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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브레이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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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브레이터는 본래 히스테리 증상을 치료하기 위한 의료기구로 발명되었다. 고대 히포크라테스 학파에서 히스테리(hystera) 증상의 원인이 자궁에 있다고 진단한 이래로 서양에서는 수 세기 동안 여성의 히스테리 치료를 위해 클리토리스 마사지를 시술해왔다. 시술은 간단했다. 의사가 신선한 기름을 바른 손가락으로 히스테리 환자인 여성의 클리토리스를 지속해서 자극하면 여성은 (질)근육의 수축을 일으키며 몸을 떨고 심하게는 의식을 잃기도 했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기에는 명백한 오르가즘 현상이지만 당시 의학계는 페니스의 삽입 없이 여성이 오르가즘에 도달할 수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클리토리스 마사지로 인한 여성의 절정을 ‘히스테리성 발작(hysterical paroxysm)’이라고 불렀다. 발작에 도달하면 여성의 히스테리 증상이 해소된다는 것이 이 치료법의 원리였다.
하지만 히스테리는 완치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환자들은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거듭 방문해야 했다. 한 시간 가량 (때로는 그 이상) 여성의 클리토리스를 마사지하는 치료과정은 남성 의사에게는 여성 환자의 입장과는 달리 지루한 것이었으리라. 의사들은 이 소모적인 수작업을 기계로 대체하기 위해 노력했다. 때는 19세기 말, 산업화의 시대였다. 가장 먼저 개발된 방법은 물을 이용한 것이었다. 환자의 국부에 강하게 물을 쏘는 수치요법(水治療法, Hydrotherapy)이 개발되었고 널리 유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물을 이용한 클리토리스 자극법은 위생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비용이 비쌌으며, 치료장치의 설비시설이 필요했다. 수치요법(水治療法, Hydrotherapy)
바이브레이터의 발전 1880년대에 들어 영국의 의사가 전자식 바이브레이터를 개발했다. 진료대에 맞춰 설치한 전기 바이브레이터로 의사들은 소모적인 노동을 줄일 수 있었다. 전동모터가 일으키는 진동으로 마사지를 받은 히스테리 환자들은 10분 이내에 발작에 도달할 수 있었다. 휴대용 바이브레이터는 20세기 초에 개발되었다. 약 20년 동안 휴대용 바이브레이터가 개발되지 않은 까닭은 여성들의 필요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공업기술의 발전에 있었다. 20세기에 들어 소형 전동모터가 보급되었고 이를 이용한 휴대용 바이브레이터가 생활가전용품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초기의 휴대용 바이브레이터.
살벌하게 생겼지만 신체와 접촉하는 부위는 고무로 처리되어 있다. 다양한 기능과 형태의 바이브레이터가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아닌척 바이브레이터’의 역사도 시작되었다. 아래의 광고지 그림을 보라. 유레카(Eureka) 바이브레이터는 두통을 완화시키기 위한 두피 마사지기로 위장하고 있다. 특히 여성들이 주 독자로 설정된 홈데코나 가구, 재봉 잡지 등에는 이런 광고가 무수하게 실렸다고 한다. 경직된 근육의 통증을 이완시키는 마사지기라는 식의 광고문구를 달고 말이다. 한편으로는 바이브레이터가 아닌 것 같은 디자인의 물건이 시판되었다. 가정용 진공청소기의 모양을 본뜬 커다란 전동 바이브레이터나, 손톱정리용구 모양의 휴대용 바이브레이터가 판매되었다. 발마사지기 등의 이름으로 팔려나간 바이브레이터가 발을 마사지 하는 데에만 쓰였을 거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또한 바나나 등 과일 모양으로 위장한 바이브레이터도 판매되었다고 하니 오늘날 딴지몰에서 판매하는 남인척 명랑완구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진공청소기 형태의 바이브레이터 상자(左), 홈뷰티살롱(?) 바이브레이터(右)
바이브레이터의 재발견 성혁명과 여성혁명의 목소리가 높았던 1970년대, 미국의 페미니스트이자 화가인 베티 도슨(Betty Dodson)이 등장했다. 그녀는 여성의 성 해방을 목표로 바디섹스워크숍을 개최했다. 이 모임은 성적 독립성을 쟁취하기 위한 여성의 자발적인 노력을 강조했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자위(自慰)를 통해 오르가즘을 느끼자는 것이었다. 모임에서는 베티 도슨은 여성 생식기에 대한 이해와 사랑, 다양한 호흡법과 체위의 연구, 여성의 성적 추구에 대한 심리적 억압기제의 완화를 시도하는 한편으로 히다치 마술봉(Hitachi Magic Wand)의 사용을 강력하게 권했다. 잠들어 있는 클리토리스를 깨우는 마법의 바이브레이터를 들고 있는 베티 도슨
여성계 내부에서 일어난 이런 움직임으로 인해 바이브레이터는 남성과 남근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의 상징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애인이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하거나 자위를 하는 것에 불쾌한 감정을 느끼는데, 마치 19세기 정신과 의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남성 성기의 삽입 없이 이루어지는 오르가즘’을 부정하고 싶은 심리가 그 바탕에 있다고 본다. 한편 어떤 여성들은 바이브레이터에 ‘중독’되어 정상적인(?) 삽입섹스를 즐기지 못할까봐 두렵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에 따르면 바이브레이터에 대한 공포나 불안은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베티 도슨이 저술한 유명한 자위개론서 [네 방에 아마존을 키워라]에는 그녀의 독자들이 보내온 체험수기가 부록으로 실려있는데, 자위를 통해 오르가즘을 깨닫고 더욱 왕성한 성생활을 누리고 있으며 충만한 자기사랑으로 긍정적인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내용의 편지는, ‘한달안에 12kg감량’ 문구보다는 믿을만하다. - 저는 생전 처음으로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자위를 하면서 오르가슴을 경험했습니다. - 당신의 책을 읽자마자 히다치사에서 나온 바이브레이터 ‘요술지팡이’를 샀는데 그때부터 제 인생은 완전히 변했지요. - ’자기 성기 긍정하기’야말로 남녀관계에 있어서 하나의 축복입니다. 당신이 준 자위의 축복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제 몸이 열릴 뿐 아니라 저의 마음과 창의력도 활짝 열리는 경험이었습니다. (중략) 제가 남자들을 필요로 했던 이유는 ‘긴장 해소’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름다움, 공동체 의식, 친밀감 등을 공유하고 싶은 욕구 떄문이었습니다. 자위를 통해 저 역시 ‘자유’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 새 애인이 생겼는데, 제가 너무 대담해져서 저 자신도 놀랄 지경입니다. 그 사람도 바이브레이터를 무척 좋아하게 됐어요. - 이제 거짓으로 오르가슴 연기를 하지 않게 되어 너무 행복합니다. 그 동안 오르가슴 연기를 멋지게 해왔던 제가 부끄럽습니다. 베티 도슨의 [네 방에 아마존을 키워라]
현대의 바이브레이터는 안전하고 유용한 섹스 메이트의 위치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 디자인과 기능의 발전과 신소재의 개발로 다양한 바이브레이터가 출시되어 대중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얼마 전 접선특위 게시판에서 재미있는 바이브레이터를 소개하는 글을 읽었는데, ‘OhMiBod’라는 제품은 MP3 플레이어에 연결하여 음악의 리듬에 따라 진동이 변하면서 다양한 자극을 준다고 한다. 음악과 함께 즐기는 바이브라니, 과학기술이 이보다 더 미적이고 감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 적이 있었던가 하는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관련정보 : http://www.ohmibod.com
남성용 바이브레이터 앞에서는 여성용 바이브레이터에 대한 이야기만을 했지만 바이브레이터는 남성에게도 유용한 물건이다. 자연주의자로 유명한 존 뮈어(John Muir 1838-1914)는 1899년 남성용 바이브레이터로 특허를 받았다. 남성이 바이브레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여성의 활용법 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거나 두통을 완화시키기 위한 마사지(^^)뿐 아니라, 유두와 음경, 고환 등의 성감대를 자극하거나 전립선과 애널과 같은 미개척지를 개발해보는 것은 어떨까? “바이브레이터 따위 쓰지 않아도 만족스럽게 섹스하고 있다.”고 말하는 남성에게 “바이브는 트렌드입니다.”라는 식의 대답을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도전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섬세한 쾌락이 당신의 몸 속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포르노 무성영화의 한 장면.
1930년대에도 바이브레이터를 이용하여 성감을 개발하는 남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자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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