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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정담] D의 이야기 - 뒤끝 안좋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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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브픽션]

Cool의 시대입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단어, 쿨. 이것을 '연애 후 이별' 이란 상황에 대입시키면 '깔끔하게 끝냄. 뒤끝 없음' 정도로 치환할 수 있을 거 같군요. 그러나 시대적 흐름과는 별개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늘 있게 마련이고, 오늘의 주인공도 그런 인물입니다.

그럼, '이별 후 뒤끝 안 좋은걸로 소문 자자한 남자' D의 이야기 시작합니다.

ㅡ 
1

D는 3년 사귄 여자친구와 이별을 했다. 이별의 이유라던가, 상황이라던가 하는 것은 남들과 별반 다르지도 않고 그닥 중요한 것도 아니니 패스하기로 하자. 이별 후 잊으려 노력하며 괴로워 하던 어느날, 그는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공교롭게도 그 자리엔 연애가 끝장난 남자들이 몇명 끼여 있었고, 그러다 분위기는 '여자들의 이기적인 심뽀, 이중적인 행태'에 대해 토로하는 공분의 장이 펼쳐졌다.

'같이 여행을 갔는데 삼박 사일동안 지갑 한번을 안 꺼내더라. 그리고 서울 올라와서 커피값 한번 내대. 야... 넘하지 않냐?'
 
남자들의 환호가 터졌다. 여자들은 다 그 모양이라니깐, 우리가 무슨 봉이야, 그렇게 돈 아껴서 지 옷 사입드라. 등등의 코멘트들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리고 다음.

'야, 지는 초등학교 친구네, 동호회 친구네, 예전에 알고 지내던 오빠네... 매주 줄창 만나고 다니면서 내가 여자 과후배랑 저녁 한번 먹은 거 가지고 아주 생난리를 치더만.'

다시 한번 갈채가 터졌다. 지 핸드폰은 비밀번호 걸어놓구 내꺼는 매일 검색해, 야... 지는 맨날 수영장 가서 강사랑 히히덕 거리면서, 내가 헬스클럽 좀 열심히 다니니까 거기서 어떤 년이랑 눈 맞았냐고 비아냥 거리드래니깐, 아우 여자들이란 정말... 다들 잘 헤어졌어.
 
이윽고 모든 시선이 D에게로 향했다. '너도 최근에 헤어졌잖아. 어서 걔에 대해 털어놓으라고. 우린 동지야, 너에게 박수칠 준비가 되어 있어.'라는 암묵적인 강요의 눈빛들이 그에게로 쏟아졌다.

D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뭐가 있었드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침내 D 는 그간의 불만 하나가 떠올랐다. 친구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그는 또박또박 그녀의 이기성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난, 걔랑 잘 때 아주 정성들여서 구석구석 애무해주거든? 근데 걔는... '

친구들의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D 는 일부러 극적인 효과를 노리며, 담배 연기 한대 길게 내뿜으며 뜸을 들였다.

' ... 걔는... 나 가슴도 안 빨아주더라..... 후......'
 
빠라조~~~~~~~~ D의 예상대로라면 이 때쯤에 친구들의 경악과 분노의 비명 소리가 술집에 울려퍼져야 했다. 그러나 부자연스러운 침묵... 쓸쓸한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던 그는 어리둥절해하는 친구들의 표정과 '그게 뭐?' 하는 혼란의 눈빛들 속에 당황해야 했다.

... 그날, D는 모든 남자들이 자기처럼 예민한 가슴을 가진 게 아니란걸 처음으로 알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기 가슴 따위 별 신경 안쓰고 관계에 임한다는 것도 덤으로 알았다. 사내다움이란 가슴을 빠는 것이지, 빨리는 것이 아니라고들 생각하는 친구들의 분노에, 그는 얼굴 발개진 채 말 없이 고개 숙이고 있어야 했다.

그 일 이후 친구들 사이에서 'D스럽다' 라는 말은, '이상한 거 안해준다고 삐져서 뒷다마 까려든다'와 동의어로 쓰이게 되었다. 그리고 가끔은 '취향이 변태스럽거나 성감대가 희한한'의 의미로도 복합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2

헤어진 후 뒷끝 안 좋은 남자들의 대표적 행실 중에 '술 취해서 전화걸기'가 있다. 그리고 역시나 D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정확하게 그런 짓거리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녀도 그런 행태쯤은 받아줄만한 여유가 있었는지 매정하게 전화를 끊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도 D는 술에 취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은 뭐했니'

'뭐 그냥...'

전혀 궁금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잡담들을 주절거리다가 그날따라 말이 길어지는 D.

'그래... 음... 요즘 뭐 누구 만나는 사람은 있구?'

' 아니... 일하느라 바뻐서... '

오... 역시...! 뿌듯해하던 D는 그녀를 슬쩍 떠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호탕한 목소리로 아주 가벼운 농담을 하듯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런...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그래야지. 그래, 그럼 성생활은 잘 하고 계시는건가~?'

'뭐 그럭저럭...'

여기서 D의 뚜껑이 열렸다. 뭐? '그런거 없어'가 아니고 '그럭저럭' 이라고?????
 
지난 몇달동안 왠지 개운하지 않은 느낌에 여자를 멀리하고 지냈던 D는 그녀의 대답에 폭발해버렸다. 니가 어떻게 날 두고 그럴 수가 있냐며 D는 전화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황당해하는 그의 예전 애인은 몇마디 변명하다가 귀찮다는 듯 전화기를 끊어 버렸다. 끊어진 수화기에 대고 D는 '니랑은 이제 진짜 끝이야.'라며 악을 썼다.

이미 끝난 여자한테 끝이라고 새삼 지랄한 그날 이후로, 'D 처럼 군다'는 말은, '허무개그 스타일의 뒤끝 안 좋은 행동을 하다' 의 의미를 추가하였다.
 
3

D의 헤어진 그녀는 자취생이었다. 그녀의 집에 놀러갈 때마다 낡고 작은 티비가 늘 마음에 걸렸던 D. 그러던 중, 마침 그의 매형이 TV를 경품으로 받게 되었는데 보관할 곳이 없어서 창고로 쓰는 작은 방에 갖다 놓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누나한테 허락도 받지 않고 그 티비를 훔쳐내어 그녀의 방에 놓아주었다.

최신형 29인치 완전평면 컬러티비에 그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D는 자기가 벌어서 사준 것인양 뿌듯해했다.
 
그러나 이미 헤어진지 4개월이나 지난 후, 갑자기 D의 누나가 짜증나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호출했다.

'그 티비 니가 가져갔지 새꺄. 매형이 그거 어떻게 탄 티빈데 없어졌다고 얼마나 난린 줄 알어. 너 니 매형 성격 알지? 당장 안 갖다 놓으면 처남이라고 안 때릴 사람 아니다 그 사람... 맞고 울면서 후회하지말고 좋은 말할 때 얼른 원상 복구 시켜라.'

그는 깎두기 머리에 근육질인 매형의 얼굴이 눈에 떠오르며 잠시 공포에 질렸다. 그렇다고 학생 신분에 똑같은 기종으로 사서 메꿔놓을 형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여자친구한테 갖다줬다고 해봤자 더 얻어터지기만 할 뿐이란걸 D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차마 도로 달라는 소리는 못하겠던 D는 한달여를 버텼다. 그러자 이제 모든 식구들의 압박이 시작되었고, 평소엔 외박하면 세대만 때리던 아버지에게 일곱대를 맞는 상황으로 번져 버렸다.

괴로워하던 D는 막다른 절벽에 몰린 기분으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쓰러운 목소리로 상황 설명을 간신히 마치자 그녀는 '내일 와서 가져가'라고 덤덤히 대답해주었다.
 
다음날, 그는 민망함과 미안함으로 무장한 채 TV를 다시 받으러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녀의 눈빛을 피한 채 묵묵히 티비를 챙겨 들던 그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문제에 부딪쳐 버렸다.

억지로 티비를 들던 그의 허리에 '우지끈' 하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그제서야 그는 29인티 최신형티비는 혼자 들기에 만만치 않은 물건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의 자취집은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 건물에 있다는 것이 그를 더욱 당황하게 만들었다. 반년전의 그는 ‘사랑의 힘’으로 이걸 들고 올라왔었나보다며 서글퍼 하는 그에게 그녀가 안쓰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 ... 도와줘...?'

그는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느 화창한 봄날, 5개월만에 만난 D와 그녀의 전 여자친구는 칼라티비를 낑낑대며 나르는 진풍경을 연출하게 되었다.
 
최신 29인치 TV 사양크기(폭)850mm크기(높이)595mm
크기(깊이)515mm무게52Kg

 
그날 이후 D는 진정한 친구란 저 상황의 페이소스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현재까지 대부분의 친구들은 손가락질과 비웃음만을 던져 주었고, 요즘 D는 진정한 친구를 찾겠다며 외국 펜팔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다.
 
4

7개월쯤 뒤 어느 늦은 밤,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D에게 갑자기 문자메세지 한통이 날아왔다.

'... 나 지금 압구정에서 술마시고 있다.'

헤어진 그녀였다. 갑자기 혼란스러워진 D는 평소 존경하는, 모든 여자 문제에 대해 정확한 해답을 제시해주시고 나아갈 바를 정확하게 짚어주시며, 21세기 첨단의 쿨을 생활화하여 뭇 사람들의 찬탄을 한몸에 받고 계시는 선배(strada, 본인임)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형, 이게 뭐지? 얘가 왜 나한테 갑자기 이런 문자를 보낸거지? 어떻게 해야 돼?'

'잔말 고만하고, 일단 압구정으로 뛰거라.'
 
D의 미련을 알고 있는 선배의 간략한 명령에 그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급한 마음에 택시를 잡아탔다. 참고로 그의 집은 평촌이며 택시비로는 대략 2만원, 시간상으론 거의 한 시간에 육박하는 거리를 심야에 질주했다. 압구정에 도착해서 그는 그녀에게 허겁지겁 전화를 걸었다. 몇번의 통화 시도를 하면서 30여분을 길거리에서 날리다가 간신히 통화가 된 그녀.

'어디야?'

'신촌. 술 먹다가 여기로 2차 왔어. 근데 그건 왜 물어?'

헉... 비록 뒤끝은 안좋지만, 이런 상황에선 서프라이즈~ 식으로 하지 않으면 묘미가 반감된다는 것쯤의 센스는 있는 D는 아무말 없이 다시 신촌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도로가 막혀 다시 한시간쯤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또 다시 전화 연결하는 동안 날아가 버리는 시간들.
 
'헉헉... 신촌 어디야?'

'힘들어서 그냥 집에 가는 버스 타고 있는데? 거의 다 왔다. 근데 왜 자꾸 물어?'

참고로 그녀의 집은 그와 같은 동네인 평촌이다. 비명을 지르고 싶어진 그는 다시 아무말 없이 심야좌석을 잡아타고 그녀의 자취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집 앞에서 그는 다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을 전화 받지 않던 그녀가 잔뜩 잠에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헉헉... 뭐해?'

'자고 있었어. 나 몸도 안좋고 술 넘 많이 마셔서 피곤하다. 근데 너 왜 자꾸 전화질이야? 내일 통화해. 끊어!' 딸칵.

밤 10시에 집에서 나와 5시간동안 서울을 헤메며 그녀를 찾아다닌 그는 허탈함에 거리 벤치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는 혹시나 그녀가 중간에 깰지도 모른다는 허망한 기대에 그녀 방의 불이 켜지기를 한 시간동안 기다리다가 돌아왔다.

다음날 전화했을 때, 그녀는 술김에 그에게 문자 보냈던 사실 자체를 기억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얘기를 전해 들은 선배는 D에게 '바보 새끼'라며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고, 사람들은 '이제 D가 드디어 스토커짓까지 한다'며 수군거렸다.
 
5

주위 사람들에게 멸시와 조롱을 당하면서 살아가던 D는 10개월쯤 지난 어느날에서야 드디어 새 삶을 찾겠다고 선언했다. 술 취하면 그녀에게 전화하던 버릇과도 결별했고, 마침 새로 만난 여자와 연애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이런 변화는 '뒤끝 안좋음의 궁극은 무엇일까'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던 주위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D는 막상 새로 사귄 여자친구와는 몇달 되지않아 헤어졌다. 정말 인간이 변한건지, 얼마 사귀지 않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엔 아무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지 않고 깔끔하게 끝낸 모습이었다.

자신은 새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며 뿌듯해하던 D에게 어느날, 이번에 헤어진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참고로 그녀는 경품을 취급하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으며, D와 사귈 때 그에게 플레이스테이션 2를 경품으로 받게 해주는 비리를 저질렀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에게 그 플스 2 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달라는 거 안 주는 치사한 놈이 되기 싫었던 D. 헤어진지 한달이 넘은 어느 따뜻한 봄날, 플스 2를 들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집 앞에 도착해서 전화하자 그녀는 '경비실에 놓고 가'라는 차가운 대사를 던졌다. 그는 짜증과 착잡함의 혼재 속에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D는 위의 그 존경하는 선배를 불러 재밌는 얘기가 생겼으니 술 사라고 수작을 부렸다. 그리고 자신의 이 얘기를 팔아먹으며 공짜술에 취했다. 난 연애 너저분하게 끝나는 팔자인가봐요. 이번엔 그래도 내탓은 아니죠? 그렇다고 말해줘요 형. 주정을 시작하려는 D를 착잡하게 바라보던 선배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지꺼라고 믿었던 플스 2를 뺏긴 게 괴로운거겠지 이 새끼...'



새 삶을 살아보려 노력하던 D는 저 일 이후로 다시 원상복구 되었습니다. 얼마 전엔 술 취해서 여자들한테 전화하다가 핸드폰까지 잃어버렸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그를 통해 이 시대 전설이 되어가고 있는 '애틋한 미련'에 대해 가끔 생각해보곤 합니다. 음 이런, 쿨하지 못하게 후설이 길어지려하는군요.

이상 '뒤끝 안좋은 남자' D의 선배, strada였습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남로당
대략 2001년 무렵 딴지일보에서 본의 아니게(?) 잉태.출산된 남녀불꽃로동당
http://bururu.com/
 
· 주요태그 섹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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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상상 2017-11-11 08:20:20
ㅎㅎ 이별에 성숙해지는건 힘든일인것 같아요 ㅎㅎ
lukas 2017-11-10 15:50:08
저런경우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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