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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선진명랑사회 프랑스 - 국제 명랑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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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Basic Instinct] 이제 명랑도 국제화 시대다. 한국에서 이미 2004년 한 해 동안 국제 결혼한 커플이 전체 결혼 커플의 11%를 넘겼단다. 단일민족이라는 확인된 적 없는 이념에 경도되어 여전히 순수 혈통을 중시하는 분위기에서는 놀라운 수치다. 더구나 이는 전년에 비해 38%나 증가한 수치라니 앞으로도 명랑과 결합의 국제화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듯 하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프랑스인들은 애초부터 짬뽕이었다. 그들은 '골족'이라고 하여 로마제국 시대에 로마인들이 '갈루아 지방'이라고 부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을 그들의 조상이라 믿고 있다. 이 지역을 정복하려 한 시저의 로마제국에 맞선 아스테릭스와 그의 친구 오벨릭스의 무용담을 그린 국민만화 '아스테릭스'가 그 믿음을 좀더 그럴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당시 갈루아 지방은 현재 프랑스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지역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100년 전쟁이 끝나는 15세기 중반까지 대부분의 시기 동안 프랑스는 동서남북으로 갈기갈기 뜯기고 가운데 지역만 남은 보잘 것 없는 왕국이었을 뿐이다. 영화 <아스테릭스 : 미션 올림픽 게임> -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 이참에 공부 좀 해보자.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프랑스 역사'를 한번 검색해 보시라. BC 58년부터 카이사르의 로마군(軍)이 갈리아 지방을 정복하기 시작하였고, 베르킹 게토릭스의 반란(BC 52)도 보람 없이 그들에게 굴복하였다. 그 결과 로마화된 갈리아가 이루어 낸 것이 '갈로로망 문화'이다. 중략 3세기 중엽, 게르만인(人)의 부족 중 하나인 프랑크족(族)이 갈리아 지방을 침입하기 시작하였다. 5세기가 되자 반달, 수에비, 알란 등 여러 종족이 이주해 왔고 서(西)고트는 툴루즈에 왕국을 건설하였으며, 부르군트도 알자스로부터 론강(江), 손강(江) 유역으로 진출하였다. 프랑크의 살리 지족(支族)이 북동부에 침입하여(427) 로마의 동맹군으로서 세력을 신장하였다. 중략 9세기부터는 노르만인(人)의 침략이 활발해졌으며, 한때 파리가 위험한 지경에 빠지기도 하였다. 이 무렵에는 지방 호족에 의한 봉건적 분권주의가 점차 진전되어 카롤링거 왕조는 쇠퇴하였으며, 카를 3세(肥滿王) 대신 파리백(伯) 외드(재위 888∼898)가 왕위에 올라 로베르 왕조(외드의 아버지인 로베르 르 폴의 이름에서 유래)가 성립되었다. 이후 10세기 말에 이를 때까지 로베르와 카롤링거 왕조는 북(北)프랑스의 지배를 둘러싸고 분쟁을 계속하였다. 외드의 동생의 손자인 위그 카페는 마침내 987년 카페왕조를 창시하고 프랑스 왕이 되었다. 여기서 프랑크 왕국이 멸망하고 프랑스의 역사가 시작된다. 중략 1328년 샤를 4세가 사망함에 따라 직계 카페 왕조는 단절되고 필리프 4세의 조카 발루아백(伯) 필리프 6세가 발루아 왕조를 창시하였다. 그러나 영국 왕 에드워드 3세(필리프 4세의 딸 이사벨라와 에드워드 2세의 아들)가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프랑스로 침입하였기 때문에 백년전쟁(1337∼1453)이 시작되었다. 그들이 조상이라고 공식적으로 규정한 골족 자체가 이미 로마제국에 정복당해 로마화되었을 뿐 아니라, 게르만(프랑크), 반달, 수에비, 알란, 고트, 부르군트, 노르만, 영국에 이르기까지 온갖 주변 잡족들이 지금의 프랑스 지역으로 이주해왔거나 정복했던 것이다. 그러니 프랑스인들은 그 역사의 시작부터 엄청난 혼혈이었다. 19세기 이후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에서 데려온 노예들이나 더 나중에 식민지였던 지역에서 온 이주민들은 비교적 최근에 섞인 것이라 대체로 구분이 가능하니 신경 쓰지 않더라도 말이다. 참고로 이들이 소위 다양성을 중시하게 된 가장 큰 이유도 오래 전부터 다양한 족속이 섞여 살아온 역사로 인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측면이 크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이처럼 애초부터 짬뽕이니, 순수한 프랑스인이 아닌 외국인은 프랑스를 떠나야 한다는 둥 어쩌고 씨부리는 극우파 르팬은 거의 미친놈 취급을 당할 수 밖에 없다. 도대체 누가 순수한 프랑스인이란 말인가? 프랑스 축구 국가 대표팀을 보면 가장 쉽고 상징적으로 상황 파악이 될꺼다. 그동안 프랑스를 대표하는 축구팀의 앙리, 트레제게, 시쎄, 고부, 윌토르, 비에라, 튀람, 말켈레레, 붐송, 말루다 등 잘나가는 선수들은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중부 아프리카 계통의 이민 2,3세들이거나 그들과 살짝 섞였을 법한 흑인이 태반이다. 출처 - MBC 이들을 제외하고 백인처럼 보이는 선수 중에도 '순수 프랑스인'이라고 할 만한 선수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국민영웅 지단은 알제리 출신이고, 사뇰은 스페인계 성이며 지울리의 이름인 루도비치도 프랑스 이름이 아니다. 그나마 골키퍼만 거의 유일하게 바르테즈에서 꾸뻬로 이어지는 꾸준한 '순수 프랑스혈통 포지션(?)'이라고 할수 있으려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프랑스에서 국제 커플이나 국제 결혼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한 편이다. 원래부터 짬뽕이니 어찌 피가 섞이는걸 두려워 하랴. 부모나 조부모 중 한 두명이 다른 유럽인인 경우는 허다하고, 북아프리카 아랍권이나 중부 아프리카 출신인 경우도 자주 눈에 띈다. 그러니 웬만하면 프랑스인에게 근본을 묻지 않는 편이 좋다. 잘못 걸리면 복잡한 가계도에 대한 설명을 장시간 들어야 할지도 모르니까. 여기서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경향이 프랑스 남자들의 극동 지역 출신 여성에 대한 관심이다. 물론 이전부터 과거 식민지였던 베트남을 비롯한 인도차이나반도 출신과의 결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 중, 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여성에 대한 관심은 새로운 것이다. 영화 <와호장룡> 우선 단적으로 말하면, <와호장룡> 류의 영화를 통해 동양의 전통문화가 다소 신비주의적인 색채로 포장되어 소개되면서 그들의 동양여성에 대한 이국적인 판타지를 크게 자극했다고 본다.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은 2000년 프랑스 개봉 당시 대박을 터뜨리는데 그치지 않고, 이후 불법 씨디로 구워져서 마치 우리 어릴 적 친한 친구들끼리 포르노영화를 돌려보듯 몇 년간 귀중한 자료처럼 프랑스 애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돌았던 것이다. 그래서 얼마 후 한국영화 '무사'가 프랑스 전역에 개봉될 때도 전면에 내 걸었던 포스터엔 어김없이 'La princesse du désert, 사막의 공주'라는 타이틀과 함께 장쯔이가 맨 앞에 떡 버티고 있었다.) 영화 <무사> - 프랑스 개봉 당시 포스터
특히 체구가 아담하고 조용하며 상냥하고 심지어 순종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동양여성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는 비교적 드세고 때로는 히스테릭하기까지 한 프랑스 여성에 지친 프랑스 남성들의 관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같은 다른 동양계와 비교해서 일본이나 한국은 경제적인 여유도 있는 편이라 촌스럽지도 않다나.
특히 그 폭발적인 관심의 출발은 사실 일본인데, 프랑스와 일본의 관계는 19세기 일본의 개항 이후부터 활발히 이어져왔고 일본인들의 성격이 조용하면서도 돈은 잘 쓰고 가기 때문에 프랑스인들에게 인지도가 높으며 인식도 아주 좋다.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프랑스 애들도 많아서 처음에는 언어 교환을 빙자해서 만나다가 나중에 명랑하게 사귀는 단계로 가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그리고 이런 일본에 대한 관심은 이들에겐 일본이나 거의 비슷한 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로 인식되었던 한국으로까지 연결된다. 실제로 여기서 한국학을 전공하고 있는 한국파 프랑스인들 대부분이 처음에는 일본이나 중국, 심지어 몽골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한국을 경험하게 되면서 관심이 이동한 경우이다. 최근 몇 년간 한국 경제의 성장과 더불어 영화를 위시한 다양한 문화 상품의 유입, 그리고 폭발적으로 늘어난 유학생들로 인지도가 커지면서 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기회는 더욱더 늘어났다. 최근 늘어난 프랑스 내 한불커플의 실태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확실히 디벼보기로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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