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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섹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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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TBT : howling)


영화 [The art of racing]

가장 기억에 남는 섹스는?

이라고 묻는다면 우리 둘이 입을 모아 대답하는 기억이 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튀어나오는 그런 기억.

에어비앤비를 이용한 숙박은 처음이었다. 넓지 않은 마당에는 텃밭이 꾸려져 있었다. 래브라도 리트리버 한 마리는 울타리를 열기도 전부터 침을 흘리며 마중나와 있었다. 사람을 무척 좋아하는 개였다. 묶여있지 않은 개들은 에너제틱하다. ‘폴’이었나 ‘벤’이었나. 한 음절로 된 이름을 가진 침이 풍부하고 목청도 큰,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굵은 꼬리를 무척이나 잘 흔들어주는 상냥한 개였다.

왜, 동물은 함께 사는 사람을 닮는다고 하지 않던가. 상냥한 호스트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유순하고 부드러웠던 첫인상이 리트리버와 비슷했던 것 같기도 하고. 미술을 하는 사람이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집에 들어서자 햇살이 내려앉은 식탁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아니, 식탁 위 투명한 화병에 꽂힌 노란 꽃이었다. 생생했다. 그래서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나 싶다. 화병 옆에는 환영의 인사가 적힌 카드도 있었다. 아늑한 인심이 마음 속으로 몽글몽글 스며들어갔다. 그리고 벽에 걸린 크지 않은 액자에는 그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한 점 있었다. 사실 어떤 그림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안 크고 안 작은 액자였던 것만.

그가 다운받아온 영화를 봤던 기억도 있다. 분명 내가 좋아하는 장르였던 것 같은데, 영화 내용과 제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그의 품에 안겨 누운 내 엉덩이 아래에 타올 하나를 깔았다는 것. 타올이 두껍고 뽀송했던 것만 기억이 난다. 생리중이었고, 혹여라도 침대 시트에 내 흔적을 남길까봐서. 다행히도 내 흔적이라곤 몇 올의 털 뿐이었다. 

도시락을 제외하면 그에게 해준 첫 요리였다. 그러니까, 그 앞에서 요리를 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관심은 참 많은데. 내 친구들은 내 요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수능이 끝나고 놀러갔던 펜션에서 온 요리를 내가 도맡아 한 적이 있는데, 다음날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느라고 애 좀 먹었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다.

감바스와 바게트, 그리고 피자였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 깜빡하고 토마토소스를 안 사버렸다. 토마토소스 없는 피자란. 정말이지 절망적이었다. 아쉽게도 숙소 근처에는 조그마한 슈퍼마켓 따위도 없었다. 조금 울고 싶어졌다. 와인에 정신이 팔려서 두 병이나 사버렸는데, 토마토소스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 분명했다.

아쉬운대로 열심히 요리했다. 정말, 열심히. 고맙게도 그는 내가 만든 요리들을 정말로 맛있게 먹었다. 싱거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간이 맞다며. (근데 지금에 와서는 피자를 만들어달라는 얘기보다 감바스를 해달라고 더 자주 얘기하곤 한다.) 새우가 실해서 다행이었다. 감바스는 쉬우니까. 

한 잔 두 잔. 한 병을 다 비우고 또 다른 병의 코르크를 따기까지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알딸딸하니 딱 기분이 좋았는데, 근데 그날은 그냥 더 마시고 싶었다. ‘괜찮아요?’ 하는 그의 물음에 잠시 풀렸던 눈에 다시금 힘을 빡 주었다. 끄덕끄덕.

말을 않고 가만히 있으니 멀리서 어렴풋이 파도소리가 들렸다. 창밖에는 보름에서 조금 모자란 하얀 달이 꽤 높게 떠있었다. 낭만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싶었다. 조명을 막 이것저것 껐다켰다해보고. 창틀을 꾸며둔 앵두전구가 내가 원하는 역할을 해줘서 고마웠다. 

“읍!” 

마지막 남은 피자를 그가 모두 먹어버린 후였다. 그의 눈은 당황으로 꽉 차있었고, 우물우물한 입 역시 피자로 꽉 차있었다. 더 먹을래? 라든지, 나 다 먹어도 돼? 하는 평소의 물음 없이, 무의식 중에 마지막 피자를 먹어버린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정말이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의 얼굴을 잡고 이미 잔뜩 짓이겨진 피자를 입으로 옮겨받았다. 결벽까지는 아니더라도 남이 씹던 음식이라면 음? 내지는 엥? 혹은 헐... 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그냥 그 때는 그러고 싶었나보다. 그가 씹어서 반죽이 되어버린 피자는 생각보다 정말 맛있었다. 정말. 침냄새도 나지 않았다. 

“새우 먹어볼래요?” 

그에게 새우 알러지가 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내 말은, 입에서 입으로. 찰떡같이 알아들은 그는 냉큼 새우 두 마리를 포크로 찍어 내 입에 넣어주었다. 우물우물. 어미새의 부리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장난기였는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의 허벅지 위에 다리를 벌리고 마주앉았다. 나는 그의 목을 감고 그는 내 허리를 감고. 마찬가지로 반죽이 된 새우를 그의 입으로 넘겨주었다. 입술을 떼고 우물거리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아무 말 없이 이번엔 와인도. 

막 뒤섞인 피자와 감바스처럼, 식탁 앞 의자 하나에 서로 마주보고 포개어 앉은 둘. 와인을 마신 탓인지 평소에도 붉었던 그의 입술이 새빨개보였다. 세상에 딱 둘만 남은 것도 아니면서 우리는 얽히고설켜서 서로의 입술을 곧장이라도 삼킬 듯 굴었다. 온 몸이 두근거렸다. 피가 아랫도리로 다리 사이로 사아악 몰리는 것 같았다. 옷은 아직 벗지도 않았는데 보지가 터질 것처럼 쿵쾅거렸다. 맞닿은 그의 자지 역시 터질 듯 부풀어있었다. 

그 무렵 그는 평소에는 존대를 쓰다가도 때가 되면(?) 반말을 했는데, 그날도 여지없이 

“ㅇㅇ이 생리컵 빼고 올래?” 

하더랬다. 속된 말로 떡볶이, 생리기간 중 하는 섹스를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뒤처리가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닐 뿐더러 무엇보다 건강에 좋지 않은 이유로 그가 만류했기 때문에. 그날은 정말이지 뭔가가 있는 듯했다.

생리컵 안에는 생리혈이 많이 고여있지는 않았다. 흐름이 깨어질 만도 했는데 그냥 그 순간은 자석 같았다. 옷이 찢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어디에 던졌는지도 모르게 서로의 옷을 벗겨냈다. 물론 나는 생리컵을 빼고 화장실에서 물기만 대충 닦고 부리나케 나온지라 바지는 이미 벗은 후였다.

샤워 직후에 애액이 모두 씻겨나간 후의 질은 참 뻑뻑하다. 뽀득뽀득이라고 해야하나. 마치 안 마른 스키니진을 힘겹게 입는 것처럼. 그 버거움 마저도 황홀하게만 느껴지는 날이었다. 평소보다 정말 많이 취해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말이지 감각이 무뎌지는 게 아니라 증폭되는 날이었다. 청각은 무뎌져서 그의 목소리가 어룽져 들렸는데, 대신 그의 손이 닿는 족족 자지가 삽입될 때마다 저릿하고 울렁거렸다.

정신없이 박아대다가, 정신없이 처맞다가, 이윽고 거실에 놓여진 소파 위에 엎드린 자세가 되었는데 아마 그 순간 그는 자제력을 온전히 잃었던 것 같다. 생전 관심도 갖지 않던 애널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더니 문질렀다. 질척질척. 나 역시 자제력을 잃게 된 순간이었다. 박아줘. 박아줄까. 하는 대화는 일절 없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저 짐승 같은 울부짖음만 있었다.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처음 듣는 소리라고 했다. 꼭 다문 애널은 당최 벌어질 생각을 않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한 러프한 상황들의 연속이 참 좌절할 법도 한데 당시의 우리에게는 그것마저도 윤활제가 되고 더 나아가 승부욕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했다. 시도 끝에 내 애널은 차츰 열리기 시작했고, 조금씩 조금씩 그의 자지를 받아 삼켰다. 내가 지금껏 만난 사람들 중에서도 그의 자지는 꽤 굵은 편에 속했고, 그날은 정말이지 유달리 단단하고 빳빳했던 날이어서인지 자지의 뿌리끝까지 온전하게 삽입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온 집안은 우리가 내뿜는 숨으로, 내뱉는 울부짖음으로, 빚어내는 마찰음으로 가득했다. 애널에 정신없이 박히면서도 보지가 아쉽지 않은 경험은 그날이 유일무이하다.

땀을 뻘뻘 흘리다가 마침내 질 안에 울럭이며 정액을 토해내는 그 순간에는 동시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엄청난 성취감 마저 느껴졌던 밤이었다. 

다음날은 당연히 느즈막히 깰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오전 7시 무렵 알람도 없이 눈이 떠졌다. 냉장고 안에는 어제 요리를 하고 남은 재료들 외에도 호스트가 준비해준 것들. 거창한 것은 아니었지만 뭐든 듬뿍듬뿍이었다. 토스트용 식빵과 달걀, 그리고 버터와 잼. 얇게 저며진 햄과 치즈까지. 덕분에 잘 챙겨먹지 않는 아침식사까지 호화롭게(?) 마쳤다.

작은 메모가 남겨진 그 집은 전날과 닮은 듯 달라보였다. 근처 바다에서 잔잔히 흐르는 윤슬을 보면서 나는 ‘참 행복하겠구나’ 했다. 호스트와 개 모두가. 

정말 즉흥적이고 정말 뇌쇄적인 섹스였다. 그리고 참 위험하기 그지없는 무지한 섹스였다. 콘돔도 착용하지 않고 교차삽입을 한 것, 이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무참히 박아댄 것. 지금 같으면 절대로 그러지 않겠지만 그날이라서 가능했던, 위험한 만큼 서로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된 섹스가 아니었을까.

가끔 동물들의 하울링에 관련된 영상 따위를 보면 그는 장난스레 ‘어, ㅇㅇ이다.’ 하며 묘한 눈빛을 보내곤 한다. 

*** 
생전 애널이라곤 호기심은 커녕 거부감이 가득했었다. 남자친구를 만나기 직전에 만났던 사내가 있다. 그 사람을 통해 처음으로 시오후키라는 것을 해봤다. 그리고 남자는 날 묶었다. 또 후배위를 하며 내 엉덩이를 실컷 때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애널에 슬그머니 엄지손가락을 밀어넣으려고 했다. 분명 그는 나를 탐색하면서 “혹시 싫어하는 것 있냐”고 물었고,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애널”이라 답했는데.

이성의 끈이 끊어짐과 동시에 그를 몰아세웠고 쏘아붙였다. 이자카야에서부터 손가락 빨아주고, 묶으면 묶는대로 때리면 때리는대로, 남들에게 전부 거절당했던 것들 좋다고 즐기는 사람에게는 다 해도 되는 줄 아느냐고. 분명 만나기도 전부터 어떤 게 싫은지 물어본 사람은 당신이었고 애널은 싫다고 말했는데, 당시에는 분명 내 의사를 존중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시오후키 한 번 했다고 해서 이따위로 아무렇게나 다뤄도 되는 줄 아느냐고. 

공기가 싸하게 식어감과 동시에 그의 자지도 점점 힘을 잃어가는 듯 보였다. 그의 표정도 싸늘해졌다. 미안하다는 말은 없었다. 그저 황급하게 옷을 챙겨입고 그는 방을 빠져나갔고, 본인의 연락처를 지워달라는 말만 남겼다. 재수없는 놈. 

이후로도 종종 잊을 만하면 ‘ㅇㅇ씨 만한 여자가 없어요. 그리워요.’라는 말과 함께 아련한 연락이 오기도 했는데, 잠시 그날의 추억에 도취되어 그렇구나- 하며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를 다시 만나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다음날이 되어 밤의 마법이 풀리면 이불킥깨나 하기도. 물론 허심탄회한 밤에도 사과는 없었지만. 오히려 나를 책망했지. 그렇게 정색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재수없는 놈. 요즘에는 그 남자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다. 아, 올 수가 없다. 차단을 했거든.


글쓴이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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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Jay모리슨 2020-03-18 17:33:25
감바스는 맛나고
그 후 맞추는 입술은 더 맛나고
그러나 어딘지 씁쓸한 그 이후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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