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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다이어리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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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퍼스널쇼퍼]

“왜 처음이 아니라고 생각해?”
 
둘다 샤워를 하고 와서, 나는 그녀에게 그렇게 물었다. 리즈는 대답대신 나를 안아주었다. 
 
“그냥 칭찬이야.”
 
막 샤워를 마친 그녀의 보송보송한 살결이 닿았다.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29살의 첫경험은 그렇게 뇌리에 강한 임팩트를 찍고 환영처럼 맴돌았다. 아마도 나는, 최소 몇 달 동안 이 장면이 떠올라 밤에 잠을 잘 못 잘 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나란히 누웠고, 나는 그녀를 끌어 안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녀 앞에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던 내가 그녀를 안았다는 것이, 그 행동의 주체자인 나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래서 섹스를 하면 자존감이 올라간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런 내 행동에 만족했다는 듯이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마치 연애고자를 가르치고 길들이는 노련한 조련사 같았다. 
 
“기분 좋다. 그냥 이렇게 외로울 땐 너무 하고 싶을 때가 있어.”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나도 그녀의 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내 가슴에 닿는 젤리 같은 그녀의 가슴 감촉이 너무 좋았다. 
 
“근데 네가 한번에 달려와줘서 고마웠어.”
 
리즈가 부르면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마 리즈가 있던 곳이 부산이라고 할 지라도 나는 갔을 것이다. 눈 앞에 의미 없이 다시 켜진 TV와, 그 조명에 비춰지는 리즈의 하얀 등과 엉덩이, 그리고 이제서야 눈에 들어오는, 처음 보는 모텔 내부의 광경들. 
 
“내가 이런 거 물어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첫경험은 어땠습니까?”
 
리즈는 살짝 내 목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너무 좋았어.”
“그게 음악 하는 사람의 표현력이야? 다시.”
 
엄격 근엄 진지하기까지 한 그녀의 말에 나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가 말했다. 
 
“사실……막연하게 어떤 기분일 것이다 라고만 생각했는데……그 생각한 것보다 훨씬 좋고 뭔가 황홀했어. 특히 상대가……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꾸미는 것보다, 차라리 재미없지만 담백하게 이야기하는 게 나을까 싶어 나는 그녀에게 털어놓 듯 소감을 말했다. 리즈는 싱긋 웃으며 내 입술에 뽀뽀를 해주었다. 
 
“나도 궁금한 게 있어.”
“뭔데?”
“그러니까 왜 갑자기 같이 자자고 했던 거야?”
“난 이미 답을 했어. 외로웠고, 하고 싶었고, 네가 마침 달려와 줬고. “
“그럼 어지럽다고 했던 건 나한테 보낸 사인 같은 거였어?”
 
내 말에 리즈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니었어. 네가 와준다고 할 줄은 정말 몰랐으니까. 그냥 타이밍이 너무 잘 맞은 거겠지.”
 
그녀는 내 볼을 쓰다듬기 시작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에서 내가 땅에 보기 흉하게 넘어질 뻔했는데 구해 줬잖아.”
 
나는 그때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고, 한참이나 벤치에 앉아 있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머릿결에서 나는 향기를 맡으며 리즈라는 사람을 알게 해준 그 작은 우연에 감사하고 있을 때,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힘인지, 섹스의 힘인지, 나는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모르게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아직도 여전히 그녀와 눈이 마주치면 나는 그대로 얼어버리지만, 지금 이 분위기와 상황에서 바보처럼 쭈뼛거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 아마도 이건 그녀의 힘일거야. 
 
우리의 혀는 다시 한 번 입속에서 뒤엉켰다. 그래도 한 번 해보고 나니까, 대충 어떻게 하는 지 알 것도 같았다. 물론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키스라는 게 잘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것이었다. 무엇보다 리즈가 원하는 포인트를 알아야 하고, 리즈의 아랫입술이 아프지 말아야 하며, 서로 고개의 각도도 맞아야 했다. 
 
그녀의 등을 쓰다듬던 내 손이 엉덩이로 갔다가, 다시 그녀의 허벅지 쪽으로 가져갔다. 얇은 다리와는 다르게 적당히 도톰한 그녀의 말랑말랑한 살결이 손끝감각을 통해 뇌로 전해지니까, 나는 또 한 번 아래가 힘차게 부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리즈도 자신의 허벅지 사이에서 살아난 그것의 존재를 느꼈는지 그것을 힐끔 바라보더니 이윽고 손을 뻗어 앞 부분을 움켜쥐었다. 내가 헉 하는 소리를 내자 그것이 재밌었는지 손을 움직이며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손 잡는 것 이상의 모든 스킨십의 처음이 그녀이니, 당연히 이런 애무를 받아본 적도 없던 나는 몸을 꼬며 쾌감에 괴로워했다. 
 
리즈는 나를 눕히더니 능숙하게 올라탔다. 이제는 내 차례야 라는 듯이, 그 청순한 눈빛이 단박에 야하게 바뀌어 버린다. 머리칼이 내려와 내 목 부분을 간지럽히는가 싶더니, 이내 그녀는 키스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내 몸에 그 부드러운 입술을 비비기 시작했다. 
 
리즈는 정말 뜨거운 여자였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청순하고 도도한, 하지만 단 둘만의 시간에서는 절대로 야한 표현을 아끼지 않는 그런 사람. 아마도 내가 다이어리를 줍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런 사람을 평생 알지도 못한 채 살아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내 배꼽 밑 부분에 올라탔다. 잔뜩 흥분한 두 사람의 가장 은밀한 부분이 맞닿아 비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천천히 허리를 흔들며 스케이트를 타듯이 앞 뒤로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말도 잘 나오지 않는 아찔한 쾌감에 몸부림을 치고 있을 때,  리즈는 내 양팔을 잡더니 끌어 안듯 자신의 가슴으로 이끌었다. 나는 그녀의 의도를 눈치채고 가슴을 부여잡았고, 그녀가 살짝 골반을 뒤로 길게 빼고 앞으로 내밀자, 거짓말 처럼 쑥 하고 그녀의 안으로 들어갔다. 
 
섹스의 초보는 그저 영문을 모르고 신음할 뿐이었다. 눈을 살짝 감고 움직이는 그녀의 얼굴이 무척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신음을 참듯이 아랫입술을 질끈 물고 내 위에서 춤추듯 움직였다. 그 바람에 더 빨갛게 변한 그녀의 입술이 시선을 간지럽혔고,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다가 그만 앗! 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음?”
 
그녀의 밑에 깔려 파닥거리 듯 움직이는 나를 내려다 보며,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윽고 살짝 몸을 위로 올려 내 것을 빼 내었다. 그와 동시에 또 한 번 사정을 했고, 그녀는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 보더니, 사정을 하는 내 페니스에 자신의 꽃잎을 대고 살살 움직여 주었다. 머리속이 하얗게 변했고, 아득한 쾌감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단, 그녀의 목소리를 제외하고. 
 
“신기하네.”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의 배꼽 부분에 사정을 계속하는 나를 보며 그녀는 내 귀두를 살짝 움켜쥐었다. 처음과 다르게 맥없이 끝나버린 두번째 섹스에도, 그녀는 실망이 아닌 웃음기를 띄우고 있었다. 
 
“보통 첫번째에 빠르고 두번째는 오래하지 않나?”
 
“나도 모르겠어. 갑자기 왜 이러지?”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정말 황당할 정도의 런닝타임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녀는 실망으로 물든 눈이 아니었다. 손을 뻗어 티슈로 뒷처리까지 해주더니, 그녀는 몸을 구부려 나를 안아주었다. 
 
“미안해.”
“왜 사과를 해?”
“왠지 모르겠지만 빨리 끝나면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아.”

내 말에 그녀는 꺄르르 웃었다. 
 
“나는 그게 싫지 않아.”
“뭐가? 빨리 끝나는 거?”
“응. 물론 너무 심각하게 빨리 끝나면 안 좋겠지만. 나 때문에 토끼가 되었다는 건 왠지 기분이 좋아.”
 
장난 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그녀를 보니까, 두 번의 섹스와는 전혀 무관하게 또 가슴이 두근거렸다. 정말 나를 아예 반하게 만들 작정을 하고 내 인생에 나타난 것일까?
 
우리는 다시 씻고 누웠다. 그녀는 잠시 쉬자며 TV를 켰고, 그 곳에서는 야구 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다. 마침 내가 응원하고 있는 팀이 나왔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올해도 가을 야구는 글렀어.”
“너도 저 팀 응원해?”
“응.“
 
리즈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윽고 휴대폰을 켜서 자신의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내가 응원하는 그 팀의 유니폼을 입은, 모자를 쓴 그녀의 예쁜 얼굴. 
 
“와... 같은 팀 응원하네?”
“그러네. 신기하다. 별 건 아니지만.”
 
그녀와 내가 공통점이 생기다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더 놀라운 것은, 나는 다른 팀을 응원하다가 그 팀으로 갈아(?) 탔는데, 그녀 역시 나와 똑같이, 그것도 비슷한 시기에 응원하는 팀을 바꿨다. 우리는 물을 나누어 마시며 때 아닌 야구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는 프리미어 리그로 이어졌고, 이제는 아예 학창시절에 봤었던 슬램덩크 만화까지 이야기했다. 여성인 그녀가 그렇게 스포츠에 박식한 것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것은 나와 취향이나 응원하는 팀이 거의 일치했다. 그리고 서로 의견일치를 할 때마다, 리즈는 기특하다는 듯 내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자주 이런 생각을 했다. 신이 나를 위해 고가의 명품 맞춤 수트와도 같은 그녀를 내게 내려 주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다만 모델이 구려서 옷의 고급스러움을 살리지 못할 뿐인 거야……라고. 
 
리즈는 내 품에 파고 들었다. 그리고 내 볼을 잡고 입술에 입을 맞췄다. 섹스까지 했는데, 고작 뽀뽀 한 번에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나는 누가 봐도 어색한 포즈로 그녀를 어정쩡하게 안았다. 그녀는 내 목을 끌어안더니, 요물 혹은 마녀 같은 그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 더 할 수 있어?”
 
부끄럽지만, 그 날밤의 기억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고작 섹스 한 번에 바뀔 정도인 내 삶이 조금은 처량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전보다 훨씬 올라간 자존감과,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삶의 행복도를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은 역시 정신에 지배되는 동물이었다. 그 작은 다이어리가 가져온 마음가짐의 변화는 일로 이어졌고, 나는 그 어느때보다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했다. 그 전의 창작물에는 ‘음~좋은데요?’ 정도의 반응이었다면 요즘에 내놓은 비트들은 극찬을 받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다 모든 게 그녀의 덕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리즈 와도 역시 매일 같이 연락을 했다. 그 날 이후로 사실 리즈가 나를 대하는 것이 달라진 것은 단 하나도 없었지만, 나는 그 전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연락했다. 절대 하지 못하던 농담을 하기도 했고, 조금 더 용기를 내어서 보고 싶다고 표현을 하기도 했다. 리즈는 그럴 때마다 웃는 이모티콘을 내게 보냈다. 
 
그쯤 되니 궁금해졌다. 내가 그날 했던 고백에 대한 답이 섹스였을까? 생각해보니 그녀는 어떤 답도 해주지 않았다. 언감생심 내가 어찌 그녀를 가지겠어 라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그 섹스의 의미가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해졌다. 
 
“근데 물어보진 못하겠지.”
 
나는 핸드폰을 보며 중얼거렸다. 만약 그것을 물어서 지금의 이 관계도 끊어지면 어떻게 하지 라는 두려움이 덜컥하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자존감을 얻고 고민까지 덤으로 얻은 나는 머리를 쥐어 뜯으며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만약 그녀에게 있어서 그날의 섹스는 그저 일회성의, 단순한 외로움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내가 그 고백에 대한 답을 달라고 달려들면 더 부담스러우겠지. 하지만 만약 그녀도 내게 마음이 있다면? 그럼 오히려 ‘얘는 섹스까지 했는데 왜 관계를 발전 시키려 하지 않지? 나를 일회성 여자로 생각하나?’ 라고 오해를 할 것만 같았다. 진퇴양난. 연애의 고수도 모르는 여자의 마음을 나 같은 놈이 알리가 있나. 그냥 끙끙 앓을 뿐이었다. 
 
‘적어도 어필은 해야 할 거 아니냐.’
 
형의 조언이 불현듯 귓가를 스쳤다. 내 마음속에 있는 말을 전부 다 꺼내어 보여줄 수는 없지만-찌질하니까-, 적어도 일부 정도는 그녀가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작업을 하던 파일을 중간에 저장을 해두고는, 몇 분이나 서성거리며 고민을 했다. 저녁을 먹지 않았지만 허기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작업실을 박차고 나갔다. 야근을 하지 않는 다면, 곧 그녀가 끝날 시간이니까 그녀의 회사 앞에서 기다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실 야근을 한다고 해도 나는 얼마든지 기다릴 용의가 있었다. 버스 안에서 수없이 연습을 하며, 그리고 또 수없이 다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하며. 또 나는 왜 이렇게 찌질할까, 연애 연습이라도 해뒀으면 좋았을 걸 이라는 생각도 하며. 그러다 보니 어느덧 리즈의 회사 앞이었다. 
 
-나 이제 끝나고 들어가. 답이 늦어서 미안!-
 
때마침 그녀의 연락이 왔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답장을 했다. 
 
-나 사실 회사 앞인데……-
 
-우리 회사?-
 
-응. 미안.-
 
-ㅎㅎㅎ뭐가 미안해. 잠깐만.-
 
혹시나 그녀의 회사 사람들이 보면 그녀가 곤란할 까봐, 나는 회사 건물 밖에 있는 벤치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잠시 후 그녀가 밖으로 나와 두리번 거리더니,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얇은 코트에 청바지를 입은 그녀가 나를 보며 웃었다.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는 거 아니야.”
“아. 미안. 불편했어?”
“아니. 오늘 내가 좀 못생긴 것 같거든. 일하다가 나와서.”
 
나는 피식 하고 웃어 버렸다. 말도 안돼. 저게 어딜 봐서 못생긴 얼굴이야? 평생 못생긴 걸 안 보고 자랐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못생긴 거라면 세상에 예쁜 여자는 존재하지도 않을 것 같다. 
 
“이거. 오다가 사왔어.”
 
그녀의 회사 옆에 있는 카페에서 산 라떼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리즈는 환하게 웃으며 그것을 받아 들었다. 
 
“고마워. 뭘 이런 걸 사왔어.”
“사실 야근하면 식어 버리니까, 그땐 내가 마시려고 했어.”
“바보야.”
 
리즈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근데 나 오늘은 집에 좀 빨리 가야 하는데. 어쩌지? 일거리를 가지고 퇴근하거든.”
 
나는 몇 번이나 쭈뼛거리다 입을 열었다. 
 
“아, 괜찮아. 그냥 잠깐 얼굴보고, 하고 싶은 말도 있고 해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버스에서 연습한 말들은, 정말 물티슈가 지나간 화이트 보드처럼 깨끗하게 지워져 있었다. 내 손에 들고 있는 내 몫의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긴장으로 차가워진 내 손과 만나면서 급격히 식는 것이 느껴졌다. 리즈는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 그게……”
“응.”
“그냥, 확실하게 말하고 싶어서.”
“뭘?”
“좋아……한다고.”
 
연습한 말들보다 천배는 더 찐따 같은 그 고백을 들은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조금 희미해졌다. 당당하기라도 하자라는 생각에 이번에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마워.”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양 손에 내가 준 커피를 들고, 퇴근길에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차가운 마른 바람이 우리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미안해.”
 
그 다음 그녀의 말에 나는 몸이 더 차가워졌다. 물론 그녀에게 ‘나도 너 좋아. 우리 사귈래?’ 라는 대답을 기대하고 한 고백은 아니었다. 그것도 일이 막 끝난 그녀를 찾아와서 말이다. 하지만 막상 내 귀에 들린 미안하다는 그 사과는, 마치 최종판결을 듣는 것 처럼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아직 마음을 주지는 못할 것 같아. 미안해. “
“아니야. 내가 갑자기 찾아와서 미……”
“있잖아.”
 
그녀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듯 아무말도 하지 않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마음은 아직 줄 수 없는 나라도 계속 좋다면, 언제든지 나를 원할 때 말해줘. 마음이 아닌 몸의 교감이라도 좋다면.”
 
바람은 더 차가워졌다.


8화에서 계속

글쓴이 카린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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