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메리칸파이]
고1 겨울 때의 이야기다.
첫 자위를 한 경위 정도라고 보면 무방한데, 끓어오르는 기운과 욕정만으로는 어디에 내 놓아도 뒤지지 않았지만. 아다를 땐 뒤에도 난 사실 자위하는 법을 몰랐다.
자위행위라는 것은 유치원 때부터 계속 해오긴 했다. 고추라기보다는 그냥 달려있는 조그마한 풋고추를 가지고 있을 때부터 나는 어딘가에 계속 비벼댔다.
그대로 커서 2차 성징이 시작되어 중학생이 된 나는 발기되어 불붙은 고추를 사방에 비벼대기 시작했다. 책상 모서리부터, 소파 팔걸이, 배게, 인형, 뜨거워진 TV 등 그냥 기분 좋은 발정난 개처럼 막 비비기 시작했다.
무턱대고 자지를 대고 비비기만 하니 당연히 사정이 될 리 없었고, 헐어서 따가운 자지에 에O로반 연고는 생필품이 되어갔고, 새벽부터 흥건한 기분으로 눈비비고 일어나 울며 속옷을 빠는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몇 년 후,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남고의 흔한 기 싸움과 먼지와 땀내 얽힌 서열정리 후에 꽃핀 우정이 결실을 맺었을 때, 남자들의 진지한 욕망에 대한 이야기와 야동을 서로 보급하는 일들을 가능케 했다. 음란물이라는 것을 살며 접해보긴 했지만, 나는 처음 정식으로 받은 내 소유의 포르노 CD를 설레는 마음으로 컴퓨터에 넣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질 떨어지는 허접한 몰래카메라 류의 야동이었는데, 그 당시 나는 그 자료를 종교처럼 모셨던 것 같다.
무튼 속살 좀 많고 머리 길기만 하면 벌떡 일어나는 자지를 가지고 있을 때였다. 모든 것이 자극이었고, 그 자극이 터질 것만 같을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어딘가에 비벼대는 것뿐이었다.
마치 자지가 “뭐하냐?” 라고 물으며 팍 죽는 일로 야동 관람은 계속 끝났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뭐?!”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경악했다. 자위는 손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쥐고...”
한 친구는 공기를 가볍게 잡으며 흔드는 시범을 보였다.
“아~거 새끼들 존나 답답하네.”
한 친구는 본인의 검보라색 자지를 꺼내 놓다가 나머지 친구들의 야유와 함께 구타를 당했다.
나는 학교가 끝난 후 곧장 야동을 켜고 교복 바지를 훌러덩 벗어 던지고 심기일전 하며 어색한 손으로 내 뿔을 만졌다.
이리도 만져보고 저리도 만져보고 해도 별 감흥이 없었다. 급기야 답답해진 나는 지식인에 검색해도 보았는데, ‘자위법’, ‘딸딸이’ ‘고추비빔’ 비슷한 검색어 무엇 하나 청소년 검색 금지에 해당됐다.
“어휴잇-!!!”
나는 마우스를 번쩍 들어 내동댕이쳤다.
“무슨 일이니?”
큰 소리가 나자 걱정되어 들어온 어머니에게 “별일 아니야.” 라고 대답하며 하늘색 삼각팬티만 입은 채로 침대 위에 앉아 얼굴을 가리며 울었다.
그 후, 나는 좌절감에 굴복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나는 계속 연습했다. 집에 찾아온 친구들의 조언과 응원을 받으며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지팡이를 깎는 노인처럼 자지를 깎는 심정으로 고추를 주물럭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팔이 저려옴보다 먼저 전립선에 처음으로 울렁거리는 짜릿함이 느껴지고, 나는 손맛을 느끼며 접신한 기타리스트처럼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내 자지에서 탁하고 하얀 정액이 샴페인 거품처럼 뿜어져 나왔고, 나는 환희에 젖은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며 한참 동안 쏟아지는 감동을 곱씹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입김을 요동치며 학교로 달려 친구들을 불렀다. 나의 굳은 눈빛은 많은 것을 이야기 해주었고 친구들은 축하한다는 말 대신 낮은 책상을 넘어 달려와 뜨거운 포옹을 한참을 대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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