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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기 전 마지막 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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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애의 목적>

며칠 전 나는 내 오랜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사랑하지만 헤어진다는 것은 유행가 가사로나 여겼었는데 그게 현실에서도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이별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요구도 또 매달림도 없었고, 합의로 우리는 함께 했던 기억들을 정리했다. 또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해 줄 수 있는 것들을 해주었다. 유치하지만 이별 여행도 다녀왔고 그간 다소 얽혀있던 돈 문제도 깨끗하게 정리를 했다. 남은 것은 마지막 저녁 식사였다.
 
이왕 유치해지기로 한 거. 나는 끝까지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레스토랑에 예약하고, 그날 함께 마셨던 포도주도 주문을 해 두었다. 그리고 내 집에는 처음 섹스 하던 날 같이 나눠마셨던 샴페인까지 준비했다. 저녁 식사 후 각자 차를 몰고 헤어질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혹시나 나는 그와 마지막 밤을 함께 지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두었다. 예약한 식당에서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마 그 식당에서는 우리를 결혼을 앞둔 커플들 정도로 보았으리라. 왜냐면 우린 매번 기념일마다 그 식당을 예약했었고 그때마다 그는 꽃과 선물로 나를 즐겁게 해 주었으니까. 그리고 마치 드라마처럼 후식으로 나오는 푸딩에 반지를 넣어 선물도 했으니까. 우린 마치 앞으로도 계속 기념일에는 이 레스토랑을 예약할 커플들처럼 행동했다. 마지막이라는 인상을 누구에게도, 더구나 서로에게는 절대 풍기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 식당에서 나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언젠가 우리가 농담처럼 했던 헤어지기로 한쪽에서 위로금으로 500만 원을 주기라는 약속을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받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언제나 그렇듯. 드라마와 현실은 다르다. 드라마는 돈을 주면 화를 내고 끝내 받지 않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액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드라마와는 반대로 더더욱 거절하기 힘들어지는 게 인간이다. 헤어짐의 말을 꺼낸 건 확실히 그였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우린 암암리에 그런 신호를 주고받았었다.
 
결혼하지 않을 거라면 이제 이쯤에서 관둬야 한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고 나도 알고 있었다. 우린 더는 20대가 아니며, 그는 외동아들에 손이 귀한 집 자식이었으니까. 내 연애와 사랑을 위해 그에게 더는 부모님께 불효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그와 결혼을 원하지 않았다. 아니 그 누구와도 아직은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그와 만나고 싶다고 해서 결혼을 할 수도 없었다. 말을 먼저 꺼낸 대가로 그가 건넨 하얀 봉투를 핸드백에 집어넣으면서 생각했다. 이 돈으로 저축하거나 방세를 내면 정말 미친년이라고. 이건 빨리 써서 없애버려야겠다고. 그리고 이왕이면 물건이 아닌 다른 형태로 돈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포도주를 나눠 마신 후. 우린 다시 올 것처럼 남은 포도주를 키핑해 두었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다시 와서 저 포도주를 다시 마시는 일이 없으리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주일이 지나면 아마 이 가게에서는 얼마쯤 더 보관하다가 결국에는 버리겠지. 포도주에 내 이름을 쓰는 동안 그는 계산을 마쳤다. 생각해보니 이 식당에 올 때마다 우리는 번갈아가며 계산을 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그는 정한 적은 없지만 행하기는 했던 규칙을 어겼다. 난 속으로 말했다. 반칙이라고.
 
레스토랑 입구에서 우린 어설픈 인사 없이 잘 가 하고 손을 흔들고는 각자 차를 타고 시동을 걸었다. 나는 그가 내심 내 차를 타거나 자신의 차에 나를 태우리라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어느새 신호가 번져 보였다. 울지 않기. 이건 새해 들어 세운 계획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는구나 싶어 가슴 한구석이 내려앉았다.
 
영화라면 이럴 때 멋지게 할렘가에 들러서 500만 원짜리 봉투를 부랑자에게 건네주겠지? 그리고 액수에 놀라는 부랑자에게 말할 것이다. '내게는 필요 없는 돈이어서요.' 나는 할렘가는커녕 가장 복잡한 도심의 도로를 달려서 집으로 갔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컴컴한 집 안으로 들어서면서 생각했다. 이놈의 현관 등을 꼭 고쳐야지. 센서가 나갔는지 전구가 맛이 갔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시는 이렇게 깜깜한 속에 발을 들여놓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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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하고 핸드백 속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TV를 틀었다. 요즘은 공중파도 케이블처럼 늦은 시간 까지 방송을 한다. 아니 아예 종일토록 방송하는 곳도 있다. 사람들이 그만큼 잠이 줄어든 것일까? 아니면 현대인들은 TV 시청 이외에는 여가를 보내는 방법을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걸까? 냉장고에서 샴페인을 꺼내고 딸기를 씻어서 혼자 한잔 두잔 마시기 시작했다.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기보다는 그냥 술이 필요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사람을 정상적인 상태로 두지 않는다. 샴페인을 거의 다 비웠을 때쯤, 나는 서랍에서 바이브레이터를 꺼냈다.
 
원래 나라는 인간은 자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위할 것 같으면 남자를 불러서 남자와 하는 게 훨씬 더 좋았으니까. 하지만 그날 밤. 나는 자위를 했다. 그것도 몇 번이고 절정에 다다르면서. 내 손길은 그의 손길이 되고 바이브레이터는 그의 성기처럼 따뜻했다. 나는 그렇게 그와 헤어지기 전 마지막 섹스를 했다. 이 섹스가 끝나면 이제 그와는 영원히 헤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자위하면서 우는 인간이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날 마지막 절정의 순간에 통곡했다. 그와 함께 샴페인을 나눠마시고 섹스를 했더라면 나는 절대 울지 못했을 것이다. 바람난 가족에서 문소리가 남편과의 섹스 혹은 연배와의 섹스였더라면 아들을 잃고 나서 그렇게 통곡을 하며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는 인터뷰 내용을 생각하면서, 나 역시 그가 아닌 진동기와 나만 있기에 가능한 눈물을 흘렸다.
 
아마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 나는 떠올릴 것이다. 그와의 마지막 섹스가 따뜻했고 황홀했고 눈물겨웠고 슬펐다고. 비록 그는 그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겠지만 나는 가지고 있다고. 그래서 이 헤어지기 전 마지막 섹스는 온전하게 다 내 것이라고.
 
 
글쓴이ㅣ남로당 칼럼니스트 블루버닝
남로당
대략 2001년 무렵 딴지일보에서 본의 아니게(?) 잉태.출산된 남녀불꽃로동당
http://burur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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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즈 2016-04-17 23:17:25
먼가 맘이아파요 ㅠㅠㅠ 한쪽구석이 애려오는듯한 ㅠ
후니짱이라우 2016-04-16 16:04:53
뭔가..애잔합니다..
중간의중요성 2016-04-15 19:24:37
먹먹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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