 좋네. '나의 명랑 이야기.' 근데 문제는 저걸로는 한회분 채우면 바닥날 얄팍한 경험들 아닌가. 오래 끌수 있으려면 범위를 좀 넓히자. 그래, 친구들은 이럴 때 써먹어야지. '나와 내 친구들의 명랑 이야기.' 음... 그래봤자 3회분이면 종료다. 나는 원고료를 받아서 집도 사고 차도 사야 하지 않는가. 범위를 더 넓혀야 한다. 그런 고민의 과정을 통해 결정된 기획안은 일단 아래와 같다. '나와, 내 친구들의, 그리고 어디선가 주워들은 명랑 이야기.' 써놓고 보니 제목으로 쓰기엔 너무 장황하고 후진 냄새가 진하다. 제목을 어떻게 바꿔볼까. 이때 문득 예전에 봤던 <청춘 스케치>란 영화 제목이 떠올랐다. 아 '청춘' 좋다. 일단 글에 노인들과 아이들이 등장하지 않음을 강조하니 효과적이고, 점점 멀어져가는 저 시절에 대한 향수가 내 방 가득 넘쳐 흐르고 있으니 쓸 맛도 나고. 오케이. '청춘'을 넣자. '명랑 청춘'... ? 음. 강렬하고 효과적이지만 일단 '명랑‘ 이란 단어는 노골적이서 품위를 떨어트리니 배제하자. '청춘 다이어리'... ? 뉘앙스가 적절하긴 하지만 전형적이어서 지루한 제목이다. '청춘 야화(夜話)'... ? 왠지 밤에 한 명랑 이야기만 써야 할거 같으니 이것도 패스. 결국 오랜 시간 고민 끝에 최종 결정한 제목은 아래와 같다. '청춘정담(靑春情談)' 왠지 민망스럽지만 그냥 밀고 나가기로 했다. 앞으로의 글쓰기에 대해 몇가지 가이드라인을 알려 드리는게 좋을 거 같다. 1. 모든 주인공들은 이니셜을 가질 것이며, 주인공은 첫회 'A'라는 이름으로부터 시작되어 'B,C,D...' 순으로 지정 된다. - 이는 이 이야기들이 실화냐 픽션이냐라는 이분법적 제한에 의해 읽는 재미, 동시에 쓰는 재미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함이며, 주인공 이름 때문에 '니 아냐?' 라는 오해를 받을 '철수, 민수, 상욱' 들을 보호해주기 위한 세심한 배려가 깔려 있는 결정이기도 하다. (26회까지는 어떻게든 버티겠다는 의지 아니냐는 모함성 의혹은 즐.) 2. 각 주인공들의 시점은 실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 구라를 풀때에는 반드시 “내가 말이야~' 라고 시작해야 한다고 선배들이 강조했으므로 그런 점이 우선 십분 활용 될거 같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선 보다 객관적인 시선을 담보하기 위해 ‘그’ 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 수도 있다. 여기서 새삼 '내가' 주인공이라고 해서 그것이 쓰는 나 자신의 이야기라고 믿으시거나, '그'가 주인공이라고 해서 그것이 제삼자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믿으시거나 그건 절대적으로 읽는 분들의 자유에 속한다. 다만 이것이 실화인지 구라인지를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이야기인지 걔 이야기인지를 따지는 것은 쓰는 저나 읽는 댁들에게 그다지 재미 있을 태도는 아닐거라고 예상해 본다. (본인의 이야기를 타인들의 이야기 속에 혼재 시켜 '도덕적, 법적' 탈출구를 마련하기 위한 시도 아니냐는 의혹 받으면 난감.) 3. 각 이야기들은 위에서 거창하게 떠든 것과는 달리 '명랑' 그 자체에 무게추를 두고 전개 되지는 않을 것이다. - 개인적으로 ‘명랑’ 자체에 집중하는 이야기는 쓸 능력이 되질 않는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명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자질구레한 관계, 감상 등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구체적인 명랑 행위 자체의 묘사는 없을 것이라 예상 되며, 어떤 인물들은 아예 베드씬이 없는 채 마무리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터질듯한 젖가슴을 탐욕스럽게 빨아대기 시작했다. '아흑' 그녀는 순간 신음 소리를 뱉으며 나의 단단하게 굳은... 이런 글은 야설게시판에 수없이 많으므로 따로 시간내서 찾아보시기 바란다. 개인적으론 '아빠보다 잘하는 오빠' 란 글 추천.) 그냥 부담 없이, 뭔가 강렬한 감동과 스릴을 안겨주리라는 무리한 기대 없이,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남녀들의 '어딘가에서 있었을, 있었음직한' 그들의 사랑 혹은 섹스에 대한 일화들쯤으로 이해하고 가볍게 읽어주신다면 쓰는 사람의 어깨도 가벼울거 같다. 이상 길었던 서론 이만 절미하고, 혹시 이 기획안이 담당자에 의해서 빠꾸 맞을지도 모르고, 권고 단어량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제일 중요한 것은 아직 못들은 원고료가 글자당 10원이하일지도 모르므로 본격적인 이야기들은 다음부터 쓰도록 하련다. 그럼 일단 여기서 그만. 청춘들 즐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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