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쩨쩨한 로맨스>
우리 남편은 TV를 볼때 항상 내 손과 발을 주물러준다. 누가 들으면 '되게 자상한 남편이네. 근데 우리 남편은 어떻게 된거야? 니미~'하겠지만, 내 남편이라고 원래 그랬던 건 아니다. 모든 것은 다 나의 뛰어난 애교와 처세술~ 덕분이다. 오호호호홋~
남편은 스포츠 채널 보는 걸 좋아한다. 그에 반해, 나는 월드컵 때도 졸고 있던 사람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한 잠 때리고(밤에 술 장사를 하던 남편이었던지라 거의 아침에 들어오던 시절이 있었다.) 여가 시간이 생기면, 남편은 항상 사선으로 누워 멍하게 TV 를 본다. 그것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스포츠 채널을.
처음엔 왜 나랑 안 놀아주고, 사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데 축구 경기를 보느냐고 바락바락 따졌다. 남편의 입장에선 하루에 몇 시간 안 되는 휴식 시간인데 계속 옆에서 보채는 부인이 짜증나기도 하겠지만, 하루 종일 사랑하는 사람과의 오붓한 시간을 기다리던 나로서는 남편의 작태가 무척 섭섭한 따름이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긴 하는 거야?"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대사를 아무리 읊어보아도, 그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TV에 고정되어 움직일 줄 몰랐다.
나는 그런 남편을 귀찮게 굴고자 한 가지 제안을 하기에 이르렀다. "좋아. 그럼.... 대신 내 발 주무르면서 봐."
옆에서 칭얼대는 소리가 귀찮았던 남편은 어쩔 수 없이 내 발을 주무르기 시작했고, 나는 느긋하게 독서를 즐기며 남편의 시원한 마사지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마사지는 전염성이 있다. 주무르면 주무를 수록 찌뿌둥한 곳이 생긴다. 가려운 곳을 긁으면 그 옆에도 가렵고 그 위도 가려운 것 같고 뭐 그런 이치다. 해 주는 사람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발에서 시작한 마사지가 종아리로, 허벅지로, 손끝에서 팔로, 가슴으로, 엉덩이로 종횡무진 전신 마사지로 발전하게 된다.
덕분에 안 할 거시기도 한 번이라도 더 하게 되고 자연스러운 스킨십의 결과로, 옥시토신이 분비되면서 부부간 친밀감과 사랑도 한층 깊어가는 것이다. 강요로 시작된 마사지가 이제는 스포츠 채널을 봐도 되겠냐는 사려 깊은 질문으로, 부부 싸움 후 화해의 액션으로, 한 판 하고 싶다는 떡 신호로, 오늘 하루 수고 많았다는 위로의 표시로 다양하게 사용된다. 남편의 손길에 중독된 나로서는 언제나 OK! 아무리 열이 받아 있어도 마음의 사르르르르르 녹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아마 싸움도 조금은 덜 하게 되지 않나 싶다.
더 이상 친밀감을 느끼지 못 하는 관계로 이혼을 고려하는 부부가 있다면 마지막 노력으로 가볍게 발을 주물러 줘 보시는 건 어떨지? 내가 주물러 주기 싫으면 해달라고 졸라 보시기라도 하든가.
지금 남편은 영화를 보며 사선으로 누워있다. 이제 내가 옆에 앉으니 슬쩍 손을 내밀면 거의 무의식적으로 마사지를 시작한다. 오호호호호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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