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레드 호세이니의 [그리고 산이 울렸다]란 책엔 진취적이고 대담한 ‘닐라’라는 여성이 나온다. 그녀는 ‘아무 남자하고나 자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성적인 존재로 여자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싫어’서 원하는 남자하고는 꼭 섹스를 하고 마는 아름다운 여성이다. 왜 여성은 ‘사랑’하는 남성과 그리고 세상이 둘 사이의 관계를 인정한 남자(남자친구, 배우자와 같은)랑만 자야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생각해보면 나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그런데 내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나도 한 때 ‘사랑하는 사람’과만 섹스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생각이 왜 박혔는지, 언제부터 주입받았는지 정확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냥 원래 그렇게 해야 한다고 했으니깐 당연히 그래야 하는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이 부분은 첫 경험에게 민감하게 작용했다. 지금도 첫 경험은 사랑하는 이와 해야 한다는 생각은 크게 변함이 없다.
이런 나의 고정관념에 가장 큰 파동을 제공한 것은 내 친구 ‘부디’이다. 부디는 굉장히 자유로운 섹스 사고를 가지고 있다. 아직도 유교적 전통을 숭상하는 역사 교육자인 어머니와 보수를 신봉하는 경찰이신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녀가 어떻게 해서 그런 사고를 가지게 됐는지는 그녀 자신도 알지 못했다.
부디와 나는 그녀가 21살 때, 내가 20살 때 만났다. 당시 나는 이미 17살 때 첫사랑과 첫 경험을 끝낸 처녀가 아닌 상태였고 그녀는 처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처녀였다. 처녀의 왕성한 호기심으로 인해 우린 섹스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녀는 기회만 된다면 빨리 하고 싶다며 아직 성적 욕망을 불타오르게 하는 남자를 만나지 못해 처녀를 유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첫 경험은 그래도 사랑하는 남자와 하라며 충고했었다. 부디는 ‘왜?’라고 반문했다. 그녀는 인간의 3대 욕망이 수면욕, 식욕, 성욕인데 왜 성욕에게만 사랑을 결부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잠을 자고 싶어서 자고, 배고파서 음식을 섭취하는 것 일 뿐 수면을 사랑하지 않는 이도 수면은 해야 하고, 음식 섭취를 사랑하지 않는 이도 밥을 먹어야 하듯 섹스도 하고 싶으면 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철학이었다.
20살 당시의 나는 그녀의 의견에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못했다. 그녀는 말을 덧붙였다. 남자들의 첫 경험은 창녀촌에 가서도 숫총각 딱지를 떼듯 오히려 동정이 치부가 되는 사회에서 왜 여성의 순결만이 중요시 여겨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순결이란 말도 여성에게 가해진 더러운 언어폭력이라며 섹스를 한 여성은 순결하지 않는 여성이냐며 반문했다. 들어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한국 사회는 이게 문제라며 여성도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라면서 그녀는 혀를 끌끌 찼다. 너도 왠지 모르면서 그냥 주입 당한 거야. 나는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사랑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그 감정에 대해서 가볍게 여기는 것도 아니야.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타인과 섹스를 한다면 비난 받아야 마땅하지만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유의 섹스를 즐기는 건 비난의 대상이 아니지.
그런 그녀는 어느 날, 파티의 성지라 불리는 이비자 섬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곤 섹시한 몸을 가지고 있는 영국 축구 선수를 만났다. 거친 영국 발음이 그녀를 말 그대로 꼴리게 했다. 함께 춤을 추고 칵테일을 마시고 키스를 했을 때 그의 혀놀림은 거침이 없었다.
그와 부디는 손을 잡고 이비자 해변을 걷다가 다시 한 번 농도 깊은 진한 키스를 하고 해변가 잡상인에게 5유로(한화 약 7천원)란 거금을 주고 콘돔을 샀다. 콘돔까지 사자 그녀는 섹스할 모든 준비를 맞췄다고 생각했다. 이미 젖을 대로 젖은 그녀에게 해변가에 몰려오는 파도처럼 성욕이 밀려왔고, 까슬한 모래와 칸막이 하나 없는 텅 빈 바다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등에 모래가 닿는 게 싫었던 부디는 과감히 그를 눕히고 여성 상위 체위를 시도했는데 그녀의 어설픈 움직임이 그를 더 자극했는지 아래에서 그는 허리를 정말 있는 힘껏 튕겼다. 그녀는 처음 맞보는 고통과 뒤섞인 쾌락에 정신을 못 차렸는데 그 순간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어보니 어떤 노인이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타인의 시선 때문에 더 달아오른 그녀는 더 과감하게 허리를 튕겼고 자신의 큰 가슴을 출렁였다. 그녀 밑에 깔린 남자는 거친 숨소리와 거친 말들을 마구 내뱉었다. 절정에 이르려고 하자 그는 그녀의 한 쪽 다리를 앞으로 쭉 뻗으라고 했고 그의 위에 M자 자세로 앉아있던 그녀는 왼쪽 다리는 그대로 유지한 채 오른 다리를 그의 옆구리 옆으로 쭉 뻗었다.
그는 그녀의 골반을 잡고는 살짝 그녀를 든 다음 팔과 허벅지 힘으로 그녀를 자신의 아래로 향하게 했다. 그리곤 앞으로 뻗어있던 다리를 하늘로 향하게 위로 들어 올려 땀과 흥분으로 번들거리는 그녀의 다리를 쓰다듬고 강렬한 키스를 내뿜었다.
See that? 남자가 허리를 치켜 올리다가 그녀에게 물었다. 부디는 그게 자신들을 보고 있는 노인임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호탕하게 웃은 남자는 피스톤질을 더욱 빨리 했고 Come! 이라고 외치더니 그녀의 가슴 위로 쓰러졌다.
괜찮냐는 물음에 그녀는 끝까지 도도했다. Not bad. 부디는 그게 진짜 자기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처음치고 나쁘진 않네, 조금 아프지만.
한국에 귀국한 그녀가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정말 충격적이었다. 첫 경험을 해외에서, 처음 만나는 외국인과 그것도 해변가에서 누군가가 보고 있는데 하다니. 첫 경험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표정에선 불필요한 혹을 떼어낸 사람처럼 평온해 보였고 개운해 보였다.
누군가에겐 첫 경험이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있고, 누군가에겐 그저 시작하는 작은 발걸음일 수도 있다. 섹스 자체가 어떤 이에겐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행위라면 어떤 이들에겐 인생을 조금 더 유쾌하게 살 수 있는 재미난 요소임을 확인하는 재미있는 충격적 사건이 아니었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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