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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다이어리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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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닥터 이방인]

어느 진부한 노래의 가사처럼, 정말 꿈 만 같은, 아니 꿀 만 같은 달콤한 시간들이 흘러갔다. 무심코 바라본 창 밖에도, 아무렇지 않게 부는 바람들 사이에도 그녀의 얼굴이 아른아른 거리는 하루하루가 바쁘게 달렸다. 
 
내가 그녀가 하는 일의 분야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녀는 정말이지 승승 장구하고 있었다. 굴지의 기업들을 거친 그녀의 커리어가, 전도 유망한 신생 스타트 업 회사에서 꽃을 피우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이직한 업계에서도 꾸준히 스카우트 제의를 받으며, 남자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꽃길을 걷고 있었다. 
 
나도 그녀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업계에 발을 들인 이후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었다. 물론 메이저 기획사에 내 곡을 팔거나 혹은 나에게 의뢰가 오는 경우는 없었지만 이미 나와 오랜 시간 작업한 뮤지션들이 양지로 진출하면서 덩달아 내가 쓴 곡들도 차트에 심심찮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자기는 왜 음악을 시작했어?”
 
언젠가 리즈가 그렇게 내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자신이 제일 잘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게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럼 음악이 가장 자신있어?”
“아니.”
“뭐야 그게.”
“근데 그거보다 더 행복한 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거라고 믿거든. 그래서 선택했어. 물론 돈은 많이 벌고 있지 못하지만.”
 
내 말에 리즈는 말 없이 안아주었다. 그 포옹이 그 어떤 격려의 말보다 더 나를 힘이 나게 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쨌든, 절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우리 둘의 연애는 시작되었다. 물론 난 여전히 그녀를 보면 얼어 붙었고, 조리 있게 잘 말을 하지 못했으며, 프레젠테이션을 앞둔 사람처럼 긴장을 하는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다행인 것은 짝사랑을 할 때처럼 바보 같은 행동을 해서 답답함을 불러 일으키지는 않았다. 모든 게 그녀의 덕이겠지만. 
 
나는 그녀와 사귀기 시작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 비싸지 않은 차를 한 대 샀다. 나도 바빠지기 시작하면서 이동 동선이 늘어났고, 조금은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지 말고 차를 하나 사지 그러냐?”
 
어느 날, 매번 작업실과 집, 그리고 그녀의 회사 앞을 왔다갔다 하는 나를 보며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이야기를 한 것도 결심에 한 몫 했다. 좋은 차에 대한 로망이나 관심이 전혀 없는 나는, 그냥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차를 샀다. 힙합 뮤지션들이 멋진 차를 뽑아 가사에서 자랑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런 것들에 별로 공감을 하지 못했다. 
 
차가 생기니 리즈의 회사에 갈 때 조금 더 편하긴 했다. 다만 차가 있다고 해서 그녀가 한가해 지는 것은 아니니까 데이트의 빈도가 늘어난 것은 아니었을 뿐이었다. 
 
연애를 시작하고 나니까 나도 짝사랑 시절에 밥 먹듯 했던 답답한 행동들을 하지 않게 되었다. 예고 없이 그녀의 회사를 찾아가는 것이 때로는 서프라이즈가 될 수 있지만 아주 가끔은 여자에게 있어서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리즈는 자신이 생각했을 때 별로 자신이 별로 예쁘지 않은 날에 나를 보는 것을 싫어했다. 물론 내 눈에는 다 예뻐 보였지만 자신만 아는 그런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연락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한마디라도 그녀와 더 해보려고 의미 없는 말을 하거나 억지로 말을 걸거나 했지만, 그녀가 일에 치여 겨우 퇴근했을 때는 혼자서 TV를 보거나, 누워서 쉴 시간을 주기 위해 자주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처럼 답답했던 연애고자도 이제 상대의 리액션을 보고 행동을 조절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정말 한마디로 장족의 발전이었다. 
 
-보고 싶어- 
 
-난 자기랑 지금 당장 하고 싶어-
 
자주 만나지 못 하다 보니 우리 채팅창은 일상적인 얘기를 하다 가도 금방 뜨거워졌다. 분명히 그녀가 오늘 해야 할 미팅에 대해서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덧 우리 대화는 후방주의를 해야 할 정도의 수위에 이르고 있었다. 
 
-자기야 나 가슴 커졌어- 
 
리즈는 언제 찍었는지, 란제리 차림의 셀카를 내게 보냈다. 보는 순간 쿵 하고 내려 앉는 느낌이 들며 호흡이 거칠어졌다. 바지가 불룩해져 일상생활이 도저히 안될 것 같으면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그녀와 톡을 했다. 
 
-나는 너 목 깨물고 싶어- 
 
이미 대화는 폰섹의 수준을 넘어갔다. 아마 [톡섹]이라는 장르가 있다면 우리가 매일 하는 대화의 일부분일 것이다. 나는 황급히 그녀를 만나야 할 변명거리를 찾았다. 
 
-자기야. 나 이따가 잠깐 자기 회사 가도 돼?-
 
-몇 시?-
 
-한 네 시 쯤-
 
-네시 반부터 미팅인데 아주 잠깐도 괜찮아?-
 
-응. 오분이라도 좋아.- 
 
-응. 근데 갑자기 왜?-
 
-줄게 있어서.-
 
-^^ 알겠어-
 
이제 곧 겨울이라, 그녀가 사무실에서 쓸 발열방석을 사두고 주지 못했던 것이 생각났다. 거창한 선물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볼 때마다 난 늘 리즈 생각이 났다. 귀여운 인형을 보면 리즈가 좋아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고 하다못해 사무용품을 보더라도 리즈에게 사다 줄 생각을 하며 여기 저기 기웃거렸다. 그래, 이 거 주러 왔다는 핑계로 한 번이라도 리즈를 보고 와야지. 
 
나는 신이 나서 준비를 하고, 그녀에게 줄 그것을 쇼핑백에 넣었다. 본 지 일주일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마치 한 달 정도는 떨어져 있었던 것 만 같은 기분이었다. 요즘 들어 부쩍 거울 앞에 서 있는 시간이 늘어난 내 자신에 대해 인지도 못한 채로, 나는 서둘러 차를 몰고 그녀의 회사로 향했다. 
 
리즈의 회사는 번화가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주 다행히도 건물에 지하 주차장이 있다는 사실은 차를 사고 나서야 알았다. 늘 버스에서 내려서 그녀의 회사 로비에 있는 의자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했었는데……예전에 처음 다이어리를 가져다 줬었던 기억이 나자 웃음이 나왔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인데도, 지금과 너무나 다른 모습의 우리 둘의 모습이 기억나서 미소가 지어졌다. 
 
-나 지하 4층에 도착했어. 엘리베이터 출입문 나와서 오른쪽.- 
 
도착하자마자 가슴이 뛰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아직도 내 가슴은 처음 그녀에게 다이어리를 건내 줬었던 그 시간에 멈춰 있는 건인지, 아니면 그녀가 내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 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 
 
-지금 내려가용~-
 
그녀의 톡에 나는 물로 목을 축이며 진정하려 애썼다. 하지만 역시나 그녀가 주차장의 어둠속에서 모습을 보이며 환하게 웃을 때 또 몸이 흐물흐물 녹아 내리는 듯 힘이 풀리고 말았다. 
 
“잠깐 차에 탈까?”
 
“응!”
 
그녀가 내 옆자리에 타자마자 내 목을 끌어 안고 안겼다. 마치 둘 만의 공간에 있는 것처럼,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입술로 달려 들어 키스를 했다. 리즈가 내 볼을 양 손으로 감싸고 어루만져 주었고, 나는 몸을 옆으로 틀어 그녀를 끌어 안았다. 약간 숨을 할딱 거리는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보고 싶었어.”
 
그녀의 말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나는 대답대신 또 그녀에게 키스를 했고, 그녀는 내 키스를 부드럽게 받아 주었다. 
 
“근데 있잖아. 사귀기 전에도 키스는 했었는데.”
“응?”
 
내가 입을 열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아 귀여워.
 
“사귀기 전에는 이렇게 까지 키스를 열정적으로 안 해줬던 것 같은데.”
“응 맞아. 알고 있네?”
“키스를 안 좋아해?”
“그럴리가. 엄청 좋아하지. 내가 안 좋아하는 스킨십이 어딨어.”
“근데 왜 예전에는 조금 소극적인 키스였어?”
 
물론 그 때는 몰랐다. 키스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지금 만큼 열정적이고 딥한 키스가 아니었을 뿐, 그녀는 나와 사귀기 전에도 키스를 해주기는 했었으니까. 그런데 사귀고 나서의 키스는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진하고 깊었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게 있어. 마음을 주고 안 주고의 차이랄까.”
 
“에이. 그게 뭐야.”
“자기는 몰라도 돼.”
 
그녀는 내 말에 혀를 삐죽 내밀며 말하더니, 기습적으로 내 가랑이사이에 손을 가져갔다. 내가 화들짝 놀라자 내 귀에다가 대고 속삭였다.
 
“근데 얘는 또 벌써 왜 이래?”
“아니 그게……윽……”
 
나는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리즈가 지퍼까지 내리고는 손으로 부드럽게 그것을 어루만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그것 뿐이라면 모르겠는데, 이번에는 내 손을 잡아 자기 가슴쪽으로 이끌었다. 
 
“되게 커졌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호흡이 벅찰 정도로 차오른 흥분을 가라앉히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냥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리즈는 그런 내가 귀엽다는 듯 또 아랫입술을 빨 듯이 키스를 해주었다. 내 손에 가득 찬 그녀의 부드러운 가슴 감촉을 느끼면서, 우리는 간헐적으로 사람이 지나가는 그 지하주차장에 한참이나 딱 붙어서 서로를 탐닉했다. 
 
“여기서 빨아줄까?”
 
나는 속삭이는 리즈의 말에 갑자기 말문과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것이 느껴졌다. 하마터면 응! 이라고 대답할 뻔했다. 
 
“아, 안돼.”
“왜?”
“여긴 자기 회사잖아.”
“안 보이지 않을까?”
 
라고 말을 하면서도 그녀는 여전히 부풀어 오른 내 앞섬을 쓰다듬고 있었다. 정신줄을 놓아 버릴 것만 같았다. 
 
“아, 아냐 보일거야.”
“고개 숙이니까 괜찮을 거 같은데에~자기꺼 빨고 싶은데”
 
이 여자는 마녀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으로.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그녀를 끌고 가서 마음껏 끌어안고 싶은 심정이었다. 키스를 하는 우리 호흡이 누가봐도 위험할 정도로 거칠어졌다. 끼이익! 하고 주차장 바닥면과 바퀴가 마찰하는 소리들이 귓가 저 멀리 들려왔지만 내 손은 그녀의 니트 안으로 파고들어 말랑말랑한 가슴의 감촉을 마음껏 느끼고 있었다. 리즈는 내 귀에 대고 희미하게 신음을 하며, 중간중간 내 목에 입을 맞춰 주거나 볼을 비벼주거나 했다. 우리는 사귀기 전부터 섹스를 했지만, 우리의 스킨십에 사랑이 가미되기 시작하니까 리즈의 스킨십이 훨씬 더 농밀해졌다. 
 
“어떡하지? 나 이제 곧 미팅인데.”
“응…괜찮아.”
 
말만 괜찮다고 했지 나는 여전히 그녀를 안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그녀가 웃었다. 그제서야 오늘 그녀에게 주려고 했던 것이 생각나 뒷좌석으로 팔을 뻗어 쇼핑백을 내밀었다. 
 
“이게 뭐야?”
“아니 뭐 별 거는 아니고 그냥……이제 겨울인데……”
“방석? 귀엽다!”
“그게 뭐 그냥 여자는 몸이 따뜻해야 한다고 어디서 들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내 목을 끌어 안아 주었다. 저런 사소한 선물에도 고마워 해주는 그녀가 오히려 내가 더 고마웠다. 마음 같아서는 뭐든지 다 사서 주고만 싶은데……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흐트러진 옷을 추스리더니 내게 말했다. 
 
“아 맞다. 자기야 나 할 말 있어.”
“뭔데?”
“이번주 금요일에 뭐해?”
“금요일? 글쎄 뭐 없는데……”
“토요일은?”
“토요일도 없는데.”
“그럼 나랑 같이 여행가자.”
“응?”
 
그녀의 제안에 내가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그녀는 싱글 거리는 미소로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어디로?”
“아무데나.”
“아무데나?”
“장소가 뭐가 중요해. 같이 일박을 하는 게 중요하지.”
 
생각 같아서는 차문을 열고 나가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입가를 씰룩거리는 내 모습을 보며 리즈가 웃었다. 내가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건지, 그녀가 눈치가 빠른 건지 이제는 도무지 모르겠다. 
 
“나 동생이랑 같이 사는 건 알지?”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독립을 해서 살고 있지만, 그녀의 동생과 같이 산다고 첫 만남때도 이야기해 주었으니까. 
 
“사실 평소라면 외박은 어림도 없어. 걔가 내 감시역이거든. 근데 이번주 금요일에 출장을 간다고 하더라고. 절호의 기회잖아.”
 
사랑스러운 표정의 그녀를 보며 나는 그냥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녀와 1초라도 더 있고 싶어하는 나에게 이보다 더 큰 선물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럼 이번주 금요일에 나 일 끝나고 같이 가는 거다! 이만 올라가 볼게.”
“응!”
 
그녀는 나를 마지막으로 껴안고 사랑해! 라고 속삭였다. 내가 ‘나도 사랑해’ 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녀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 날 기대해. 반 죽여줄게.”


마지막 15화에서 계속..

글쓴이 카린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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