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토리_RED > 전문가 섹스칼럼
프랑스 대표 작가 모파상의 섹스 편력  
0

영화 <벨아미>
 
19세기 후반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모파상은 <여자의 일생>이라는 역사적 걸작을 남겼다. 그의 작품에는 유달리 성격이 괴팍하고 염세주의적인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이유를 그의 불우한 유년기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모파상이 11살이 됐을 때 부모는 별거하기 시작했고,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때부터 신경질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그녀가 얼마나 남편을 얼마나 미워했는지 '남편'이라는 존재에 경멸감을 품은 나머지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12세에 처음으로 자위를 했다고 고백했던 모파상은 16세 때, 첫 경험을 한 뒤 섹스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특히 여성의 허리 촉감이나 신음 소리를 잊지 못해 수시로 창녀촌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유명해진 뒤에는 젊고 돈 많은 사교계 여자들을 상대했는데, 유부녀와 유태계 여성을 특별히 좋아했다. 대개의 경우 모파상은 한 명의 여성을 두 번 이상 찾는 일이 드물었으나, 오랫동안 관계를 가진 사람도 몇 명 있었다. 그녀들은 모두 유부녀들이었으며, 젊고 돈 많은 마리 킹과의 정사는 8년이나 계속됐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힌 적이 잇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자는 공상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미지의 여성이다. 관능적이지만 자제심이 있고 정열적이면서도 조금 들떠 있는 여자라야 한다. 이런 여자를 찾아내는 것이 인생의 일대 모험이며 전부다."
 
그렇지만 그는 화려한 섹스 편력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매독 때문에 평생 편두통에 시달렸던 것이다. 고통을 잊기 위해 술과 모르핀을 비롯하여 코카인 등에 빠져 들었으나 치료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매독으로 인해 오른쪽 눈의 시력 장애를 겪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권총 사격 연습으로 시력 감각을 조절했다. 스포츠를 좋아했던 그였지만 30대에 접어들자 극도로 쇠약해졌고, 여러 차례 자살을 기도하다 정신병원에서 42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그의 섹스 과잉은 아버지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된 것이 었을까? 이제는 확인할 수 없는 역사가 되었지만 섹스가 단순히 쾌락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재영 원장
퍼스트 비뇨기과 원장
ISSM(세계성의학회) 정회원 / KBS, MBC, SBS 방송 다수 출연
http://www.firstclinic.co.kr
 
· 주요태그 섹스칼럼  
· 연관 / 추천 콘텐츠
 
    
- 글쓴이에게 뱃지 1개당 70캐쉬가 적립됩니다.
클리핑하기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